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테크] 유럽-아시아 친환경 에너지 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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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 기회 '무르익어' 공동 투자 통한 ‘이익 분배’가 관건 아시아 제조 역량과 유럽 전문성의 결합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유럽연합((EU)과 아시아태평양(Asia Pacific)은 글로벌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서 경쟁보다는 협력을 통해 공정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전 방식의 무역 협상에서 공동 투자를 통한 이익 분배(surplus-sharing)로 관점을 옮기는 데 있다. 국경 간 탄소 계약(cross-border carbon contracts, 탄소 배출에 대한 사전 행사가격 합의 후 시장 가격에 따라 차액을 지급)과 탄소 국경 조정 메커니즘(CBAM, 탄소 발생 수입품에 매겨지는 관세 및 부담금)이 협력을 구체적인 이익으로 바꿔줄 수 있다.

글로벌 친환경 기술 투자 ‘2,788조 원’
친환경 에너지 투자가 호황을 맞이했다. 작년에 친환경 기술 투자 규모가 2조 달러(2,788조원)에 이르며, 전 세계적으로 585기가와트의 신재생 에너지 발전 시설이 만들어졌다. 배터리 가격은 사상 최저인 킬로와트시(kilowatt-hour)당 115달러(약 16만원)까지 하락했고 전체 에너지 투자 규모도 3조 달러(약 4,182조원)를 넘었다.

주: 친환경 에너지 투자(갈색), 화석 연료 투자(회색)
하지만 이러한 진전에도 유럽연합-아시아태평양 공동 프로젝트는 교착 상태를 보이고 있는데, 문제는 효율성이나 기술적 타당성이 아니라, 낮은 에너지 비용과 빠른 인허가, 시장 접근 등을 통한 혜택을 양측이 공정하게 배분하는 데 있다.
유럽연합-아시아태평양 공동 투자 ‘기회’
유럽은 명확한 규제 체계와 풍부한 자본, 목표 지향적인 소비자가 있으며, 아시아태평양은 제조업 규모와 속도, 비용 면에서 우위에 있다. 이러한 장점은 합치면 훨씬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데, 이익이 공정하게 배분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사전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양측은 당연히 투자를 주저하게 된다.
다시 말해 협력 논의를 행동으로 연결하려면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먼저 ‘국경 간 탄소 계약’은 각자의 탄소 배출량 감소에 따라 투자 규모를 조절할 수 있게 해 준다. 예를 들어 베트남의 친환경 철강업체나 필리핀의 전력망 저장 장치 업체는 탄소세 절감 및 에너지 안보 등 유럽이 얻는 혜택과 일자리, 수출, 기술 이전 등 아시아의 이익에 비례한 보상을 얻게 된다. 즉 ‘탄소 계약’은 줄어든 비용만큼 보상을 자동 조정함으로써 예측 가능한 친환경 수익을 보장할 수 있다.
또한 유럽과 아시아의 친환경 분류 체계를 호환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아시아태평양의 프로젝트가 유럽 기준에 맞으면 자동으로 EU의 금융 및 조달 조건을 통과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통관 부호에 탄소 정보를 반영할 수 있는 디지털 제품 기록(digital product passport )을 활용하면 친환경 요건에 대한 이견을 최소화하면서 민간 투자를 확대할 수 있다. 여기에 유럽의 탄소 국경 조정 메커니즘은 탄소 배출량에 근거해 수입품에 비용을 물리는 제도로, 수입업체가 배출량 감소를 통한 비용 공제 혜택을 얻을 수 있다면 이 역시 동기부여로 작용할 수 있다.
동남아 전기 수요와 유럽 전문성 ‘결합’
실제로 싱가포르-로테르담 친환경 디지털 해운 회랑(Singapore–Rotterdam Green and Digital Shipping Corridor)은 28개의 파트너를 연결해, 저탄소 연료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제품 추적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협력 확대의 가능성을 입증한다. 동남아시아의 전기 수요는 현재의 1,300테라와트시(TWh)에서 2035년에는 2,000테라와트시까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 전력망 및 유연성 시장(flexibility market, 전력망 안정성을 위해 에너지 소비나 발전량을 조정하면 보상) 관련 전문성은 늘어난 수요에 맞는 효율성을 제공할 수 있다.
또 공적 자금은 리스크를 낮추고 민간 투자는 프로젝트의 규모를 키울 수 있다. EU의 글로벌 게이트웨이(Global Gateway, 디지털, 기후 및 에너지, 교통, 건강, 교육 및 연구 등에 대한 투자 지원)는 2027년까지 3,000억 유로(약 487조원)의 기금을 조성하고자 하며, 유럽투자은행, 아시아개발은행,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등 다국적 은행들의 기후 관련 융자 규모도 커지고 있다. 또 구조화 금융(structured finance, 특수목적회사 등을 통한 위험관리, 증권화 및 파생상품 활용을 특징으로 하는 금융 기법)을 통해 선순위 대출과 보증, 최소 수익 보장 등을 묶을 수 있다.

주: 유럽연합(좌측), 아세안(우측)
공정한 이익 배분 방안 ‘절실’
해당 협력이 자주권을 위협한다거나 과투자에 대한 우려가 있다. 하지만 서로의 기준을 인정하는 것은 자주권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을 위한 기반을 만드는 일이다. 비용 공제와 결합한 탄소 국경 조정 메커니즘은 탈탄소화를 앞당기는 동시에 저가 수입품들의 범람까지 막을 수 있다. 2030년까지 5,840억 유로(약 947조원)로 예정된 전력망 투자가 지나쳐 보일 수도 있지만, 분석에 따르면 투자금 대비 두 배 이상의 비용 절감 효과가 발생한다.
기술이 이미 존재하고, 배터리 가격은 저렴하며, 재생 에너지도 넘친다. 친환경 에너지 투자도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이제 비용에 대한 논쟁을 끝내고 협력을 가능하게 할 공정한 이익 배분에 집중하면 된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Splitting the Synergy Pie: How the EU–Asia Pacific Pact Can Actually Power the Green Transition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