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 걸린 가계대출, 5대 시중은행 주담대 금리 일제히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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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경고등 켜진 가계대출, 5대 은행 주담대 금리 인상 결정
반년 새 가계대출 16조원 급증했지만, 수요 억제 대책은 없어
스트레스 DSR 2단계 도입 연기에 막차 수요 더 몰릴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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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은행권에서 가계대출 잔액이 가장 많은 KB국민은행이 주택담보대출 금리 인상에 나섰다. 신한, 하나, 농협 등 다른 시중은행도 가계대출 금리 인상 시기와 폭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달 5대 시중은행의 주담대 잔액이 3년 만에 최대폭으로 치솟는 등 가계 빚 우려가 커지자 주담대를 전격적으로 조이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된다.

가계대출 증가폭 “관리 가능한 수준 넘었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3일부터 주담대 혼합(고정)·변동금리를 0.13%포인트 올린다. 가입 후 5년간 고정금리를 적용한 뒤 6개월 주기 변동금리로 바뀌는 혼합형 주담대 금리는 연 3.0~4.4%에서 연 3.13~4.53%로 오른다. 가입 후 6개월 단위로 금리가 바뀌는 변동형 주담대(신규 코픽스 기준) 금리도 연 3.67~5.07%에서 연 3.8~5.2%로 인상된다. 신한과 하나, 농협은행도 금리 인상을 저울질하고 있다. 지난달 주담대 최저금리를 연 2%대까지 인하한 신한은행은 연 3% 수준으로 최저금리를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나, 농협은행도 이달 주담대 금리를 올리기로 하고 인상폭을 논의 중이다.

은행권의 가계대출 증가폭은 ‘관리 가능한’ 수준을 넘어선 상태다. 5대 시중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의 자료를 보면 6월 말 가계대출 잔액은 708조5,723억원으로 집계됐다. 한달 전에 견줘 5조3,415억원 늘어난 수치다. 6월 증가 폭은 2021년 7월(6조2,009억원) 이후 2년 11개월 만에 가장 크다. 가계대출은 4월부터 석 달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가계대출 증가세는 주로 주담대(전세자금대출 포함) 잔액이 늘어난 영향이 크다. 주담대 잔액(552조1,526억원)은 한 달 새 5조8,467억원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11월(5조9,478억원) 이후 최대치로 석달 연속 늘고 있다. 서울 아파트를 중심으로 매매 거래량이 증가하는 등 부동산 시장이 회복 기미를 보인 영향으로 풀이된다.

가계대출 증가에도 ‘스트레스 DSR’ 시행 늦춘 정부

하지만 금융당국의 대처는 지난해와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금융당국은 작년 특례보금자리론을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급증하는 모습이 지속되자 지난해 9월 말 우대형 공급을 중단하는 초강수를 뒀다. 그 여파로 6조원 안팎이던 가계대출은 작년 12월 2,000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그런데 올해 금융당국은 이런 카드는 꺼내지 않고, 오히려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 시점을 두 달 늦췄다. 정부가 다음달 발표할 ‘범정부 자영업자 지원대책’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의 연착륙을 추진 중인 점 등을 고려했다는 게 이유다. 스트레스 DSR 확대 적용으로 대출 한도가 줄어들 경우 자영업자 지원대책의 효과가 반감될 수 있고 옥석가리기가 진행 중인 부동산 PF 사업장의 사업성 평가에도 악영향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월 은행권 주담대를 대상으로 하는 스트레스 DSR 1단계 시행으로 현재 기본 스트레스 금리(1.5%)의 25%인 0.38%가 적용 중인데, 9월부터는 스트레스 금리가 기본 스트레스 금리의 50%인 0.75%가 은행권 주담대 및 신용대출과 2금융권 주담대에 적용된다. 금융위원회는 스트레스 DSR 2단계가 도입되면 주담대 유형(변동·혼합·주기)에 따라 한도가 약 3~9%가량 줄어들 것으로 봤다. 신용대출은 금리 유형 및 만기에 따라 1~2% 정도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2단계 시행을 연기함에 따라 대출 한도가 줄어들기 전에 대출을 받으려는 수요가 몰리며 결국 주택 매수세를 자극할 것이란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주택 시장 회복세와 주담대 금리 하락세가 맞물리면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 현상이 극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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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정책이 가계부채와 집값 상승 부채질

일각에서는 정부가 말로는 가계대출을 억제하겠다면서 상반된 정책으로 부동산 시장을 자극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근 부동산 시장은 서울을 중심으로 주택 거래가 늘면서 가격 상승세가 지속되는 모습이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은 올해 들어 지속 하락세를 보였는데, 서울은 5월 20일 전주 대비 0.01% 상승으로 전환된 뒤 상승폭을 키우며 계속 오르는 모습이다. 특히 △강동구(0.57%) △서초구(0.40%) △마포구(0.27%) △성동구(0.26%) △송파구(0.24%) △용산구(0.20%) 등에서 상승폭이 두드러졌다.

또한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5월 기준 서울의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5,182건으로 이는 2021년 5월(5,090건) 이후 3년 만에 가장 많은 수치다. 이 같은 아파트 가격 상승과 거래량 증가는 스트레스 DSR 2단계 도입 연기와 함께 주담대 수요를 더욱 자극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당국은 해당 의혹을 일축하며 강하게 부인했다. 앞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스트레스 DSR 2단계 연기가 집값 띄우기를 위한 게 아니냐는 지적에 “전혀 말도 안 된다”며 “중산층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건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고, 서민의 의식주를 어렵게 하는 식으로 사회가 발전할 순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 대다수는 정부 정책이 가계부채와 집값 상승을 부채질했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지난 1월 출산 2년 이내 신생아 자녀를 둔 가구에 연 1.6~3.3% ‘신생아 특례대출’을 내놨다. 주담대 금리가 2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하락한 데다 5대 은행의 주담대 고정금리도 지난달 말 기준 연 2.94~5.76%를 기록하는 등 대출 문턱이 낮아지자 매수를 고민하던 이들도 시장에 뛰어들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실제로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1~2월 월간 2,000건대 수준이던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신생아 특례대출이 시행된 3월에 4,000건대로 늘어 3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