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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교육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2023학년도 '반도체특성화대학 지원사업' 대상으로 수도권 3개교와 비수도권 5개교 등 총 8개교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수도권에서는 서울대, 성균관대, 명지대가 선정됐고, 비수도권에서는 경북대, 고려대(세종), 부산대, 전북대, 충북대 등이 선정됐다.
반도체특성화대학(이하 반도체대학) 지원사업이란 지난해 교육부가 발표한 '반도체 인재 양성방안'에 따라 반도체 인재를 양성할 대학이나 대학 연합 8곳을 정해 한 해 총 540억원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선정된 대학은 올해부터 2026년까지 4년 동안 재정 지원을 받아 반도체 학과 또는 융합 전공을 개설해 반도체 인재를 양성하게 된다.
교육부, 반도체대학 선정해 인재 양성 지원 추진
교육부가 발표한 선정 결과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수도권 단독형 선정된 서울대와 성균관대는 각각 45억원을 지원받는다. 수도권 동반성장형으로는 명지대와 호서대가 연합을 꾸려 70억원을 지원받는다. 비수도권에서는 경북대, 고려대 세종캠퍼스, 부산대가 단독형으로 선정돼 각각 70억원, 전북대·전남대 연합, 충북대·충남대·한국기술교육대 연합은 동반성장형으로 연합당 85억원의 예산을 지원받는다.
최종 선정된 대학은 대학별 특성화 분야를 중심으로 인재 양성 계획을 이행한다. 특히 학교별로 정한 특성화 분야에 맞춰 차세대 반도체나 시스템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등 다양한 관련 산업 인재를 양성한다는 계획이다. 예컨대 반도체 회로·시스템, 소자·공정을 특성화 분야로 정한 서울대의 경우 첨단융합학부 반도체 전공을 신설하고 반도체 트랙도 운영한다. 차세대 반도체를 특성화 분야로 정한 성균관대의 경우 반도체 융합공학과를 새로 만들기로 했다.
아울러 교육부는 ‘반도체 인재 양성 지원 협업센터’를 운영해 반도체 인재양성을 추진하는 대학들이 산업계, 연구계와 함께 인력수요 및 산업 동향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하도록 할 계획이다. 또한 향후 이미 선정된 대학의 특성화 분야 등을 감안해 전체 반도체 가치사슬별로 특성화대학도 선정할 예정이다.
지원사업 실효성 높이려면 지원금 수준 현실화 필요하단 의견도
하지만 일각에서는 지원금을 훌쩍 뛰어넘는 높은 운영비와 인건비 등을 이유로 반도체대학 지정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실제로 반도체 생산 공정 실습에 필요한 기본적인 생산 환경인 '클린룸'을 비롯해 반도체 교육용 설비는 수십억원대에 달한다. 경기도 내 A대학은 클린룸이 포함된 반도체 공간 조성에만 34억원의 사업비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 관계자들 사이에서 반도체대학 사업은 재정 여력이 있는 주요 대학만을 위한 것 아니냐는 볼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도체대학으로 선정된 B대학 관계자는 "반도체 관련 학과 교수진들과 사업 이행계획을 수립하고 있지만 재정적으로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라며 "설비를 설치하거나 운영하지 않는 방향으로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소프트웨어 쪽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도 "대학에서 반도체 설비와 공간을 마련하기에는 재정적 부담이 커 전국 대학 내 반도체 설비 대부분이 기부를 통해 들이고 있다"며 "이마저도 설비 운영비가 만만치 않아 산업체나 지자체 등과 계약을 맺은 계약학과가 아니면 대학의 재정적 부담이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전 정부의 AI 대학원 육성사업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발생한 바 있다. 2019년 문재인 정부는 4차 산업혁명 경쟁력 강화를 위해 2022년까지 고급 AI 인재 1,000명을 육성하겠다는 목표로 카이스트, 고려대, 성균관대 등을 선정해 10년간 총 19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에 AI 대학원 입학 경쟁률이 카이스트 9대1, 성균관대 8대1, 고려대 7대1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예산 문제로 정작 학생들을 지도할 전문 교수를 구하지 못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C대학 관계자는 AI를 학교에서 가르칠 실력이 되는 인재는 비단 대학뿐만 아니라 대기업에서도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몸값이 비싼데 1년에 20억원 남짓한 정부 지원금과 대학 재정으로는 실력 있는 교수 충원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AI 대학원 개설을 준비했던 D교수도 "제자를 포함해 AI를 전공한 외국 박사나 교수 수십 명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모셔 오려고 러브콜을 보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며 "1억원 남짓한 국내 교수 연봉과 근무 조건으로는 최소 3배에서 10배 높은 연봉을 받는 외국 인재를 모셔 올 수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문재인 정부의 'AI 대학원 육성사업' 반면교사 삼아야
정부 지원금 규모의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점 외에도 이전 정부 AI 대학원 지원 사례에서 반면교사 삼아야 할 것이 또 있다. 바로 인재 양성을 위한 정부 지원의 '방향'이다. 문 정부는 2019년 12월 17일 범부처가 참여해 만든 'AI 국가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당시 문 정부는 2030년까지 국가 디지털 경쟁력을 현 10위에서 세계 3위로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하며 AI 분야 육성을 통해 최대 455조원의 경제 효과 창출이라는 청사진도 함께 제시했다. AI 대학원 지원사업 역시 이 같은 국가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된 사업이다. 이같은 정부 지원을 통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진짜 AI 전문가'를 양성했을까?
최근 연구자들 커뮤니티로 유명한 한 사이트에 'AI 대학원 저는 말리고 싶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요점은 수학이 강한 일부 연구자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AI 연구자가 제대로 아는 것이 너무 없다는 것이었다. 글쓴이는 "특히 요즘 대학원의 연구 방법이라는 것이 '유행'하는 다른 전문가의 연구·접근을 약간 바꿔 '흉내 낸 새로운 논문'을 작성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대학원 연구 방법의 영향으로 연구자들이 왜 그런 연구·접근방법이 등장했고, 어떤 조건에서 가능·불가능한지, 어떤 장단점과 한계가 있는지 등을 알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의 연구 유행이 지나고 새로운 유행이 찾아올 때 발생한다. 새로운 연구방법론이 나타나고 새로운 주제를 탐구해야 할 때 기본기 없는 연구자들은 도태된다. 결국 학계 현실을 개선하지 못한 채 돈만 지원하는 AI 대학원에 간들 무엇이 달라지겠냐는 것이 글쓴이의 요지다.
이번 반도체대학 지원사업도 마찬가지다. 대학을 선정해 무조건 돈만 쏟아부을 것이 아니라 트렌드의 변화에도 발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기본기가 탄탄한 '진짜 전문가'를 육성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별도 지원 예산을 마련하거나 교수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는 게 업계의 공통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