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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기 침체 영향으로 인해 스타트업 시드 투자 수단으로 주목받았던 파티 라운드(Party Round)의 인기가 하락하고 있다. 투자 전문 싱크탱크 피치북에 따르면 올해 스타트업 파티 라운드에 참여한 투자자 수가 최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파티 라운드는 벤처캐피탈(VC) 업계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았으나 다수의 투자자와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널리 이용돼 왔다.
스타트업 시드 투자의 젖줄, '파티 라운드'
파티 라운드란 소수의 VC 주도로 큰 규모의 투자 라운드를 진행하는 것이 아닌, 다수의 소액 투자자를 대상으로 투자 라운드를 진행하는 펀드레이징 기법 중 하나다. 파티 라운드는 2013년 글로벌 액셀러레이터(AC) 와이콤비네이터(YC)가 SAFE(조건부 지분인수 계약·Simple Agreement for Future Equity) 형태의 계약을 소개한 이래 실리콘밸리에 소재한 스타트업의 시드 투자 방법으로 널리 활용됐다. 파티 라운드에서 진행하는 SAFE 계약은 기업 가치 산정이 어려운 초기 스타트업에 먼저 자금을 투자하고, 추후 후속 투자 시 기업 가치 평가가 진행되면 해당 평가 금액에 따라 초기 투자에 대한 지분율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투자자에겐 신속한 투자를, 스타트업엔 다수의 투자자와 소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대표적인 파티 라운드로는 'YC 데모데이'가 있다.
피치북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파티 라운드의 평균 투자자 수는 꾸준히 증가해 2021년에는 거래당 5.84명으로 최대치를 기록했다. 다수의 소액 투자자를 유치해 천만 달러(약 136억원) 이상의 시드 투자를 유치한 스타트업도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파티 라운드를 진행했던 AC 기업 AbstractOPS의 CEO 하리 라가반(Hari Raghavan)은 “파티 라운드는 강세장에서 발생한 독특한 투자 채널”이라며 “장기간 지속된 저금리 환경은 스타트업이 초기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공했고 실제로 많은 자금을 유치했다”고 설명했다. 라가반에 따르면 파티 라운드에 참여한 투자자는 스타트업의 이사회나 사업 방향 결정에 영향력이 적기 때문에 창업자의 운영 권한을 고스란히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아울러 투자자가 많을수록 사업 관련 조언이나 커뮤니케이션 창구를 확보할 수 있으며, 자금 조달 부분에선 한정된 투자자 자리를 두고 투자자들이 경쟁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투자 수요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장점도 존재한다.
파티 라운드 인기 하락, 단점도 부각돼
피치북은 최근 경기 침체 영향으로 파티 라운드당 평균 투자자 수가 3.53명으로 하락해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VC 전문 투자기업 카인드리드캐피탈(Kindred Capital)의 창립 파트너 레일라 제냐(Leila Zegna)는 “투자 시장의 전반적인 흐름을 보면 파티 라운드의 횟수가 줄어들고 있다”며 “현재 VC 투자 시장에선 엑시트(투자금회수)를 위한 기업의 소유권 여부가 중요하기 때문에 기업의 성장 가치에 초점을 맞춘 파티 라운드는 기피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파티 라운드 참여 감소의 요인으로 파티 라운드 자체의 투자 리스크를 제기한다. VC 전문 운용사 VSC벤처스(VSC Ventures)의 제너럴 파트너 제이 카푸어(Jay Kapoor)는 “파티 라운드의 큰 문제는 투자와 성장을 주도할 리드 투자자가 없다는 것”이라며 “경험이 많은 리드 투자자가 없다는 것은 스타트업의 성장을 도울 전략적 투자 책임자가 없다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소수의 VC가 주도하는 투자 라운드의 경우 엑시트 경험이 많은 GP(위탁운용사)가 IPO(기업공개) 혹은 글로벌 성장까지 전략적 참모 역할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다수의 소액 투자자가 참여한 파티 라운드에선 투자자의 경험과 지분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스타트업의 성장 전략을 오로지 창업자에게 기대야 하는 단점이 있다. 다수의 투자자에게 많은 자금을 조달한 경우엔 지분 관계가 더 복잡해져 스타트업의 의사 결정권이 파편화되거나 효율성이 급감하기도 한다.
카푸어는 “파티 라운드의 투자는 마치 쇼핑처럼 진행되기 때문에 모든 투자자가 회사를 좋아하지만, 모든 투자자가 회사를 사랑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며 “소액의 자금을 투자한 투자자에게 높은 충성도와 전략 지원을 기대하기란 힘든 일”이라고 덧붙였다.
생성형 AI 산업은 예외, 투자 책임은 본인의 몫
투자 심리 위축으로 파티 라운드의 인기가 하락하긴 했지만, 특정 분야에선 예외가 있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제냐는 “투자 돌풍 현상을 이끄는 생성형 AI 산업에선 시장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취득하기 위해 소액 투자로 파티 라운드에 참여하는 투자자가 증가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실제로 올해 2분기 AI 기반 스타트업 시드 투자에 대한 기업 가치 평가 금액은 지난 1분기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1분기 대비 시드 투자 계약 건수도 35% 이상 증가했다.
파티 라운드의 인기 하락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들을 위한 파티 라운드는 지속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카푸어는 “초기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스타트업을 위한 파티 라운드는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투자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한다”며 “파티 라운드의 캡 테이블에서 발생하는 책임감 부족이 투자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고”로 지적했다. 그러면서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변동성이 크고 기업 밸류에이션이 하락한 지금 시장에선 투자와 기업 성장 지원을 지속할 수 있는 소수의 투자자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