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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랜드 기업회생 발표의 후폭풍으로 지자체뿐만 아니라 정부 기관 및 기업들의 채권 발행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미국발 금리 인상이 계속되며 자금시장이 경색되던 중에 폭탄을 맞았다는 평도 나온다.
지난 2008년 김진선 당시 강원도지사는 레고랜드 유치를 위해 강원도가 출자한 '강원중도개발공사' 설립을 진행했다. 이어 최문순 지사가 2,000억원대의 지급보증을 약속하면서 레고랜드 사업이 시작됐다. 강원중도개발공사의 신용도가 낮아 채권 발행이 불가능한 탓에 신용등급이 A1이었던 강원도가 지급보증을 선 것이다. 이는 일반적인 지자체 추진 프로젝트 파이낸싱 방식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 김진태 강원도지사 재임기간 중 2,050억원 채권에 대한 만기가 도래했으나 레고랜드 사업은 지지부진한 데다 채권 만기 연장까지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미국발 금리 인상과 레고랜드 사업의 비즈니스 문제가 복합 작용한 탓이다. 결국 김진태 지사는 강원중도개발공사를 기업회생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업회생이란 회생법원에서 승인이 날 경우 전체 채권 중 일부만 상환하는 방식이다. 금융권에서는 자금 경색이 일어난 채무자에게 채권단이 일부라도 보전을 받기 위해 협상하는 방식으로 '헤어컷(Haircut)'이라고 불린다. '디폴트 선언'(채무불이행 선언)은 아니지만 사실상 디폴트에 준하는 선언으로, 채무자의 신용에 악영향을 미친다.
사실상 준 디폴트 선언? 高 신용채권에 대한 불신 확산으로 이어져
큰 논란이 된 이유는 최근 연이은 금리 인상으로 기업들이 자금난을 겪고 있는 와중에 신용등급이 A1 이상인 지자체가 채권을 갚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대주단들은 당장 수천억원의 대출이 악성 채권으로 바뀌면서 금융기관별 건전성 이슈에 휘말리게 됐고, 이는 일선 은행 지점들의 대출 여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그뿐만 아니라 지자체가 지급보증을 선 수 많은 프로젝트에 대한 대주단들의 신뢰가 급격하게 증발해버렸다. 금리 인상도 자금 경색에 큰 영향을 줬으나, 지자체 지급보증도 기업회생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투신사들의 투자 심리에 막대한 타격을 줬다는 주장도 뒤따른다. 레고랜드에서 채권 회수가 어려워질 경우 기업회생 기간 동안 최소 몇 년 이상 자금이 묶이게 되는 데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들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이 커져 추가 자금 유입에 난항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자체 지급보증에 대한 불신은 한국전력의 채권 발행에도 악영향을 줬다. 현재 신용등급이 AAA등급인 한전은 회사채 발행에 기준금리 3%의 약 2배인 5.9%를 약속했으나, 채권단을 모으는 데 실패했다. 일반적으로는 한국은행 기준금리의 약 2배 정도로 회사채 금리가 결정되는 만큼 AAA등급의 채권일 경우 충분히 높은 이자율이라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올해 30조의 적자가 예상되는 만큼 이미 글로벌 채권평가 기관인 스탠다드앤푸어스(Standard & Poor's, S&P)가 한전의 신용등급을 BB+로 재조정하고 나섰다.
미국발 금리 인상이 연말까지 계속되는 가운데, 한국은행이 연말까지 3.5%대로 금리를 인상한다는 전망과 함께 레고랜드 여파에 따른 자금 경색이 회사채 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것이라는 견해도 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 회사채 투자자는 "연말께 최소 7~8%의 이자율로 고신용 군의 회사채를 구매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는 업계 내부의 평을 공유하며, 연말연시까지 당분간 자금시장 경색이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2천억으로 막을 일을 50조로 막았다? 원흉은 김진태 지사?
이번 사건에 대해 인터넷 여론은 김진태 지사의 잘못이다 아니다로 양분되어 있다. 일각에서는 지자체 지급보증이라고 안전하다는 법이 없다며 사업 역량이 부족한 인원들이 모인 레고랜드 사업에 채권투자를 진행했던 투자자들이 피해를 떠안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반대편에서는 2천억원으로 막을 수 있는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결국 50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자금을 부어 위기를 막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고 김진태 지사를 비난하기도 한다.
김 지사를 옹호하는 측은 '어차피 세금으로 메우면 되는 것 아니냐'는 안이한 생각과 함께 기업가, 채권단, 전 강원도지사의 문제를 김 지사가 수면 위로 띄운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는다. 사실상 2천억원짜리 관급공사나 다름없는 사업이었던 만큼 강원도에서 엄격하게 심사, 관리했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최문순 지사 시절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던 것이 이번에 터졌다는 것이다. 반면 안이한 생각에 철퇴를 가해 시장 원리를 관철하겠다는 김 지사의 의지를 비난하는 측은 반시장적인 사고로 경제적인 문제를 정치적 이슈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자체 보증이 간단하게 뒤집어질 수 있는 사안이라는 것이 시장에 받아들여질 충격파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도 지불 유예를 선언한 바 있지 않으냐는 의견도 있다. 자금시장 경색이 한층 심화하고 있는 현시점에는 부적절한 선택이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특히 강원도가 타 지자체에 비해 특별히 재정 상황이 나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기업회생을 택한 탓에 재정 상황과 관계없이 지자체 사업들이 대부분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빅데이터 여론을 살펴보면 50조원 투입이라는 강수를 둔 정부와 김진태 현 강원도 도지사보다 최문순 전 도지사가 더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위의 빅데이터 키워드 네트워크는 함께 언급되는 키워드들을 자동으로 묶어 동일한 색상으로 표현하는 '관계 중심성(Betweenness Centrality)'에 따른 것으로 가운데의 '50조'를 둘러싸고 우측 하늘색의 김진태 도지사 키워드, 하단 붉은색의 윤석열 대통령, 좌측 보라색의 최문순 전 도지사, 상단 녹색의 채권시장 경색 관련 키워드가 배정되어 있다. 이 중 50조원 투입이 보라색 계열로 나타나면서 인터넷 여론이 50조원 투입의 주원인이 김진태 지사가 아니라 최문순 전 지사의 운영 부실이라는 쪽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