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폴리시] 중국의 중앙아시아 확장 가속, 인도 전략 재정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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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BRI와 CPEC 확장으로 중앙아시아 영향력 강화 미국 제재로 차바하르 불안정해지며 인도 접근로 위축 인도, 러시아 채널 유지와 미·EU 협력 병행 시급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을 둘러싼 역내 질서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BRI)를 앞세워 중앙아시아 투자를 확대하는 동시에,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에 아프가니스탄을 새로 편입하기로 합의하며 인도의 서쪽 통로를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인도의 중앙아시아 진출을 위한 해상 경로인 이란의 차바하르(Chabahar) 항만 제재 면제를 철회했고, 이로 인해 항만 운용이 불안정해지면서 인도는 해상 접근로에서도 제약을 받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과 외교 접촉을 이어가며, 중앙아시아 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의 자금력, 미국의 제재, 러시아의 외교 채널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인도의 전략적 공간은 좁아지고 있다.

경제 영향력 경쟁, 인도의 대응 과제
중국은 중앙아시아에서 안보 협력과 경제 투자를 결합하며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2025년 8월 중국·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외교부 장관들은 아프가니스탄의 CPEC 편입을 재확인했고, 중국은 국경 지역의 불안정을 명분으로 안보 협력을 강화하면서 농산물·광물 교역을 확대하고 있다.
이와 병행해 중국은 다른 나라보다 빠르게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과 외교 관계를 정상화했다. 2023~2024년 탈레반이 임명한 대사를 공식 수용하면서 사실상 외교 인정을 시작했다. 자원 분야에서도 중국의 진출은 공격적이다. 중국 광산기업 쯔진 마이닝(Zijin Mining)은 카자흐스탄에서 12억 달러(약 1조6,400억원) 규모의 금광을 인수했고, 중국 기업들은 구리·리튬·텅스텐 등 전략 광물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처럼 중앙아시아에서 서아시아로 이어지는 공급망이 빠르게 중국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주: 국가-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중앙아시아 전체, 기타 BRI 참여국, 전체 합계(X축), 투자 규모(Y축)
반면 인도의 대응은 더디다. 외교적 수사보다 공급망 안정, 통관 절차, 무역보험 체계 개선 같은 실질적 조치가 시급하다. 특히 차바하르 항만의 불안정으로 인해 중앙아시아 진출의 핵심 통로가 흔들리면서, 인도의 전략적 입지는 약화되고 있다. 중국의 자금력에 대응하려면 인도는 안정적 연결망과 제도 기반을 스스로 구축해야 한다. 무역로 다변화와 물류 기반 확충, 금융·보험 협력 확대가 그 출발점이다.
러시아와 서방 사이, 현실적 연계 전략
러시아는 여전히 인도가 중앙아시아로 진출하기 위한 주요 통로이자, 지역 안보 관리의 협력국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재정 부담이 커지면서 러시아는 개발 자금과 기술 지원 능력을 잃었다.
전쟁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아, 러시아의 관심은 당분간 유럽 지역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의 에너지와 원전 사업에서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다. 2024년 5월 우즈베키스탄 첫 원전 건설 계약이 그 사례다. 인도는 이런 협력선을 통해 안보 대화와 물류 협의 같은 실무 접점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러시아가 제공할 수 있는 자원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인도는 자금과 기술을 서방과의 협력에서 보완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2025년 9월 29일, 차바하르 항만에 대한 제재 면제를 철회했다. 인도와 이란이 체결한 10년짜리 항만 협정이 대이란 제재 규정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조치로 인도가 아프가니스탄과 중앙아시아로 접근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안전한 해상 통로가 흔들리고 있다.
한편, 유럽연합(EU)은 ‘글로벌 게이트웨이(Global Gateway)’를 통해 인프라 투자를 추진하고 있으나, 사업 진행 속도는 더디다. 인도는 이 자금을 운송·교육·기술 분야의 실질적 협력 사업으로 연결해 구체적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앙아시아 시장은 중국의 자금력과 파키스탄의 통로에 점점 더 종속될 가능성이 높다.

주: 국가-중국, 러시아, 유럽연합, 미국, 인도(X축), 영향력 지수(Y축)
아프가니스탄, 인도 전략의 시험대
아프가니스탄은 인도의 대외 전략이 실질적으로 평가되는 무대가 되고 있다. 중국·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3국은 CPEC 확장을 재확인했고, 중국은 광물 개발·농업·안보 협력을 동시에 추진하며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러시아는 탈레반 대표단을 초청해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으며, 인도는 CPEC 확장을 ‘주권 침해’로 규정하고 반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한 반대만으로는 아프가니스탄의 균형을 지키기 어렵다.
인도에관건은 미국의 제재 면제 없이도 합법적이고 안정적인 무역 통로를 유지할 수 있느냐다. 이를 통해 물류·통관·표준 체계 등 실질적 경제 질서에서 영향력을 확보해야 한다. 중국의 영향력은 여전히 우세하지만, 그 과정에서 불안 요인도 나타나고 있다. 2025년 6~8월 탈레반이 중국 기업과의 석유 개발 계약을 취소하며 일부 프로젝트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그럼에도 중국은 외교 정상화와 인프라 협력을 병행하며 주도권을 유지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정치적 안정 논의와 경제 협력이 맞물리며 주변국과 투자자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인도는 이 변화를 실질적 영향력 확보의 기회로 전환해야 한다.
인도 전략의 다음 단계
인도가 영향력을 유지하려면 구체적인 실행 전략이 요구된다.
이란의 차바하르 항만은 제재 속에서도 지켜야 할 핵심 통로다. 인도는 미국의 인도적 예외 규정을 활용해 교육·보건·구호물자 운송을 위한 별도 통로를 설계하고, 교재·백신·의약품 등 제한 품목을 중심으로 투명한 물류 관리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러시아와의 협력은 상징보다 실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러시아는 전쟁으로 여력이 줄었지만, 여전히 중앙아시아 에너지망에 참여하고 있다. 인도는 분쟁 관리 채널을 유지하며 운송 안전·통관 절차 등 실무 협의를 지속해야 한다.
서방과의 협력도 확대가 필요하다. 인도는 냉장 운송, 검사 기술, 철도 기자재 사업을 EU의 글로벌 게이트웨이 프로젝트와 연계하고, 미국과는 기술 협력을 물류와 산업 분야로 구체화해야 한다. 중앙아시아 화물보험 기금과 기술 교육 프로그램 같은 소규모 협력도 신뢰 구축에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인도는 아프가니스탄과 중앙아시아의 교류를 상징적 외교 수준에서 실질적 인력 양성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유엔 감독 아래 물류, 농업, 보건 분야의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교육과 취업 성과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중국이 인프라를 제공한다면, 인도는 그 인프라를 운영할 인력을 길러야 한다.
인도에 주어진 마지막 선택
2025년 상반기, 중국의 일대일로(BRI) 투자는 571억 달러(약 79조2,000억원), 이 중 250억 달러(약 34조7,000억원)가 중앙아시아에 투입됐다. 이는 단순한 투자 확대가 아니라 지역 질서가 중국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은 자본으로, 러시아는 외교 채널로,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제재와 기준으로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 주요 행위국이 각자의 이해에 따라 움직이면서, 인도가 개입할 여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앞으로 1년은 인도에 결정적인 시기가 될 것이다. 러시아를 통한 접근 통로를 유지하고, 미국·EU 협력으로 자금·보험·표준 체계를 보완해야 한다. 차바하르 항만의 안정적 운영, 글로벌 게이트웨이 프로젝트 연계, 교육과 기술 협력의 전략적 활용이 핵심 과제다. 이 균형을 지키지 못한다면, 중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의 새로운 규칙과 경로는 인도를 배제한 채 형성될 것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Hedging Kabul: How India’s Central Asia Strategy Can Balance China’s Influence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