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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테크] 스페인 대정전, 재생에너지 확산 속 전력망 취약성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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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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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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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에 대해 사실에 근거한 분석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전달에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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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드러난 전력망 취약성
값싼 태양광 보급 속도에 뒤처진 배전망과 건물 인프라
안정적 전력 공급 위한 전력망 보강 및 제도적 지원 필요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난해 스페인은 전력의 56.8%를 재생에너지로 생산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듬해 4월 단일 계통 사고가 발생하자 이베리아반도의 상당 지역이 순식간에 암흑에 빠졌다. 열차 운행이 멈추고 병원 운영이 차질을 빚으면서 태양광 설비만으로는 정전을 견딜 수 없다는 현실이 드러났다. 옥상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은 안전 규정에 따라 자동 차단됐고, 풍부한 일조량과 세계 최저 수준의 모듈 가격이라는 강점도 취약한 전력망 구조 앞에서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불과 3년 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유럽의 가스 가격이 메가와트시(MWh)당 300유로(약 45만원)를 넘어섰던 시기의 기억이 다시 소환됐다. 당시 에너지 확보에 총력을 기울였던 경험과 대비할 때, 이번 정전은 재생에너지 확대만으로는 안정적인 전력 시스템을 완성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각인시켰다.

태양광 설치 급증과 인프라 공백

2022년부터 2024년까지 모듈 가격 급락과 보조금이 맞물리면서 스페인 내 태양광 설치가 급격히 늘었다. 중국의 과잉 생산으로 모듈 가격은 절반 이상 하락했고, 풍부한 일조량은 값싼 전력을 빠르게 흡수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했다. 그러나 올해 일어난 정전의 원인은 패널 부족이 아니었다. 전선, 인버터, 보호 장치, 건물 설비 등 전력망 자체가 취약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문제의 본질은 발전 기술의 수준이 아니라, 전력망이 외부 충격을 흡수하고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는지에 있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했던 에너지 위기 역시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뒷받침한다. 가스 가격 급등 여파로 2022~2023년 유럽연합(EU) 전력 수요는 약 3% 감소했다. 스페인 정부는 ‘가스 가격 상한제’를 도입해 급격한 가격 상승을 일정 부분 완화했지만, 비용 부담 완화가 전력망 안정성 확보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전력 시스템은 여전히 양방향 전력 흐름과 계통 분리 상황에 취약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유럽 거래소의 가스 및 전기 가격(단위: 유로/메가와트시)
주: 그래프(A) 가스, 그래프(B) 전기/날짜(X축), 다음날 가격(Y축)

재생에너지 확산 속 전력망 부담

이에 스페인은 지난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다시 한번 끌어올렸다. 풍력과 태양광을 합쳐 1년 새 7.3GW가 추가됐다. 여기엔 단기간에 모듈 가격이 50~60% 급락한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가격 중심의 보급 속도는 전력망이라는 기반 인프라의 확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지붕 위 태양광 패널은 빠르게 늘어났지만, 건물 전기실과 배전망은 기존 구조에 머물렀다. 그 결과 지난 4월, 일조량이 가장 풍부한 한낮에도 다수의 건물이 정전 상태에 놓였다. 표준 계통 연계 인버터가 정전 시 자동 차단되도록 설계된 구조 때문이다. 배터리, 독립 운전 기능, 안전한 전환 장치가 없다면 태양광 확대는 전력 공급 안정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 문제는 스페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EU의 계통 규정은 정전 상황에서 소규모 발전원이 임의로 전력을 공급하지 못하도록 ‘안티 아일랜딩’ 기능을 의무화하고 있다. 안전 확보를 위한 조치지만, 노후 건물과 전기 설비는 여전히 취약성을 드러낸다. 특히 구식 분전반, 제한된 배선 용량, 노후 차단기 등은 마이크로그리드 구축을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요금 완화 넘어 인프라 강화로

전력은 국가 지탱하는 핵심 기반이다. 안정적인 조명과 통신망, 폭염 상황에서의 실내 온도 유지, 식품과 의약품 보관, 안전 시스템 가동은 모두 필수 조건에 해당한다. 스페인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이미 갖추고 있다. 2019년 제정된 왕령은 집단 자가소비와 에너지 공유를 허용했고, 최근 계통 규정은 분산형 발전기의 기술 요건을 구체화했다. 이러한 제도는 배터리 도입, 독립 운전 모드 설정, 지역 에너지 공동체와의 연계를 통해 위기 시 자립성과 평상시 효율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도록 한다.

EU 회복 기금도 활용할 수 있다. 스페인은 현재 공공건물과 체육시설을 중심으로 대규모 에너지 효율 개선 사업을 추진 중이다. 실행 방안은 분명하다. 건물 단위 배터리를 설치해 핵심 부하를 일정 시간 이상 유지하고, 독립 운전을 지원하는 인버터를 의무화하며, 노후 전기실과 배선을 최신 규격으로 교체하고, 지역 에너지 공동체와 연결해 평상시에는 수익을, 위기 시에는 자립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가계 소득 5분위별 정부 정책 개입 효과(단위: 유로, %)
주: 그래프(A) 연간 요금 변동, 그래프(B) 소득 대비 요금 변동 비율 /가계 소득 분위(X축), 요금 및 비율(Y축)/에너지 위기 효과(갈색), 절약 개입 효과(회색), 가격 개입 효과(분홍), 개입 간 상호 효과(보라색)

전력망 역량이 진짜 기준

일각에서는 스페인의 태양광 확대를 단순히 ‘대안 부재’로 해석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2024년 기준 원전은 전체 발전의 약 20%를 담당했고, 풍력이 최대 비중을 차지했으며 수력 역시 회복 흐름을 보였다. 이는 기술 역량의 부족이 아니라 비용 구조, 인허가 환경, 사회적 선호가 결합된 결과다. 올해 정전이 드러낸 한계 역시 발전원 자체가 아닌 전선, 기술 규격, 공공 인프라 역량에 있었다.

배터리 비용 부담, 마이크로그리드의 복잡성, 건물 단위 대응의 불필요성을 지적하는 견해도 있지만, 최근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배터리와 태양광의 가격은 빠르게 하락했고, 관련 법·기술 표준도 상당 부분 정비됐다. 스페인 전력망 운영 기관 역시 분산형 수요 대응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다만 단순한 태양광 확대만으로는 전력 불안정을 해소하기 어렵다. 핵심 부하 유지 시간, 폭염 대비 냉방, 통신망 가동 같은 자립 기준을 세우고 이를 제도와 재정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과제다.

에너지 전환의 최종 과제

전력 정책의 성과를 발전 비중만으로 평가하는 방식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스페인 정전은 저가 태양광 설비만으로는 전력 시스템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점을 드러냈다. 동시에 전쟁 시기 가스 가격 급등은 요금 완화 정책이 곧바로 시스템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향후 필요한 것은 현실 조건을 반영한 전력망 중심의 정책 설계다. 유럽 표준이 요구하는 안티 아일랜딩 규정, 급증한 옥상 태양광 설비, 개보수가 시급한 노후 건물 인프라는 모두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정부는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지역 단위에서 표준화된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동시에, 전력망 보강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에너지 전환의 성패는 설치 용량의 확대가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도 전력 공급을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 복원력에 달려 있다. 이것이야말로 다음 위기를 대비하는 핵심 기준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Wires Before Watts: What Spain's Blackout Teaches Schools About Energy Security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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