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보급형 RGB LED TV ‘기대 이상’ 평가, 삼성전자 ‘20년 왕좌’ 빨간불
입력
수정
용석우 사장 “RGB 미니 LED TV 출시 계획 없다” 중국 RGB 미니 LED 화질 기대 이상, OLED에 근접 고급화 택한 삼성전자 TV 전략 차질 우려

글로벌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중국의 추격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특히 TV 분야에서 RGB 미니 LED를 앞세워 프리미엄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을 잠식하고, 패널 분야에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점유율을 끌어올려 한국 기업들을 몰아 붙이고 있다. 이에 삼성전자는 TV 시장의 최대 격전지로 떠오른 RGB LED TV에서 중국과의 보급형 경쟁을 포기하고 하이엔드 라인업으로 대응에 나설 예정이지만, 최근 중국 기업들이 선보인 RGB 미니 LED TV가 기대 이상의 평가를 받으면서 이 같은 고급화 전략이 무색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삼성전자, RGB LED TV '하이엔드 라인업'으로 중국과 차별화
17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용석우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 사장은 최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IT 전시회 ‘IFA 2025’에서 중국 가전 기업들이 쏟아내고 있는 RGB 미니 LED TV의 대응 전략에 대해 “RGB 미니 LED TV를 내놓는 방식으로 정면 대결할 계획은 없다”며 “RGB LED TV는 하이엔드 라인업으로 인치수를 다양화하는 방식으로 고급화 전략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RGB LED TV는 LCD 패널과 적(R)·녹(G)·청(B) 컬러필터를 적용하는 기존 LCD TV 구조를 골격으로 한다. 외부 광원이 필요한 ‘비(非)자발광’ 제품으로, 후면광원(백라이트유닛·BLU)으로 RGB 발광다이오드(LED)를 사용한 것이 백색 LED 후면광원을 적용하는 기존 미니 LED-LCD TV와의 차별점이다. RGB LED를 후면광원에 사용하면 백색 LED를 사용할 때보다 색재현율과 명암비를 높일 수 있다.
RGB LED TV는 LED 소자의 크기와 집적도에 따라 하이엔드급인 마이크로 LED와 그보다 저렴한 가격대의 미니 LED로 나뉜다. 중국 기업들은 미니 LED를 기반으로 한 RGB 미니 LED TV를 내놓으며 보급형 시장을 공략 중인데, 삼성전자는 이를 피해 마이크로 LED 방식으로 하이엔드 전략을 구사한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115인치 크기의 RGB 마이크로 LED TV를 출시했으며, 미국에서도 곧 출시할 예정이다. 이후 75인치, 85인치, 그리고 98인치 모델 등의 다양한 크기로 제품군을 출시하는 것과 동시에 글로벌 주요국에도 순차적으로 판매할 계획이다.

중국, 정부 지원 앞세운 RGB 미니 LED로 추격 가속
삼성전자가 라인업을 수정한 이유는 명확하다. 중국 업체들이 보급형과 중저가형을 넘어 프리미엄 시장까지 빠르게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인공지능(AI) 기능, 구독 서비스, OLED 전환, 초대형 화면 등 다양한 기술을 내세워 프리미엄 전략을 지켜왔다. 이런 차별화 전략 덕분에 중국이 LCD 중심으로 보급형 시장을 확대하는 동안 프리미엄 시장만큼은 지켜낼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판도가 달라졌다. 중국 업체들은 가격 경쟁력과 규모의 경제만으로 프리미엄 시장 점유율까지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실제 이번 IFA 2025에서도 중국 기업들은 진일보한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세계의 눈을 집중시켰다. 먼저 세계 TV 시장 점유율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바짝 뒤쫓고 있는 하이센스는 지난 7월 출시한 RGB 미니 LED TV를 전시하며 ‘RGB 미니 LED TV의 근본’, ‘세계 최대 크기인 116인치’ 등의 문구를 새겨넣었다. 전시관 중앙에는 2026년에 열릴 북중미 피파 월드컵 후원사로서 ‘하이센스·피파 공식 후원존’을 설치해 축구 경기를 연이어 송출하며 선명한 색감 구현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이센스는 언론인들과 관계사를 대상으로 연 간담회에서도 RGB 미니 LED TV를 중점적으로 홍보하며 ‘세계 최대 크기’와 ‘에너지 고효율’을 강조했다. 대니스 리 하이센스 비주얼테크 CEO(최고경영자)는 “AI로 헤일로(광륜·햇무리) 현상을 60% 가량 줄이고 밝기를 20% 증가시키는 한편, 블루라이트도 42% 감소시켰다”며 “수많은 회사가 RGB LED TV를 시도했지만 대중 생산에 실패했지만 하이센스는 칩셋 기술을 통해 성공했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 중국 가전기업 TCL 역시 163인치 RGB 미니 LED TV를 행사장 중앙에 설치해 크기와 규모로 압도했다. TCL 관계자 측은 2,488만 개 LED와 최대 밝기 1만 니트(nit)를 구현했다고 강조했다. 크기와 스펙으로 압도하며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스콧 라미레스 TCL 부사장은 “TCL은 RGB 미니 LED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며 “최신 TV엔 초고출력 LED 칩을 탑재한 데다 정밀한 빛 제어를 위해 응축 렌즈와 광학 설계 기술을 적용했다”고 했다. 이를 앞세워 TCL은 지난해 북미 시장에서 TV 제조사 중 시장 점유율을 가장 많이 늘렸다고도 강조했다.
현재 중국은 미니 LED를 OLED에 대응할 수 있는 대안 기술로 앞세우고 있다. 로컬 디밍 존을 활용해 블록 단위로 밝기를 조절하며 기존 LCD의 한계를 보완하고, 명암비를 개선해 OLED와 화질 경쟁을 시도하는 방식이다. 특히 정부 보조금과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생산량을 빠르게 늘리면서 시장 장악을 가속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RGB LED TV가 OLED의 우수성을 뛰어넘긴 힘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시장 수요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RGB LED TV는 OLED TV보다는 성능이 다소 떨어지지만, 미니 LED TV보다는 우월한 만큼 가격대도 그 중간 지점에 형성될 전망이다. 프리미엄 TV를 구매하고 싶지만 OLED TV는 너무 비싸 망설이던 소비자를 겨냥해 만든 절충안이 RGB LED TV인 셈이다.
글로벌 1위 위태, 내년 중국에 왕좌 내줄 수도
이에 삼성전자는 하이엔드 시장 공략을 통해 중국 기업들과 기술 격차를 벌리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으나, 시장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초프리미엄 제품 특성상 가격 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삼성전자의 115인치 크기의 RGB 마이크로 LED TV 가격은 4,490만원으로, 기술적으로 더 우위에 있는 OLED TV보다도 가격이 높다. 게다가 판매 지역도 미국과 한국으로 국한돼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중국 경쟁사들이 RGB 미니 LED TV의 화질을 꾸준히 개선해 나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면 결과적으로 보급형 시장뿐만 아니라 프리미엄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RGB 마이크로 LED TV가 RGB 미니 LED TV에 비해 4~5배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기술적 차별점을 보여주지 못할 경우, 중저가 TV뿐 아니라 고가형 TV 시장마저 잠식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삼성전자의 글로벌 1위 자리도 위태롭게 할 공산이 크다. 삼성전자는 2006년 TV부문에서 글로벌 판매 1위를 달성한 이후 19년 동안 한 번도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지속적인 기술·디자인 혁신과 자사 다른 기기와의 호환성 등 생태계 전략을 기반으로 기술과 브랜드 양면에서 경쟁사 대비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삼성전자가 중국 기업에 왕좌를 내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속속 나오고 있다. 디스플레이 시장조사기관 유비리서치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TV 출하량은 2020년 5,000만 대에서 지난해 3,000만 대 중반으로 감소했으며, 내년이면 하이센스가 삼성전자를 앞지르고 2028년에는 TCL도 삼성을 능가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