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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 SK온 CPS 전량 매입해 상장 부담 해소 무리한 설비 투자로 불어난 적자, 어떻게 감당할까 美 배터리 시장 내 입지 다져둔 SK온, 상장도 美에서?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자회사 SK온이 기업공개(IPO) 압박에서 벗어났다. SK이노베이션이 재무적 투자자(FI)들의 SK온 전환우선주(CPS) 전량을 매입, 복잡한 지분 관계를 정리해 준 결과다. 다만 시장에서는 SK온이 언젠가는 상장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공격적 투자로 인해 누적된 차입금 부담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비교적 우호적 환경이 조성돼 있는 미국에서 IPO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진단이다.
SK온, 2026년 상장 의무 사라져
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30일 이사회를 열고 자회사 SK온의 CPS 5,107만9,105주를 총 3조5,881억원에 매입한다고 밝혔다. 지난 2023년 MBK파트너스 컨소시엄과 한국투자증권PE 컨소시엄으로부터 조달한 2조8,000억원을 모두 갚기로 한 것이다. 아울러 SK온과 SK엔무브의 합병 안건도 이사회를 통과했다. 두 회사의 합병이 완료되면 SK이노베이션은 SK온·SK엔무브 합병 법인의 지분을 90% 이상을 보유하게 된다.
이번 합병 및 CPS 매입을 통해 SK온은 당분간 상장 의무에서 벗어나게 됐다. 기존 FI들과의 계약에 따르면, SK온은 2026년까지 상장해 FI들에 내부수익률(IRR) 7.5%를 보장해줘야 했다. 만일 SK온이 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FI들이 SK가 보유한 지분까지 포함해 제3자에게 매각할 수 있는 드래그얼롱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였다. 하지만 SK가 FI들의 지분을 전액 매입함에 따라 이 같은 적격상장(Q-IPO) 조항은 소멸했다.
SK이노베이션 측은 향후 SK온의 상장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장용호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은 같은 날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열린 '2025 SK이노베이션 기업가치 제고 전략 설명회'에서 "SK온이 투자를 유치할 때와 지금 상황은 많이 다르다"며 "SK온의 기업공개를 급하게 진행하기보다는, 중장기 성장 기반을 구축하고 재무 건전성을 강화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은 SK온 본연적 경쟁력 강화에 집중할 시기"라며 "합병법인 IPO 계획은 현재 없다"고 부연했다.
시장 "언젠간 상장해야 할 것"
그러나 시장에서는 SK온이 결국 상장을 통한 자금 조달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SK온의 실적 부진 흐름이 지속되며 SK이노베이션의 재무 건전성까지 나란히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의 부채 비율은 지난해 1분기 176%에서 올해 1분기 207%(약 75조원)로 급등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3월 "배터리 부문의 지속적인 부진과 높은 부채 부담"을 이유로 SK이노베이션에 대한 신용 등급을 투자적격등급(Baa3)에서 투자부적격등급(Ba1)으로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최근 SK온이 현대자동차그룹의 미국 신공장 출범을 계기로 현지 법인 가동률을 끌어올리며 수익성 개선을 도모하고 있지만, '적자의 굴레'를 끊어내기에는 역부족일 것으로 보인다. 현금 흐름 기준으로도 손익분기점(BEP)을 넘기지 못하는 상태가 지나치게 오래 지속된 탓이다. 지난 1분기 기준 SK온의 순차입금은 23조4,600억원, 부채비율은 251%까지 확대된 상태다.
SK온이 이처럼 위기에 몰린 근본적 원인으로는 무리한 설비 투자(CAPEX)가 지목된다. SK온은 2005년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에 착수해 2006년 생산을 시작한 업계 후발주자로, 공격적인 투자를 발판 삼아 빠르게 성장해 왔다. 특히 2021년 10월 SK이노베이션에서 분사해 공식 출범한 이후 지난해까지 CAPEX에 지출한 비용은 자그마치 20조원에 육박한다. 구체적으로는 2022년 5조원, 2023년 6조8,000억원, 2024년 7조5,000억원이 CAPEX에 투입됐다. 문제는 최근 전방 산업인 전기차 시장에 나타난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현상으로 인해 배터리 수요가 급감했다는 점이다. SK온의 공격적 투자는 사실상 수포가 됐고, 수익성 역시 빠르게 악화했다.

美 증시 문 두드릴까
SK온 내부 사정에 정통한 시장 관계자들은 향후 SK온이 이 같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국 상장을 추진할 가능성을 크게 점치고 있다. 미국에서 IPO를 진행하면 중복 상장 리스크를 해소하며 보다 안정적으로 증시에 입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SK온의 사업 구조상 북미 시장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SK온은 미국 조지아, 켄터키 등에서 포드·현대차그룹 등과 대규모 배터리 합작 공장을 운영 중이다. 미국에 대한 익스포저(위험노출액)가 눈에 띄게 확대된 이상, 자금 조달 역시 미국에서 하는 게 자연스럽다.
일각에서는 SK온이 뉴욕 증시를 무대로 삼을 경우 글로벌 배터리 생태계 내 입지를 강화하면서 시장의 정당한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시장 관계자는 "뉴욕 증시에는 전기차 밸류체인 전반에 걸친 상장사가 다수 상장해 있지만, 투자자 저변이 한국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넓다"며 "역량을 입증한다면 투자 수요 분산 등을 우려해야 하는 국내 증시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상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달러화 자금 조달의 효율성과 글로벌 인지도 제고 측면에서도 미국 상장은 매력적인 선택지"라고 덧붙였다.
SK온 미국 상장설과 관련해 한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SK온이 미국에 이미 대규모 투자를 실시한 상태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이전부터 SK온이 미국에 상장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당장 상장할 계획이 없다는 말은 SK온의 재무 상황을 고려하면 일단 사실일 것으로 보이나,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이 자금 조달을 계속해야 한다”며 “엔무브가 창출하는 현금도 활용하겠지만, 결정적 부담 해소를 위해서는 상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