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넌 "머스크는 사악한 사람, 끌어내야"
H-1B 비자 놓고 트럼프 지지층 균열
트럼프, 일단은 머스크 주장에 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옛 책사로 불리는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새로운 실세로 떠오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백악관에서 쫓아내겠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달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식을 앞두고 외국인 전문직 종사자 비자(H-1B) 정책에 대한 공화당 진영 내 갈등이 격화된 것으로 분석된다.

내전 불씨 된 'H-1B' 전문직 비자

12일(현지 시각)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배넌은 이탈리아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전에는 머스크가 (트럼프 캠프에) 돈을 냈으니 참았지만, 더는 참을 수 없다”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특히 배넌은 미국의 전문직 비자 H-1B를 둘러싼 이견과 관련해 머스크를 강도 높에 비판했다. 배넌은 “H-1B 비자는 기술 권력자들이 이민 시스템 전체를 조작하는 것”이라며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엔지니어의 76%가 미국인이 아니다. 흑인과 히스패닉계는 이 같은 일자리를 갖거나 일자리에 접근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머스크의 유일한 목표는 ‘조만장자(Trillionaire)’가 되는 것이고, 머스크는 기술 봉건주의를 지지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 그의 성숙도는 어린애 수준”이라고 힐난했다.

배넌은 그러면서 “머스크를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일인 20일까지 쫓아내겠다”며 “백악관에 아무 때나 접근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 여느 사람처럼 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머스크는 (출신지인)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우리는 왜 전 세계에서 가장 인종차별적인 이들인 백인 남아공인들이 미국 일에 이러쿵저러쿵하게 놔두고 있나”라고 질책했다.

머스크, 미국 내 인재들 H-1B 비자 덕분에 존재

H-1B에 대한 불만은 지난달 22일 백악관 인공지능(AI) 수석정책고문에 인도계 인사인 스리람 크리슈난이 내정되면서 불거졌다. 크리슈난이 "기술직 이민자들에 대한 영주권 상한선을 없애자"고 주장한 발언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이를 두고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Make America Great Again)로 불리는 트럼프 측 극우 보수층은 즉각 반발했다. MAGA 골수 강경파인 로라 루머(Laura Loomer)는 "트럼프의 MAGA 정책에 직접 반대하는 의견을 지닌 좌파 인사들이 트럼프 행정부에 임명되고 있는 것이 무척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당시 배넌도 "H-1B 비자 확대는 미국 시민에게서 일자리를 빼앗아 외국에서 온 계약직 종업원들에게 돈을 덜 지급하는 것"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이에 과거 H-1B 비자 소유자였던 머스크는 반박했다. 그는 자신의 SNS(소셜미디어) 엑스(X)에 "경멸스러운 바보들은 공화당에서 축출돼야 한다"면서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말했다. 머스크는 이어 "내 회사 스페이스X와 테슬라, 그리고 미국을 강하게 만든 수백 개의 다른 회사들에 합류한 수많은 중요한 사람들이 미국에 있을 수 있었던 건 H-1B 비자 덕분"이라고 주장했다. 양측의 갈등이 깊어지자 최근 트럼프 당선인이 “나는 늘 H-1B 비자를 항상 좋아하고 지지했다”며 머스크의 손을 들어줬으나 양측 간 논쟁은 이어지는 양상이다.

美 테크 기업 상당수, 외국인에 의존

전문가들은 이번 비자 논쟁의 이면에 공화당 내 권력 투쟁이 깔려있다고 분석한다. 트럼프 1기 행정부를 함께 했던 전통 지지층과 머스크를 중심으로 한 실리콘밸리파 사이에 갈등이 표출됐다는 것이다. 현재 머스크와 함께 정부효율부(DOGE) 공동수장을 맡은 인도계 기업인 비벡 라마스와미와 백악관 'AI·가상화폐 차르'에 내정된 데이비드 색스 전 페이팔 최고운영책임자도 머스크를 지지하며 몸집을 불리고 있다.

이에 대해 CNN은 "2020년 트럼프 1기 재임 당시에는 H-1B 비자를 제한하는 조치를 내렸었다"며 "머스크의 편을 든 트럼프의 발언은 트럼프가 테크계 거물(머스크)과 가까워진 또 다른 사례"라고 짚었다. 미 정치전문지 악시오스도 "한때 백인 저학력 노동자 계층을 통해 힘을 얻은 트럼프가 이제는 대다수가 이민자 출신인 기업가 또는 기술자들의 지지하에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분석했다.

그도 그럴 것이 H-1B 비자의 최대 수혜층은 바로 미국 빅테크다. 빅테크 기업들은 대부분 수입 노동력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1~9월 H-1B 비자 승인을 가장 많이 받은 기업은 아마존(9,265건)이었다. 2위와 3위는 정보기술(IT) 아웃소싱 업체 인포시스(8,140건)와 코그니전트(6,321건)로 나타났다. 이 밖에도 구글(5,364건), 타타컨설턴시서비스(5,274건), 메타(4,844건), 마이크로소프트(MS·4,725건), 애플(3,873건), HCL(2,953건), IBM(2,906건) 등 10위권 안에 IT 기업들만 이름을 올렸다.

이민자 권익단체인 미국이민위원회(AIC)의 연구에 따르면 H-1B 비자 프로그램은 H-1B 비자 수혜자가 많은 산업일수록 실업률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고, IT 업종에서 종사하는 H-1B 비자 수혜자들은 특허 출원을 비롯한 혁신적 성과를 내는 데 기여도가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임금 인상에도 기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H-1B 폐지가 미국의 경제는 물론 기술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