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 Home
  • 딥테크
  • [딥테크] 스페인 대정전, 재생에너지 확산 속 전력망 취약성 드러나

[딥테크] 스페인 대정전, 재생에너지 확산 속 전력망 취약성 드러나

Picture

Member for

3 months 1 week
Real name
송혜리
Position
연구원
Bio
다양한 주제에 대해 사실에 근거한 분석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전달에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수정

스페인,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드러난 전력망의 구조적 취약성
값싼 태양광 보급 속도에 뒤처진 배전망과 건물 인프라
안정적 전력 공급을 위한 전력망 보강과 제도적 지원 필요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4년 스페인은 전력의 56.8%를 재생에너지로 생산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듬해 4월 단일 계통 사고가 발생하자 이베리아반도의 상당 지역이 순식간에 암흑에 빠졌다. 열차 운행이 멈추고 병원 운영이 차질을 빚으면서 태양광 설비만으로는 정전을 견딜 수 없다는 현실이 드러났다. 옥상에 설치된 패널은 안전 규정에 따라 자동 차단됐고, 유럽에서 가장 많은 일조량과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모듈 가격이라는 장점은 취약한 전력망 앞에서 힘을 잃었다.

불과 3년 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 가스 가격이 MWh당 300유로(약 45만원)를 돌파했을 때 전력 확보에 몰두했던 기억이 다시 소환됐다. 이번 정전은 단순한 태양광 보급 확대만으로는 안정적인 전력 체계를 구축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줬다.

사진=ChatGPT

태양광 설치 급증과 인프라 공백

2022년부터 2024년까지 모듈 가격 급락과 보조금이 맞물리며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태양광 설치는 급격히 늘었다. 중국의 과잉 생산으로 모듈 가격은 절반 이상 하락했고, 풍부한 일조량은 값싼 전력을 빠르게 흡수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했다. 그러나 2025년 정전의 원인은 패널 부족이 아니었다. 전선, 인버터, 보호 장치, 건물 설비 등 전력망 자체가 취약했던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발전 기술의 수준이 아니라 전력망이 충격을 흡수하고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지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 역시 이러한 상황을 뒷받침한다. 가스 가격 급등으로 2022~2023년 EU 전력 수요는 3% 감소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가스 가격 상한제’를 도입해 극단적인 가격 폭등을 일정 부분 차단했지만, 청구서 부담 완화가 곧 전력망의 안정성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전력 설비는 여전히 양방향 전력 흐름이나 갑작스러운 계통 분리에 취약했다. 따라서 향후 정책의 초점은 태양광 보급 확대가 아니라 위기 상황을 견딜 수 있는 전력망 강화에 맞춰져야 한다.

유럽 거래소의 가스 및 전기 가격(단위: 유로/메가와트시)
주: 그래프(A) 가스, 그래프(B) 전기/날짜(X축), 다음날 가격(Y축)

재생에너지 확산과 전력망 부담

2024년 스페인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다시 한번 끌어올렸고, 태양광은 설치 용량 1위 자리에 올랐다. 풍력과 태양광을 합쳐 1년 새 7.3GW가 추가됐다. 이는 불과 2년 만에 모듈 가격이 50~60% 급락한 결과였다. 하지만 가격 중심의 보급 속도는 전력망이라는 기반 시설을 따라가지 못했다. 지붕마다 패널은 늘어났지만, 건물 전기실과 배전망은 그대로였던 것이다. 그 결과 2025년 4월, 햇빛이 쏟아지는 한낮에도 수많은 건물이 정전에 갇혔다. 표준 계통 연계 인버터가 정전 시 자동으로 차단되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 독립 운전 기능, 안전한 전환 장치가 없다면 태양광 확대는 곧바로 전력 공급 안정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규제 한계와 국경 파급

이 같은 문제는 스페인만의 사례가 아니다. 유럽 계통 규정은 정전 시 소규모 발전원이 라인을 무단으로 살리지 못하도록 ‘안티 아일랜딩’ 기능을 의무화하고 있다. 안전을 위한 장치지만, 낡은 건물과 노후 전기 설비는 여전히 취약점을 드러낸다. 구식 분전반, 부족한 배선 용량, 오래된 차단기는 마이크로그리드 구축을 가로막는다. 이는 기후 문제가 아니라 전력망 인프라의 문제이며,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전력망의 구조적 한계도 분명해졌다. 스페인 전력망 운영 당국은 재생에너지 통합과 송전 가용성을 높여왔지만, 실제로 전기를 공급하는 배전망은 양방향 흐름과 복잡한 보호 설계의 부담을 떠안았다. 4월 사고 당시 포르투갈은 계통 불안정에 대비해 스페인산 전력 수입을 줄였고, 그 결과 국경 양측의 도매가격 격차가 단기간에 크게 벌어졌다. 단일 국가의 정전이 국경을 넘어 전력시장 전반의 불안정으로 확산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요금 완화 넘어 인프라 강화로

전력은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 지역 사회를 지탱하는 기반이다. 안정적인 조명, 통신망, 폭염 속 실내 온도 유지, 식품과 의약품 보관, 안전 시스템 가동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스페인은 이미 제도적 토대를 갖췄다. 2019년 제정된 왕령은 집단 자가소비와 에너지 공유를 가능케 했고, 최신 계통 규정은 분산 발전기의 기술 요건을 담았다. 이 제도들은 배터리 도입, 독립 운전 모드 설정, 지역 에너지 공동체와의 연계를 통해 위기 시 자립성과 평상시 효율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도록 한다.

EU 회복 기금도 활용할 수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이미 공공건물과 체육시설을 대상으로 대규모 에너지 개선 사업을 진행 중이다. 실행 방안은 분명하다. 건물 단위 배터리를 설치해 핵심 부하를 일정 시간 이상 유지하고, 독립 운전을 지원하는 인버터를 의무화하며, 노후 전기실과 배선을 최신 규격으로 교체하고, 지역 에너지 공동체와 연결해 평상시에는 수익을, 위기 시에는 자립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가계 소득 5분위별 정부 정책 개입 효과(단위: 유로, %)
주: 그래프(A) 연간 요금 변동, 그래프(B) 소득 대비 요금 변동 비율 /가계 소득 분위(X축), 요금 및 비율(Y축)/에너지 위기 효과(갈색), 절약 개입 효과(회색), 가격 개입 효과(분홍), 개입 간 상호 효과(보라색)

전력망 역량이 진짜 기준

스페인의 태양광 확대를 단순히 ‘대안 부재’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2024년에도 원전은 전체 발전의 약 20%를 담당했고, 풍력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수력도 회복세를 보였다. 이는 기술 역량 부족이 아니라 비용 곡선, 인허가 환경, 사회적 선호가 반영된 결과였다. 2025년 정전이 드러낸 한계는 발전원이 아니라 전선, 규격, 공공 인프라의 역량이었다.

일각에서는 배터리는 여전히 비싸고 마이크로그리드는 복잡하며 건물 단위에서 전력망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현실은 달라졌다. 배터리와 태양광 가격은 크게 하락했고, 법적·기술적 표준도 이미 마련됐다. 스페인 전력망 운영 기관은 분산형 수요 대응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태양광만 늘려서는 불안정을 해소할 수 없다. 핵심 부하 유지 시간, 폭염 대비 냉방, 통신망 가동 같은 자립 기준을 세우고 이를 제도와 재정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과제다.

에너지 전환의 최종 과제

전력 정책의 성과를 단순히 발전 비중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2025년 4월 정전은 값싼 패널만으로는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또한 전쟁 시기 가스 가격 급등은 요금 완화가 곧 안정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줬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현실적 조건을 반영한 전력망 정책이다. 유럽 표준이 요구하는 안티 아일랜딩 규정, 급격히 늘어난 옥상 태양광, 개조가 시급한 노후 건물은 모두 풀어야 할 과제다. 정부는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지역 차원에서 표준화된 대응 체계를 마련하며, 전력망 보강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에너지 전환의 성공은 설치된 설비의 양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도 끊기지 않는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이것이야말로 다음 위기를 대비하는 진정한 기준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Wires Before Watts: What Spain's Blackout Teaches Schools About Energy Security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

Picture

Member for

3 months 1 week
Real name
송혜리
Position
연구원
Bio
다양한 주제에 대해 사실에 근거한 분석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전달에 책임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