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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동북부 일대 LNG 공급 추진
2019년 12월부터 단계적 개통
또 다른 수입처 미국엔 15% 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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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공급망 다변화를 통한 에너지 안보를 서두르는 모습이다. 미국과의 무역 갈등과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수급 불안정성 해소 목적으로 추진해 온 러시아와의 공동 프로젝트 ‘시베리아의 힘-2’ 액화천연가스(LNG) 파이프라인 건설을 보류하면서다. 주변국인 몽골의 반대, 러시아와의 가격 협상 난항 등이 그 배경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이 같은 중국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러시아 의존도↓, 호주 등으로 공급망 다변화
14일(이하 현지시각)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러시아와 추진 중인 시베리아의 힘-2 파이프라인 건설을 보류하기로 최근 가닥을 잡았다. 러시아에 대한 과도한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고, 지난해 공급 계약을 맺은 호주와 투르크메니스탄, 카타르 등 다양한 국가를 상대로 에너지 수입 다변화 전략을 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2014년 중국과 러시아 양국 간 합의로 가동된 시베리아의 힘 프로젝트는 러시아 시베리아 동부 가스전에서 시작해 중·러 접경지역인 헤이룽장(黑龍江)성 헤이허(黑河)를 거쳐 상하이시까지 총 5,111km의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중국은 해당 프로젝트를 통해 인구 밀도가 높아 겨울철 난방 수요가 급증하는 동북부 일대와 양쯔강 삼각주에 천연가스 공급량을 늘릴 것으로 기대했다.
2019년 12월 양국의 파이프라인이 연결되면서 러시아의 천연가스가 처음 중국에 공급됐고, 지난해 11월에는 동선(東線) 공정의 완공으로 프로젝트 첫 단계를 마무리했다. 여기에 중국 서부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로 연결되는 시베리아의 힘-2까지 완공되면 러시아로부터 운송되는 LNG는 연간 380억㎥에 달한다. 이는 중국 내 약 1억3,000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하지만 양국이 LNG 가격 협상을 두고 줄다리기를 벌이는 동안 몽골까지 반대하고 나서면서 2단계 프로젝트에 제동이 걸렸다. 몽골은 환경 문제와 자국의 경제적 이익 등을 고려해 시베리아의 힘-2 파이프라인 건설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에 더해 최근에는 2028년까지의 중장기 계획에서 해당 프로젝트를 제외하기도 했다. 에너지 안보에 주력 중인 중국으로서는 공급망 다변화를 서둘러야 할 이유가 늘어난 셈이다.
2024년 중국 LNG 수요 4,250억㎥ 육박
중국이 애초 시베리아의 힘 프로젝트를 추진한 배경 또한 공급망 다변화에 있다. 대만과 남중국해에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 해상 경로가 아닌 육상 경로로 안전하게 가스를 공급받기 위해서는 러시아가 최적의 루트라는 판단에서다. 중국 국가능원(에너지)국에 의하면 중국의 LNG 수요는 해마다 증가해 작년 4,250억㎥에 달했다. 이는 전년 대비 7%가량 증가한 수준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게 된 러시아로서도 중국은 든든한 수요처였다. 유럽으로의 수출길이 막힌 가운데 중국과의 파이프라인이 확대되면서 수출 차질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23년 기준 중국이 수입한 러시아산 LNG는 227억㎥에 달했으며, 지난해에도 1월~9월 237억㎥의 수입물량을 기록했다. 이로써 중국은 유럽을 제치고 러시아 천연가스 최대 수입국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시베리아의 힘-2 건설을 둘러싸고 양국 간 미묘한 변화가 감지됐다. 서방 가스 수출길이 막힌 러시아의 처지를 이용해 중국이 더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고 나선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이 러시아 현지 수준과 비슷한 가격으로 가스를 공급하도록 요구하고 있다”면서 “연 500억㎥의 수송 용량 중 일부만 구매하겠다고 나선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강경한 입장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가 중국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된 과정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러시아 반(半)국영 에너지 기업 가즈프롬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향 가스 판매가 급감하며 2023년 6,290억 루블(약 9조8,00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가즈프롬을 살리기 위해서는 중국으로 연결되는 파이프라인의 확대·연장이 필수라는 진단이다. FT가 인용한 러시아 주요 은행의 미공개 보고서에 따르면 가즈프롬에 대한 기본 전망에서 시베리아의 힘-2가 제외되면서 해당 프로젝트의 완공 시점인 2029년 가즈프롬의 연간 수익은 기존 대비 15%가량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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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부족 ‘심각’ 수준, 뚜렷한 대안 없어
다만 시장에서는 중국이 만성적 전력 부족에 시달리는 만큼 러시아와의 협상에서 계속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중국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종식 이후 경기 회복에 따른 공장 수출 수요 증가, 오염 저감을 위한 석탄 사용 감소로 전력부족 사태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중국 정부는 공장 가동 시간을 제한하고 일부 도시의 전력을 차단하기도 했지만, 사태를 수습하기엔 역부족인 모습이다.
중국이 미·중 무역 갈등 본격화 직전까지 미국으로부터 LNG 수입을 꾸준히 늘려왔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조사에서 2021년 8월 대중 LNG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3배 이상 증가했으며, 미국 전체 LNG 수출의 17%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앞서 중국은 1단계 무역 합의에 따라 미국산 에너지 수입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전임 조 바이든 정부에서 시작된 미국의 대중국 제재 기조가 현 정부로도 이어지면서 이 같은 약속은 힘을 잃게 됐다. 이달 4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양국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중국은 즉각 미국산 석탄과 LNG에 15%의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조치를 선언하며 맞불을 놨다.
다만 미국은 이 같은 중국 정부의 보복 조치가 자국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전체 에너지 수출량 중 중국의 비중이 갈수록 축소되고 있는 데다, 대체 시장을 발굴 또한 어렵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미국은 2020년대 이후 신규 LNG 터미널 프로젝트를 통해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 여러 유럽 국가로의 LNG 수출량을 단계적으로 확대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