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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시장 한파, 삼성전자·SK하이닉스 설비투자 ‘재정비’에 방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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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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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설비→공정 전환’ 투자 전략 변경
대만 TSMC, 시설 등에 53조원 투입 전망
대중국 수출 규제 여파, 반도체 시장 ‘혹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내년 설비투자 전략을 신규 장비 반입에서 기존 장비 업그레이드로 변경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패키징 수요가 급증한 데 따른 결정으로, 내년 반도체 시장 수급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대만 TSMC만이 내년 대규모 설비투자를 앞둔 가운데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은 실적 악화와 이에 따른 비용 감축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D램 공정 전환 및 HBM 생산능력 증설에 집중

21일 업계에 따르면 2025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설비투자(메모리) 규모는 각각 약 35조원, 약 19조원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대부분의 투자가 D램 공정 전환 투자 및 HBM 생산능력 증설에 집중된다. 이들 기업은 앞서 올 3분기 실적 발표 및 컨퍼런스콜 자리에서 레거시(구형) D램 비중을 낮추고 선단 공정을 강화한다는 방침을 강조한 바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의 최근 보고서에 의하면 내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최선단 공정 D램(10나노 5세대·1b) 비중은 20~30%, 10나노 4세대(1a)는 약 30% 수준으로 예측된다. 여기에 내년 양산을 앞둔 10나노 6세대(1c) D램 비중을 감안하면 고성능 D램의 비중은 약 70%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첨단 D램의 경우 구형 공정과 비교해 수율과 공정 스텝수가 많아 짧은 시일 내 생산량을 끌어올리기 어렵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1b D램 웨이퍼 투입량 대비 출하량이 기존 구형 공정과 비교해 30%가량 낮은 수준일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또 내년 양산이 시작되는 1c D램 역시 공정 복잡성 증가를 이유로 70% 이상의 수율을 달성하는 데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핵심 장비들에 대한 재정비 작업에 돌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HBM 생산에 사용되는 1a, 1b D램의 경우 시장 내 경쟁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설계 보완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삼성전자에 정통한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D램 경쟁력이 위협받기 시작한 건 1b D램부터였는데, 이에 대해 삼성 내부적으로 프로세스 개선 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노광장비를 비롯해 화학물질, 테스트 등 많은 부분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변화가 삼성전자의 D램 출하량은 물론 글로벌 D램 공급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해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SK하이닉스는 6세대 이상 HBM 제품 생산을 위한 10나노급 1b D램 전환과 HBM 핵심 공정인 실리콘관통전극(TSV) 생산능력 확대 등에 투자를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김우현 SK하이닉스 부사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내년 설비투자는 아직 구체적인 규모가 확정되지 않았지만, HBM의 안정적인 공급에 방점을 뒀다”며 “1b나노 전환과 TSV 생산능력 확보, 후공정 등 이미 고객사와 공급계약 체결을 완료해 수요가 확보된 제품을 비롯해 DDR5, LPDDR5 양산 확대를 위한 전환 투자, M15X, 용인 인프라 투자 지속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TSMC

“웨이퍼 10만 장 생산” TSMC의 자신감

국내 기업들이 기존 설비를 재정비하기 위해 힘쓰는 동안 대만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는 역대 최고 수준의 설비투자를 단행할 것으로 전망돼 눈길을 끈다. 대만 경제일보에 의하면 TSMC는 내년 전 세계에 10개의 신규 공장을 설립할 예정이며, 시설 투자액은 최대 380억 달러(약 53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기존 예상치인 320억∼360억 달러 대비 최대 18.75% 늘어난 수준이자, 사상 최대치였던 지난 2022년 설비투자(362억9,000만 달러·약 50조원)를 뛰어넘는 수치다.

이처럼 막대한 규모의 TSMC 설비투자는 2㎚ 공정과 첨단 공정을 통해 생산되는 반도체를 완제품 형태로 제조하는 첨단 패키징 생산능력 확대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일보는 “내년 신규 건립되는 TSMC 공장 10개 중 7개는 2㎚ 공정으로 발전할 준비를 하고 있다”라며 “그 결과 TSMC의 내년 첨단 패키징 생산능력은 웨이퍼 기준 월 9만~10만 장으로 올해보다 최대 3배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TSMC는 생산능력 확대로 경쟁사와의 시장 점유율 격차를 벌리겠다는 계획이다. 반도체 패키징 업계 한 관계자는 “TSMC는 고객사와 사전 협의 없이 기술을 개발하지도, 시설 투자를 단행하지도 않는다”며 “2㎚ 공정과 첨단 패키징 설비 확충에 대한 고객사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에 해당 제품에 최적화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고, 수요에 맞춰 설비도 확충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속도·강도 높이는 대중 반도체 제재

전 세계 반도체 시장으로 범위를 넓혀보면 이같은 TSMC의 장밋빛 전망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과거 시장의 성장을 이끌었던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 대부분이 실적 악화에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먼저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 ASML을 꼽을 수 있다. ASML은 지난달 발표한 실적 보고서에서 2025년 매출 전망치를 300억~350억 유로(약 44조~51조원)로 제시했다. 이는 기존 전망치의 하위 범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로저 다센 ASML CFO는 “우리 모두 신문을 통해 수출 통제에 대한 내용을 알고 있지 않나”며 “이 때문에 중국 매출에 대해 더 신중한 입장을 취하게 된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중국 수출 규제로 인해 내년 중국 매출 감소가 불가피하고, 이는 전체 매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의미다. 여기에 앞서 지난 9월에는 스위스 투자은행 UBS가 ASML의 2025년 중국 매출이 최대 30% 줄어들 것이란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 업체로 꼽히는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어플라이드)도 대중국 수출 규제의 영향권을 피하지 못했다. 어플라이드는 최근 실적 발표 자리에서 내년 1분기 매출 전망치로 71억5,000만 달러(약 10조원)를 제시했다. 앞서 전문가들이 제시한 72억2,000만 달러를 밑도는 수치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중국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일 것으로 예상되면서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장비 주문량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게 어플라이드의 설명이다.

세계 4위 반도체 장비 업체 도쿄일렉트론 역시 중국 시장 매출 비중이 눈에 띄게 줄었다. 올 3분기 도쿄일렉트론의 중국 매출 비중은 41%였는데, 향후 30%대 초반까지 떨어질 것으로 분석됐다. 올 3분기 중국 시장 매출액도 2,339억 엔(약 2조1,000억원)으로 직전 분기(2,770억 엔) 대비 15%가량 감소했다. 가와모토 히로시 도쿄일렉트론 수석 부사장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수출 규제 강화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리스크를 고려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가 예상보다 빠르고 강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 공화당 의원들은 최근 ASML, 어플라이드, 도쿄일렉트론 등 글로벌 반도체 장비 업체들의 중국 사업과 관련한 정보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내며 “중국은 미국과 한국, 대만을 합친 것보다 많은 반도체 장비를 구매하고 있다”며 “이는 미국의 대중 제재 효과를 떨어뜨려 이웃 국가에 위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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