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더 하고 돈 덜 받는다” 들고 일어난 미국작가조합, 국내 상황은 더욱 암담하다?

‘OTT 시대’ 노동 강도 높아졌는데 수익은 줄었다, WGA 파업 장기화 OTT 오리지널 시리즈 범람하며 TV 시리즈에서 누리던 ‘신디케이션’ 수익 사라져 토종 플랫폼 생존마저 위태로운 국내 OTT 시장, 이러다간 다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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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WGA 유튜브 채널

지난 5월 2일부터 시작된 미국작가조합(WGA)의 파업이 장기화하고 있다. 콘텐츠 시장의 중심축이 OTT로 옮겨가며 노동 강도가 높아진 상황임에도 불구, OTT 오리지널 드라마의 범람으로 ‘신디케이션’ 기회가 줄어 급여는 오히려 감소했다는 주장이다.

국내 OTT 업계는 이번 WGA의 파업이 ‘남의 일’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공격적인 콘텐츠 투자로 인해 적자가 누적되며 토종 OTT 플랫폼이 줄줄이 휘청이는 가운데, 수익 감소로 신음하는 국내 창작진이 플랫폼과 나란히 ‘침몰’할 수 있다는 우려다.

업무는 늘고 돈은 줄고, ‘수익 보장해라’

1만5,000여 명의 조합원이 참여한 이번 파업은 2007년과 2008년 이후 최대 규모로, 조합 지도부가 만장일치로 파업을 승인했다. WGA 파업의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의 급성장이 지목된다.

코로나 팬데믹 시작 전인 2019년 글로벌 OTT 시장은 △넷플릭스 △아마존 프라임 △피콕 △HBO 맥스 등 기존 강자와 △애플TV플러스 △DC 유니버스와 △디즈니+ 등 신흥 강자가 끊임없이 경쟁하는 ‘투기장’이었다. OTT 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하자 콘텐츠 시장의 중심축은 OTT 시장으로 옮겨갔고, 자연히 시장 구조에도 변화가 생겼다.

파업에 돌입한 WGA는 이들 글로벌 OTT 업체의 ‘불공정 계약’을 비판하고 있다. 작가들은 “OTT가 방송·영화의 주류가 된 이후 제작 환경이 크게 변했음에도 처우는 그대로”라며 “보상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내 작가들 역시 국내 방송사·제작사에서 일반화된 불공정 관행이 OTT와 인공지능(AI)의 발달로 심화할 것을 우려하며 연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WGA에 따르면 OTT 오리지널 시리즈의 경우 시즌당 편수가 과거에 비해 적다. TV 시리즈가 시즌제로 진행되던 시절에는 시즌당 20~24편의 에피소드가 제작됐으며 봄, 가을 등 정확한 시점에 오픈됐다. 하지만 OTT 오리지널 시리즈의 경우 콘텐츠 제작 시점이 다양한 데다, TV 시리즈 대비 편수도 적다. 불특정 시즌에 맞춰 ‘짧고 많은’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작가 입장에서는 업무 부담이 오히려 가중된 셈이다.

업무량이 늘었음에도 들어오는 돈은 오히려 감소했다. OTT가 본격적으로 자체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기 시작한 2016년, ‘수입이 발생한 작가’ 수가 급격하게 증가한 바 있다. OTT 시장이 다수의 시나리오 작가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준 것이다. 하지만 2019년 이후 그 수는 9% 감소했으며, 이후로도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다. 작가들의 연간 수입 역시 2016년 전후로 증가하다가 2019년 이후부터는 꾸준히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 새로운 시장에서 창작욕을 불태우던 작가들이 열악한 처우와 수입 감소 문제를 직면하고 업계에서 대거 이탈한 것으로 풀이된다.

OTT 오리지널 시리즈 범람, ‘신디케이션’ 기회 줄었다

수익 감소의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신디케이션’ 기회 감소가 지목된다. 과거 일반적인 TV 시리즈 드라마는 먼저 본방송이 송출된 이후 신디케이션을 거쳤다. 신디케이션은 흔히 말하는 ‘재방송’을 일컫는 말로, 제작사에서 네트워크를 거치지 않고 개별 독립 방송국에 콘텐츠를 납품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작가들은 신디케이션과 2차 판권 시장(DVD, 블루레이 판매) 등을 통해 본방송 외 ‘재상영분배금’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2008년 넷플릭스가 스트리밍 시장에 뛰어들던 때만 해도 OTT 판권은 어디까지나 ‘추가 수익 모델’에 불과했다. 하지만 OTT 플랫폼이 콘텐츠 시장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수많은 OTT ‘오리지널 시리즈’가 제작되며 신디케이션을 비롯한 작가의 추가 수익 창출로가 사라졌다. WGA는 시위를 통해 “분배금이 감소한 만큼 임금을 인상해야 하며, 제작사 측이 일정 기간 작가 고용 규모를 유지하며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하지만 대형 스튜디오들은 변화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나, 지금은 큰 변화를 줄 때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경영 환경이 악화하고 있는 만큼 작가들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넷플릭스는 지난해 10년 만에 처음으로 가입자가 순(順)감소했고, 디즈니+를 운영하는 디즈니도 최근 약 7,000명을 해고한 바 있다.

플랫폼-작가 함께 죽어가는 국내 OTT 시장

미국은 넷플릭스와 디즈니+ 등 글로벌 영향력을 갖춘 OTT 플랫폼들의 본토로, 경영 상황 악화에도 꾸준히 경쟁이 발생하는 중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넷플릭스 외 대다수 OTT 토종 플랫폼이 ‘전멸’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전망마저 제기되고 있다. 토종 플랫폼들의 적자가 빠르게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티빙은 1,19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수익성이 크게 악화했다. 웨이브는 지난해 1,217억원의 영업적자를 봤다. 이는 2021년 558억원 대비 두 배 이상 급증한 수준이다. 왓챠의 영업손실 역시 2021년 248억원에서 2022년 555억원으로 두 배 이상 불어났다. 수익성 개선 전략이 마련되지 않은 가운데, 콘텐츠 제작을 위한 무리한 투자로 플랫폼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대로라면 처우 개선은커녕 국내 작가들이 설 자리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OTT 사업자들이 감독·작가 등 창작자에 지급해야 할 영상저작물 보상금 역시 OTT 플랫폼의 부담을 가중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영상저작물 수익 분배 관련 저작권법 개정에 따라 OTT 플랫폼이 창작자에 지급해야 하는 보상금 규모는 1,128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매출액에 2.5% 요율 적용, 2022년 기준). 업계에서는 적자가 누적되고 있는 현 상황에 대규모 보상금을 지급할 경우 겨우 버티고 있는 토종 OTT 기업이 ‘치명타’를 입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현재 글로벌 콘텐츠 시장은 OTT 플랫폼이 살아야 작가도 살 수 있는 형태로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국내 시장의 경우 OTT 플랫폼을 살리기 위해서는 작가들이 열악한 처우에서 ‘갈려야’ 하는 기이한 구조다. 업계에서는 이러다 국내 콘텐츠 창작자와 OTT 플랫폼이 함께 침몰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국내 OTT 시장은 토종 OTT 플랫폼의 수익성과 창작진의 처우를 동시에 개선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K-콘텐츠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도 문제의 우선순위를 면밀히 따져보고, 선제적인 대처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