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테크] AI 시대 교육, 핵심은 사고력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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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기와 AI 확산, 학생들의 집중력·사고력 위협 통제만으로는 부족, 사고 과정을 평가하는 학습 필요 AI는 정답이 아닌 피드백 보조로, 교육은 사고 중심 전환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Research Memo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22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 따르면, 하루 1시간 이내로 디지털 기기를 여가용으로 사용한 학생들의 수학 점수는 하루 5~7시간을 사용한 학생보다 평균 49점 높았다. 사회·경제적 배경을 고려해도 표준편차 절반에 해당하는 큰 차이다.
이처럼 디지털 기기 사용 습관이 학업 성취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가운데, 미국에서는 청소년의 인공지능(AI) 활용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10대의 26%가 과제 수행에 챗GPT를 사용한다고 답했으며, 2023년보다 두 배 증가한 수준이다. 손쉽게 답을 얻을 수 있는 환경이 확산되면서 학생들의 집중력과 학습 태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그러나 핵심은 단순히 기계와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일상화된 환경에서 학교 과제가 사고 과정을 충분히 요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빗나간 논쟁
AI가 학생들의 사고력을 약화시키는지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논쟁의 초점은 잘못 맞춰져 있다. 진짜 문제는 과제가 지나치게 단순해져 프롬프트 입력만으로 답이 완성되는 구조다. 이런 경우 더 이상 사고력을 요구하는 과제라 보기 어렵다. AI는 기억과 정리, 심지어 판단까지 대신 수행하며 학습의 본질을 약화시킨다.

주: 연도(X축), 사용 비율(Y축)
실제 연구에서도 같은 결과가 확인됐다. AI의 답변이 사실과 달라도 사람들은 주변 단서를 무시한 채 그대로 수용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학생 개인의 한계가 아니라, 속도와 정답을 우선하는 환경이 낳은 결과다. 따라서 단순한 차단보다는 사고 과정을 드러내고 검증할 수 있는 수업 설계가 필요하다.
정보 환경의 변화도 학습 방식을 흔들고 있다. 구글이 제공하는 AI 요약을 읽은 뒤 추가 검색을 중단하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이런 ‘즉답 습관’은 교실에서도 나타난다. 문제는 학생들의 태도가 아니라, 초안 작성과 수정 과정을 요구하지 않는 과제 구조다. 하지만 학습의 핵심은 바로 그 과정을 반복하며 사고를 다듬는 데 있다. 결국 과제의 성격을 바꾸지 않는 한, 피상적 학습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주: AI 요약 없음(15%), AI 요약 있음(8%)
휴대전화 통제의 한계
네덜란드와 영국은 학교에서 휴대전화 규제를 강화한 이후 학생들의 집중력이 개선됐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성적 향상이나 정신건강 회복 효과는 뚜렷하지 않았다. 방해 요인을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학습 성취를 높이는 데까지는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휴대전화 금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챗봇이 단시간에 해결할 수 있는 과제가 유지되는 한 근본 문제는 해소되지 않는다. 단순 통제는 일시적 효과에 그칠 뿐, ‘정답 맞추기식 과제’라는 구조적 한계를 해결하지 못한다.
인지적 마찰의 필요성
학교를 기술을 배제한 공간으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교실을 사고 친화적 공간으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지적 마찰’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쉽게 얻은 정답에는 불편함을, 사고 과정을 거친 답변에는 보상을 부여하는 구조가 효과적이다.
예컨대 과제를 시작하는 첫 10분 동안은 계획, 주장, 반증 실험 두 가지를 손 글씨나 칠판에 기록하도록 한다. 이후 AI 활용은 가능하더라도 학습의 기초 토대는 학생 스스로 제시해야 한다. 실제 시범 운영에서는 답안의 획일성이 줄고 토론의 깊이가 늘어났다.
과제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단순 답변 대신 세 가지 반론과 그 근거를 제출하게 하고, 자료는 서로 독립된 출처 두 곳과 하나의 자료 집합을 활용해 검증하도록 한다. 과학에서는 최종 답보다 오류 분석을, 글쓰기에서는 수정 기록을, 수학에서는 매개변수를 바꿔 풀이 과정을 설명하는 구두 답변을 더 중시하는 방식이다. 이는 OECD가 PISA 2025에서 강조하는 ‘자기조절 학습’과 ‘계산적 사고’의 방향과도 일치한다.
또한 AI 자체를 학습 대상으로 삼는 접근도 가능하다. 동일한 AI 작성 초안을 학생 전원에게 제공하고, 사실과 근거 부족, 오류, 누락된 부분을 평가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자신감 있게 제시되지만 틀린 답변’을 구별하는 훈련이 된다. 아울러 AI를 사용했다면 어떤 내용을 활용했고 어떻게 검증했는지를 공개하도록 해 감시보다 투명성에 기반한 학업 윤리를 확보할 수 있다.
정책은 설계로 완성
학교는 ‘자유로운 사용을 보장하되, 과정을 증명할 책임은 분명히 한다’라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답안이 어떻게 도출됐는지를 종이나 구두 발표로 추적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계획안·수정 기록·구두 발표 등을 평가 기준에 포함해야 한다.
유네스코도 2023년 보고서에서 “기술은 접근성과 맞춤화를 높일 수 있지만, 본질적 사고를 대신하면 해롭다”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무조건적 금지보다는 유익한 활용은 허용하고, 학습을 저해하는 사용은 차단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학생을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학습자로 존중하는 접근이 지속 가능하다.
휴대전화 역시 같은 맥락이다. 수업 중에는 제한하되 점심시간과 방과 후에는 허용하고, 의료적 필요에는 예외를 두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무조건적 자유와 전면적 통제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하며, 궁극적 목표는 사고 과정을 드러내는 수업 전환에 있다.
기술 활용의 양면성
PISA 결과는 인과관계를 확증하지는 않지만, 현장 교사들의 경험과는 일치한다. 여가성 기기 사용이 늘면 학업 성취와 집중은 약화되지만, 수업 속에서 구조화된 기술 활용은 학습 효과를 높일 수 있다. 따라서 쟁점은 ‘기술 금지’가 아니라, 제한된 주의력과 사고력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다.
성적은 반드시 사고 과정을 드러내는 답변을 통해 평가돼야 하며, AI는 결론을 대신 내는 수단이 아니라 피드백을 강화하는 보조 장치로 활용돼야 한다. 결국 남겨야 할 메시지는 분명하다. AI가 학생들의 역량을 약화시킨 것이 아니라, 학교가 더 사고 중심적으로 변화했다는 사실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Make Thinking Visible Again: How to Teach in an Age of Instant Answers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