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로부터 독립하자" 中, AI 소프트웨어 넘어 칩 시장 공략에도 박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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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화웨이·SMIC, 줄줄이 생산 시설 확충 나서 "밀수까지 성행" 엔비디아 의존도 낮추기 위한 방책인가 딥시크·바이트댄스, AI 소프트웨어 시장서 약진

중국 기업들이 인공지능(AI) 생태계 자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의 대형 IT 기업인 화웨이와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중신궈지(SMIC) 등 핵심 기업들이 줄줄이 생산량 확대를 선언하며 '엔비디아 밀어내기'에 나선 것이다. 시장은 중국이 AI 소프트웨어에 이어 하드웨어 방면에서도 유의미한 성장세를 보일 수 있을지 촉을 곤두세우고 있다.
中 기업들, AI 칩 시장 공략 나서
27일(이하 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화웨이와 SMIC가 대규모 생산 시설 확충에 나선다고 보도했다. 화웨이는 2025년 말 가동을 목표로 AI 칩 전용 생산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며, 2026년까지 두 개의 공장을 추가로 신설할 계획이다. 세 공장이 모두 가동하면 화웨이의 칩 총생산량은 SMIC의 첨단 공정 생산 능력을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해당 공장들은 화웨이를 직접 지원하기 위해 설계됐으나, 공식적으로는 독립 법인이나 협력사와의 합작 형태를 띨 가능성이 크다.
SMIC 역시 생산 능력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SMIC는 최대 고객사인 화웨이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2026년까지 7㎚(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 생산 능력을 두 배로 늘릴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한 시장 관계자는 "SMIC는 7나노 공정 수율이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는 와중에 생산 시설 확충을 결정하며 승부수를 띄운 것"이라며 "이 같은 계획이 현실화할 경우 SMIC의 레거시 반도체 시장 영향력은 급격히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업계에 따르면 SMIC의 7나노 공정 수율은 최근 70% 수준까지 개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중국 반도체업계의 핵심 플레이어들이 줄줄이 증산을 결정한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AI 생태계 독립 의지가 있다. 현재 중국 정부는 자국산 AI 칩 개발을 서두르고 있으며, 현지 기업들은 엔비디아가 중국 시장을 겨냥해 출시한 H20의 성능에 버금가는 반도체를 개발하는 데 힘을 쏟는 중이다. 딥시크(DeepSeek)와 같은 AI 기업들은 FP8 데이터 포맷을 도입해 하드웨어 효율을 극대화하는 기술 개발에 착수했으며, 캠브리콘, 바이런, 메타엑스 등 AI 칩 설계 스타트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도 줄줄이 이어지는 추세다.
엔비디아의 中 현지 영향력
이처럼 중국이 AI 칩 독립에 속도를 내는 것은 현지 시장의 엔비디아 칩 의존도가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7월 FT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복수의 중국 유통업체는 판매 금지된 엔비디아의 B200 칩을 지난 5월부터 중국 AI업계가 사용하는 데이터센터 공급 업체에 제공하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엔비디아의 H20 칩을 수출 제한 품목으로 지정하면서 규제 강도를 높이자, 곳곳에서 암거래가 성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B200 칩은 블랙웰을 기반으로 한 엔비디아의 최신 AI 반도체로, H20 칩보다 월등하게 우수한 성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복수의 소식통은 FT에 "B200 칩은 물론 H20 칩까지 중국 수출이 금지됐지만, 중국 암시장에서 B200 칩을 쉽게 구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중국 광둥성과 저장성, 안후이성의 유통업체들은 B200뿐 아니라 H100, H200 등 판매가 제한된 다른 고사양 AI 칩도 판매한 것으로 전해졌다. FT는 밀반입된 엔비디아 칩의 규모가 최근 3개월 동안 10억 달러(약 1조3,880억원)를 웃돈다고 분석했다.
중국 기업들은 엔비디아 칩을 동남아시아를 통해 입수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미 상무부는 오는 9월부터 말레이시아, 태국 등 일부 동남아 국가들을 대상으로 고급 AI 제품에 대한 추가 수출 규제 조치를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미국 AI 칩을 말레이시아·태국으로 수출할 때 별도 라이선스(수출 허가) 의무를 부과해 기술 유출을 차단하는 방식이다.

中 AI 모델, 발전 속도 매섭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중국이 하드웨어 부문에서는 아직 미국 시장에 의존하고 있지만, 소프트웨어 부문에서는 눈에 띄는 속도로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딥시크는 저비용으로 고효율을 내는 새로운 AI 모델을 잇따라 출시하며 미국 빅테크 중심의 AI 생태계에 정면 도전하고 있다. 딥시크가 이달 19일 공개한 V3.1 모델의 경우,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AI 모델을 웹·앱 서비스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 가격이 출력 토큰 100만 개당 1.68달러(9월 5일부터 적용)에 그친다. 이는 △구글 제미나이 2.5 프로(출력 토큰 100만 개당 10달러) △오픈AI GPT-5(10달러) △앤스로픽 클로드 오푸스 4.1(75달러)보다 최대 수십 배 낮은 수준이다. 메모리 사용량을 줄이고 모델 훈련 효율성을 높여 상대적으로 성능이 떨어지는 중국 AI 칩으로도 고성능 모델 개발·훈련이 가능하도록 조치한 결과다.
틱톡 모회사인 바이트댄스도 최근 ‘Seed-OSS-36B’ 모델을 오픈소스로 공개했다. Seed-OSS-36B는 360억 개 파라미터 규모를 바탕으로 네이티브 512K 컨텍스트 윈도우 기능을 탑재했다. 이를 통해 딥시크 V3.1 대비 4배 긴 맥락을 처리할 수 있고, ‘사고 예산(Thinking Budget) 메커니즘’을 도입해 토큰 한도를 설정하는 방식으로 모델의 사고 깊이도 제어할 수 있다. 아울러 Seed-OSS-36B는 벤치마크 테스트 MMLU-Pro에서 65.1점, BBH에서 87.7점을 기록해 동급 모델 중 최고 성능을 기록했다.
이들 기업의 AI 모델은 실제 글로벌 기업들의 현지 서비스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일례로 테슬라는 중국에서 판매 차량에 딥시크, 바이트댄스의 두바오 등 현지 기업 AI 모델을 탑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테슬라 웹사이트에 게재된 이용약관 문서에 따르면, 두바오는 내비게이션 설정과 미디어 재생, 차량 내부 온도 조절 등에 대한 음성 명령을 수행할 예정이며, 딥시크는 AI 기반 대화 서비스에 활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