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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서든데스 탈출 로드맵' 가속도 계열사·자회사 수도 올해 들어 7.8% 감소 사업·포트폴리오 리밸런싱, ‘합격점’ 평가
SK그룹이 서든데스(돌연사)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한 로드맵 진행에 속도를 내고 있다. 조직 슬림화를 위한 계열사·자회사 축소, 경영진 교체와 인력 감원 등 인적 쇄신을 단행하면서 선택과 집중을 통한 사업 포트폴리오 리밸런싱도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다. 이에 더해 순차입금을 크게 줄이는 등 기업 정상화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SK그룹은 내년까지 리밸런싱 작업을 마무리하고 이 과정에서 확보한 자금은 AI(인공지능) 밸류체인에 투입할 게획이다.
수펙스협의회 의장 최창원 부회장, 리밸런싱 주도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SK그룹의 올해 3분기 기준 전체 종속기업은 총 660개로 올해 초 716개에서 9개월 만에 7.8%(56개) 감소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솔루티온 등 13개사가 흡수합병됐고, 스튜디오돌핀 등 15개사는 청산됐다. SK렌터카와 솔라오션, 우리화인켐 등 49개사는 매각됐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23 CEO 세미나'에서 7년 만에 서든데스 위험성을 언급한 후 계열사 합병과 매각, 사업부 조정 등 대대적인 개편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말 최 회장의 사촌 동생인 최창원 부회장이 그룹 내 최고협의기구인 SK수펙스추구협의회(수펙스협의회) 의장으로 선임돼 리밸런싱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올해 6월 열린 경영전략회의에서 중복 투자를 개선하고 계열사 규모를 관리 가능한 범위로 조정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아지면서 알짜 사업은 합치고, 지속성장이 어려운 기업은 매각하는 과감한 선별 전략에 실행 중이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SK에코플랜트의 기업공개(IPO)를 위한 사업 재편 등이 대표적이다.
성장에 한계가 드러난 사업 분야는 매각을 통해 현금화되고 있다. SK네트웍스 자회사인 SK렌터카의 지분 100%를 사모펀드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에 8,200억원을 받고 매각했다. 반도체 특수가스 분야 세계 1위 기업 SK스페셜티 역시 한앤컴퍼니에 매각될 예정이다. 다음달 주식매매계약(SPA) 체결을 목표로 SK와 한앤컴퍼니는 가격 등을 최종 조율 중이다. SK스페셜티는 지난해 매출액 6,817억원, 영업이익 1,471억원으로 안정적인 실적을 기록한 알짜기업으로 기업가치가 4조원에 이른다.
SK온, 전 직원 희망퇴직 등 인원 감축도 본격화
인적 쇄신도 단행했다. 지난해 말 수펙스협의회 신임 의장으로 최창원 부회장을 선임하면서 지난 2017년부터 협의회를 이끌어온 조대식 의장을 비롯해 장동현 SK 부회장·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 등 60대 부회장단 4인이 2선으로 물러났다. 그 자리는 50대 최고경영자(CEO)로 채워졌다. 올해 2분기에는 이례적으로 일부 계열사 CEO 교체를 감행하기도 했다. 지난 5월 SK에코플랜트에 이어 6월 SK스퀘어까지 CEO 교체가 이뤄졌다.
9월 들어선 본격적인 인원 감축 이뤄졌다. SK온은 2021년 출범 이후 처음으로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이와 함께 최대 2년의 자기개발 무급휴직 프로그램도 병행했다. 희망퇴직 신청자에게는 연봉의 50%와 단기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자기개발 무급휴직의 경우 학위 과정에 진학하는 신청자에게 2년간 학비의 50%를 지원하기로 했다. 꾸준히 흑자를 는 핵심 계열사 SK텔레콤도 감원 대열에 합류했다. SK텔레콤은 지난 2019년부터 운영돼 온 퇴직 프로그램의 격려금을 기존 5,000만원에서 3억원으로 파격적으로 끌어올렸다.
수펙스협의회와 회장 직속 연구조직인 SK경제경영연구소의 인력을 줄인다. 그룹 내 대표적인 브레인으로 꼽히는 조직의 군살을 빼 효율성을 높이고, 최정예 인력을 계열사에 전진 배치해 성과를 높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수펙스는 한때 150여 명에 달했으나 최근 조직 개편과 인력 감축을 통해 현재는 100여 명으로 줄어든 상태다. SK경영경제연구소도 현재 약 50명이 일하고 있는데, 10명 내외를 다른 계열사로 분산 배치할 예정이다.
순차입금 감소 등 성과에 '운영개선 2.0' 돌입
순차입금도 감소세다. SK그룹의 순차입금은 올해 1분기 85조5,000억원에서 3분기 76조2,000억원으로 10.9% 감소했다. 손익과 현금흐름 개선, 자산 매각 등의 운영개선 활동으로 2분기 연속 순차입금 하락이다.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2일까지 열린 '2024 CEO 세미나'에서 최태원 회장 등은 잉여현금흐름(FCF) 극대화 등 '운영개선 1.0' 활동으로 재무구조 안정화라는 성과가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이 흐름에 속도를 붙여 제조·마케팅 등에서 운영 역량을 제고하는 '운영개선 2.0'을 통해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기로 결의했다.
당시 최 회장은 그룹의 일하는 방식으로 '운영개선'을 강조했다. 그는 "운영개선은 단순히 비용 절감과 효율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본원적 경쟁력을 확보하는 과정"이라며 "재무제표에는 담기지 않지만 경영의 핵심 요소인 '기업가 정신'과 '이해관계자와의 소통' 등을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운영개선 고도화를 위해선 AI를 잘 활용할 필요도 있다"며 "젊은 구성원과 리더들이 AI를 접목한 운영개선 방안을 제안해 회사 정책과 제도를 개선하고, 성과에 걸맞은 보상을 해주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SK는 계열사 및 자회사 등의 순차입금 감소에 더욱 속도를 내, 내년까지 관련 리밸런싱 작업을 끝낼 계획이다. 아울러 안정화된 현금흐름에서 얻을 자금은 AI 밸류체인 등에 투입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향후 5년간 100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AI 분야에 투입해 고대역폭메모리(HBM)를 필두로 한 AI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개인형 AI 비서(PAA) 등에 집중할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SK하이닉스는 2028년까지 103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사업 경쟁력을 강화한다. HBM 등에는 82조원이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