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험 성범죄자 학교 500m 내 거주 제한한다, ‘제시카법’ 도입

법무부, ‘2023년 법무부 5대 핵심 추진과제’ 보고 성범죄자 거주지 관련 국민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도입 기본권 제한·지역 편중 우려도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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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법무부

법무부가 재범 위험성이 높은 고위험 성범죄자가 학교 및 보육시설 등으로부터 500m 이내에 살지 못하도록 거주를 제한하는 한국형 ‘제시카법’ 도입을 추진한다. 26일 법무부는 청와대 영빈관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23년 법무부 5대 핵심 추진과제’를 보고했다. 법무부는 ▲범죄로부터 안전한 나라 실현 ▲새롭게 만들어가는 출입국·이민 정책 ▲반법치 행위 강력 대응으로 법질서 확립 ▲미래 번영을 이끄는 법질서 인프라 구축 ▲사회 구석구석의 사각지대 인권 보호 등 5대 핵심 추진과제를 통해 미래 번영을 뒷받침하는 글로벌 선진 법치를 실현해 나간다.

우선 고위험 성범죄자가 죗값을 치르고 출소 후 법원 결정을 받아 학교, 어린이집, 유치원과 같은 보육시설 등에서 500m 안 지역에 살지 못하도록 거주를 제한한다. 고위험 성범죄자는 불특정 다수 피해자를 표적 삼아 반복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이력이 있고 재범 위험성이 높은 사람이다.

윤웅장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은 “미국의 경우 600m 이내를 접근금지 구역으로 정한 곳이 다수인데,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인구 밀집 정도가 높은 점을 감안해 500m로 범위로 정했다”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법무부는 서울·인천·부산·광주 지역 검찰청에 마약범죄 특별수사팀과 다크웹(특정 프로그램을 이용해야만 접속 가능한 사이트) 전담수사팀을 1분기 이내에 설치한다. 또 올해 상반기 내로 ‘출입국·이민관리청’ (가칭) 신설도 추진한다.

제시카법이란?

이번 법 개정 모델이 된 제시카법은 재범 위험성이 높은 성범죄자가 출소한 후 학교나 유치원 등 보육시설 주변 500m 안 지역에서 살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로, 2005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제시카 런스 포드(당시 9세)가 성범죄 전력이 있는 옆집 남자 존 쿠이에게 납치 강간 살해된 뒤 피해자의 이름을 따서 제정됐다. 당시 피해자의 부친은 “내 이웃이 성범죄자인 줄 알았다면 미리 피해서 딸이 살해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며 이 법이 생겨난 계기가 됐다.

미국 캘리포니아 제시카법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12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성범죄 유죄판결을 받은 성범죄자에 의무적으로 최저 징역 기간 25년을 부과하고, 평생 위치 추적 장치를 부착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성범죄를 저지르고 출소한 사람이 학교와 공원 등으로부터 약 610m 내에 거주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으며, 현재 미국 30개 이상 주에서 시행 중이다.

한국의 제시카법 도입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2023년 법무부 5대 핵심 추진과제’ 업무 보고 뒤 열린 브리핑에서 “지난해 고위험 성범죄자의 잇따른 출소로 인근 주민을 비롯한 많은 국민들이 불안해했다”라며 “미국 제시카법 등 다른 나라 사례를 충분히 검토해 우리나라 환경과 현실에 맞는 한국형 제시카법을 도입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에 법무부는 미국의 제시카법 등 다른 나라의 사례를 연구해, 고위험 성범죄자가 출소 후 법원의 결정에 따라 학교, 어린이집, 유치원과 같은 보육시설 등으로부터 500m 이내(500m를 한도로 사안별로 법원이 결정)에 살지 못하도록 거주를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고위험 성범죄자들이 출소할 때마다 이들을 둘러싼 거주지와 관련한 국민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차원이다. 다만 거주 이전의 자유 등 헌법상 기본권을 고려해 범행을 반복했거나 13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만 적용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거주 제한 반경은 최대 500m 범위에서 사안별로 법원의 결정을 받기로 했다. 이 같은 법이 시행되면 고위험 성범죄자의 대도시 거주는 사실상 어려워진다.

특정 지역에 몰릴 수도, 우려되는 부분

그러나 법조계에선 인구가 밀집된 한국에서 일률적으로 거주 제한에 나설 경우, 과도한 기본권 제한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학교를 기준으로 주거를 제한하게 되면, 사실상 대도시나 중소도시에서 거주하지 못하는 등의 과도한 제한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이렇게 되면 특정 지역에 범죄자가 모일 가능성이 커져 지역적 편중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책 또한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에 대해 한 장관은 “500m 제한을 상한으로 두되, 그 안에서 법원이 사안에 따라 결정할 수 있다. 또한 (법원이) 수용시설이나 보호시설로 (성범죄자의 주거를) 지정하는 경우 이 제한을 받지 않는 예외 조항도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대도시 인구 쏠림 현상이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고 대도시 중심지역은 거주하기도 어려울 만큼 월세가 높아 거주지 제한이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게 적용되는 상황이지만 한국은 서울 및 경기 권역에 전체 인구의 절반 가까운 엄청난 인구가 몰려 살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제시카법을 그대로 한국에 도입하면 성범죄자들은 사실상 대도시 거주가 불가능하고 거주 제한에 걸리지 않는 특정 지역에 범죄자가 모일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이렇게 기본권 제한에 대한 문제와 지역 편중에 대한 우려가 생기는 만큼 그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해야 한다. 미국의 법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우리 실정에 맞는 법안을 만들어야 그 법의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