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소비 위축에 '독한 술' 외면 겹쳐 승승장구하던 위스키社 '비틀' 실적 악화에 창사 첫 희망퇴직도

국내 위스키 제조사들이 휘청이고 있다. 경기가 사나워지면서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있는 데다 독한 술을 찾는 소비자마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적 부진을 이겨내지 못한 일부 회사에서는 매각설까지 흘러나오는 분위기다.
흔들리는 국내 위스키 실적
14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국내 1위 위스키 제조 업체 골든블루의 지난해 매출은 2,094억원으로 전년(2,241억원) 대비 6.5% 감소했다. 영업이익도 338억원으로 32% 급감했다. 이에 골든블루는 지난해 창사 이후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스카치 위스키를 주로 취급하는 윈저글로벌도 실적 악화를 피하지 못했다. 2023회계연도(2023년 7월~2024년 6월) 매출은 1,032억원으로 전년 동기(1,102억원)보다 6.3% 줄었다. 영업이익도 340억원으로 2%가량 감소했다. 임페리얼 브랜드를 보유한 페르노리카코리아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같은 기간 매출이 1,751억원으로 전년(1,852억원)보다 5% 줄었다.
이들 위스키 업체는 현재 모두 매물로 나온 상태다. 골든블루는 3,000억~3,500억원 수준의 기업가치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 대상은 오너 일가가 보유한 경영권 지분 81.65% 전량이다. 박용수 회장 장녀인 박동영씨와 차녀 박소영 대표이사가 각각 22.4%를 갖고 있으며 박 회장과 배우자 김혜자씨가 각각 18.41%, 18.45%를 보유 중이다. 오너 일가의 지분 매각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윈저글로벌은 약 2,300억원의 기업가치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초 파인트리자산운용이 디아지오로부터 경영권을 인수할 당시 몸값(2,000억원)에 300억원의 프리미엄을 붙인 수준이다. 임페리얼 판권을 인수한 드링크인터내셔널은 브랜드의 소유권을 가진 프랑 기업 페르노리카로부터 소유권을 600억원에 사들여 기업가치를 끌어올린 뒤 회사를 800억원 가치에 매각하겠다는 것이 계획이다. 김일주 회장은 임페리얼 브랜드를 인수하기 위해 자금을 모집 중이나 밸류에이션에 대한 드링크인터내셔널과 투자자들 간 눈높이 차이 때문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물가에 지갑 닫은 소비자들, 급변한 음주 문화도 영향
위스키의 시들해진 인기는 수입량에서도 알 수 있다. 2023년까지만 해도 위스키는 홈술 문화와 하이볼 인기에 힘입어 품귀 현상까지 빚었다. 2023년 위스키 수입량은 역대 최대인 3만586톤을 기록할 정도였다. 그러나 코로나19 엔데믹에 고물가까지 겹치자 다른 주류보다 상대적으로 비싼 위스키를 찾는 소비자가 줄어들면서, 지난해 위스키 수입량은 2만7,440t으로 전년 대비 10%나 감소했다. 위스키 수입량이 2022년 73.2%, 2023년 13.1% 증가한 것과 상반된 흐름이다.
급변하고 있는 음주 문화도 위스키 시장 침체의 배경으로 거론된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보다는 저도수 술을 천천히 즐기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위스키가 설 자리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는 분석이다. 실제 시장조사업체 아이앤서베이가 최근 발표한 음주문화 보고서에 따르면 2030세대가 가장 많이 마시는 술은 맥주(70.4%)였고, 소주(49.2%)와 하이볼(22.6%)이 뒤를 이었다. 위스키는 22.2%로 4위까지 밀렸다. 2030세대 응답자 중 무알코올 주류를 경험한 비율도 73.9%에 달했다. 술은 ‘취하려고 마시는 것’이라는 인식이 사라졌다는 얘기다.
위스키가 주로 유통되는 편의점에서도 위스키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다. GS25의 작년 위스키 매출 증가율은 36.5%로, 2022년(65.6%)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세븐일레븐의 위스키 매출도 지난해 15% 늘어 직전 연도 매출 증가율(80%)을 밑돌았다. CU의 지난해 위스키 매출 증가율도 30.1%로 2022년(48.5%)보다 낮아졌다. 지난해 CU의 하이볼 매출 증가율이 315.2%에 달한 것과 대조적이다.
아주 싸거나, 아주 비싸거나
이에 위스키 업체들은 중저가 위스키 품목을 확대하고 있다. 골든블루는 작년 10월 병(700㎖)당 2만5,000원인 ‘골든블루 쿼츠’를 선보였다. 쓰리소사이어티도 지난달 소비자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10만원대 위스키 ‘기원’ 시그니처 라인 3종을 내놨다. 편의점 CU가 지난달 선보인 초저가 위스키 ‘길리듀’는 출시 19일 만에 누적 판매량 5만 병을 돌파했다. 이 제품은 700㎖ 한 병에 9,900원이다.
디아지오도 블렌디드 위스키 '블랙 앤 화이트(Black & White)'를 국내 시장에 선보였다. 이 제품은 이마트를 통해 단독으로 유통되며, 가격은 길리듀와 마찬가지로 700㎖ 기준 9,900원이다. 이는 해외 시장에서 2만~3만원대에 판매되는 가격의 절반 수준이다.
반면 초고가 제품 판매를 마케팅 수단으로 삼는 업체도 있다. 고물가·고금리로 소비자들 지갑이 쉽게 열리지 않지만 초고가, 한정판 위스키를 찾는 수요는 꾸준하다는 점을 노리는 것이다. 아영FBC는 최근 스코틀랜드 싱글몰트 위스키 ‘벤로막 50년’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전 세계에서 248개만 한정 판매되는 벤로막 50년 가격은 5,000만원이다.
디아지오는 지난해 6월 빈티지 희귀 싱글몰트 위스키 시리즈인 ‘프리마&울티마’를 선보였다. 3개 위스키를 세트로 판매하는데, 국내 가격은 7,000만원 선이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위스키 시장 성장세가 꺾인 가운데 초저가 시장과 초고가 시장으로 나뉘는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