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美, 스마트폰 등에 품목별 관세 부과 검토 전자제품 상호관세는 일단 면제 주요 기업 '탈중국' 움직임 지속 전망

스마트폰, 컴퓨터 등 전자제품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겠다던 미국 정부가 돌연 말을 바꿨다. 상호관세와는 별개로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반도체 등에 품목별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시장에서는 전자제품에 상호관세가 부과되지 않는다고 해도 관련 분야 기업들의 '탈중국' 움직임은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美 "전자제품 관세 면제 없다"
13일(이하 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지난 금요일(4월 11일)에 어떤 관세 예외도 발표되지 않았다"며 "(스마트폰, 컴퓨터 등) 이들 제품은 기존 20% 펜타닐 관세를 적용받고 있으며, 단지 다른 관세 범주로 옮기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곧 발표될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국가 안보 관세 조사에서 반도체를 비롯해 전체 전자제품 공급망을 살필 것"이라며 "드러난 것은 제품을 미국에서 생산해야 한다는 것, 중국과 같은 적대적 무역 국가들의 인질로 잡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모든 교역 국가를 상대로 추가 관세를 발표하면서 ‘반도체’는 면제 대상이라고 밝혔다. 이후 11일 대통령 각서를 통해 면제 대상이 되는 ‘반도체’의 범위를 19개 항목으로 구체화하고, 스마트폰 등 반도체가 들어간 완성품을 면제 대상에 포함했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강경 기조에서 한발 물러나 전자제품은 아예 관세에서 면제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 바 있다.
미국 고위 당국자들 역시 이날 언론에 잇따라 출연해 전자제품에 관세가 부과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ABC 뉴스에 “(관세청 면세 목록에 올라온) 제품들은 상호 관세를 면제받지만, 아마 한두 달 내로 나올 반도체 관세에는 포함된다”며 “이는 협상 대상이 아니며,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해서 없앨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밝혔다.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예외라는 단어조차 적절치 않다”며 “관세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제도의 적용을 받는 것일 뿐”이라고 전했다.
애플의 '탈중국' 움직임
전자제품 업계의 상호관세 부담이 공식적으로 해소됐음에도 불구, 시장에서는 기업들의 탈중국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들어 다수의 글로벌 기업은 미·중 무역전쟁발(發)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속속들이 대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추세다. 일례로 전 세계에 판매하는 아이폰 중 90%를 중국에서 제조하는 애플의 경우, 점진적으로 인도 생산 기지 생산량을 확대하며 미국의 통상 정책에 대응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4월부터 지난달까지 애플이 인도에서 생산한 아이폰 물량은 총 220억 달러(약 31조원·공장 출고가 기준)어치에 달한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60% 가까이 늘어난 수치이자, 전 세계 아이폰 생산 중 약 20%에 달하는 수준이다. 인도 내 생산량 대부분은 내수가 아닌 해외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인도 기술부에 따르면 2025년 3월까지 1년 동안 인도에서 생산된 아이폰 중 1조5,000억 루피(약 25조원, 176억 달러)어치가 외국으로 수출됐다.
시장에서는 앞으로 인도가 애플의 핵심 생산 기지가 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JP모건체이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2027년 인도가 전 세계 아이폰의 25%를 생산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휴대전화가 다이아몬드를 제치고 인도의 가장 큰 수출 제품이 됐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ABC' 전략 채택하는 기업들
애플 외에도 수많은 기업이 중국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다. 중국 외의 보완 공급망을 확보하는 ‘차이나 플러스 원’(China Plus One) 전략을 넘어 ‘중국 말고는 어디든’(anything but China)이라는 뜻의 ‘ABC’ 전략이 새로운 생존 방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올해 2월 주중 미국상공회의소가 진행한 연례 설문조사에 따르면, 368명의 응답자 중 중국 외 지역으로 제조·구매처 다각화를 고려했다고 응답한 이의 비중은 30%에 달했다.
이 같은 흐름이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미·중 기술 경쟁의 핵심인 반도체 부문이다.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이 2022년 10월 인공지능(AI) 칩 중국 수출을 제한한 이후 멕시코와 말레이시아 등지로 속속 조립 공장을 옮기고 있다. 반도체 장비업체인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와 램리서치는 지난해 미 정부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중국 기업을 공급망에서 제외했고, 전력시스템 제조사 어드밴스트에너지인더스트리도 중국에 남은 마지막 공장을 오는 7월까지 폐쇄할 예정이다.
기업들의 탈중국 행보에 속도가 붙으며 동남아시아는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베트남은 애플과 삼성 등의 주요 제조처가 됐고, 말레이시아는 인텔, 글로벌파운드리스, 인피니언 등 반도체 회사들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싱가포르의 경우 금융 및 규제와 관련한 신뢰를 발판 삼아 많은 기업들의 지역 본사를 품었다. 동남아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는 2018년 1,550억 달러(약 221조5,200억원)에서 2023년 2,300억 달러(약 328억7,000억원)로 대폭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