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물가 폭등 인한 인상 vs 물가 안정 위한 동결, 이제는 제도 변화 필요해

양대 노총, 물가 상승으로 인해 내년도 최저임금 시급 1만원 이상으로 파격 제시 경영계, 물가 상승의 원인으로 가파른 최저임금 상승률 비판 양측 주장 협의 위해 이달 18일부터 논의 시작, 근본적 제도변화도 고려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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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에서 2024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약 25% 인상된 금액인 시급 12,000원, 월급 250만8,000원(월 209시간 기준)을 요구했다. 경영계는 예년보다 높은 인상 요구에 고용의 80%를 책임지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내세우며 최저임금 차등 지급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양대 노총, 내년도 최저임금 25% 인상안 제시, 현실 무시한 제안에 경영계 비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양대 노총은 지난 4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2024년에 적용될 최저임금과 관련된 기자회견을 열어 이같이 요구했다. 이는 올해 최저임금인 시급 9,620원, 월급 201만580원보다 24.7% 높은 금액이다. 이들은 “2년 연속 물가상승률, 경제성장률, 고용 증가율을 반영한 계산법으로 공익위원들이 내놓은 안대로 최저임금이 결정됐다”며 요구안의 근거로 물가 폭등 시기 최저임금 현실화,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실질임금 저하, 해외 주요국의 적극적인 임금인상 정책, 노동자 가구 생계비 반영 등을 들었다.

한편 경영계에서는 이 같은 노동계의 요구는 코로나19 확산에 이은 고금리‧고물가 등 복합 경제위기 속에서 경영 상황이 극도로 악화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현실을 무시한 것이라며 다소 무리한 요구라는 비판을 제기했다. 또 최저임금의 차등 적용을 도입해 숙박·음식업 등 임금 지급 능력이 부족한 업종에는 최저임금을 낮게 설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실제로 경총은 ‘2022년 최저임금 미만율 분석 및 최저임금 수준 국제 비교’ 보고서를 통해 작년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 수는 275만6,000명에 달한다는 기록을 발표했다. 최저임금 미만율(임금근로자 중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 비율)은 지난해 12.7%를 기록했으며, 업종·규모별로도 큰 차이를 보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농림어업(36.6%)과 숙박·음식점업(31.2%)의 최저임금 미만율이 가장 높았으며, 업종 간 격차는 농림어업과 전문 과학기술서비스업(2.8%) 사이에 최대 33.8%P까지 나기도 했다.

경총은 업종 간 큰 격차에 대해 최저임금 고율 인상으로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수준이 급격하게 높아져 노동시장 수용성이 저하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소기업계 관계자 역시 “최근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의 경영 상황이 고금리‧고물가 등의 여파로 한계에 내몰리고 있는 현실을 무시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최저임금 결정은 고용의 81%를 책임지고 있는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양대 노총의 제안을 비판했다.

이에 오는 18일 열릴 최저임금위 첫 회의에 이목이 집중될 전망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저임금법에 따라 지난달 31일 최저임금위원회에 내년도 최저임금에 대한 심의를 요청했다. 최저임금위는 최저임금 수준을 의결해 심의 요청을 받은 날부터 90일 이내에 고용부 장관에게 제출해야 하며, 고용노동부 장관은 매년 8월 5일까지 최저임금을 결정해 고시해야 한다. 최저임금위는 사용자위원 9명, 공익위원 9명, 근로자위원 9명 등 총 27명으로 이뤄진다. 근로자위원 9명은 모두 양대 노총 소속이거나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다. 사용자위원에는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소상공인연합회 등 경영계 인사들이 참여한다.

높아지는 최저임금에 물가 상승은 당연한 것? ‘임금발(發) 인플레이션’ 확산 우려

지난 1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9월 한국의 최저임금은 106.6(2020년 12월 기준치 100)으로 집계되었다. 약 1년 9개월 동안 국내 최저임금이 6.6% 상승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물가 상승률 역시 가파르게 상승해 실질 최저임금은 오히려 하락세를 보였다.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은 ▲2019년 8,350원 ▲2020년 8,590원 ▲2021년 8,720원 ▲2022년 9,160원 순으로 상승해왔지만, 이 기간 소비자물가는 2021년 2.5%, 2022년 5.1% 오르며 2년간 약 7.7%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즉 2년 동안 최저임금 상승률은 7%에 못 미쳤지만, 물가는 7% 넘게 오르면서 실질 최저임금 상승률이 되레 줄어든 것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실질임금 상승률은 다시 흑자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은 2022년보다 5.1% 오른 9,620원으로, 한국은행이 지난해 11월 경제전망 당시 내다본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3.6%)보다 높기 때문이다. 동시에 최저임금 상승이 야기하는 물가 상승 구조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경제계에서는 최저임금 수준이 빠르게 올라 중소기업들과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을 정부에서 조장하고 있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현장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지르고 있다. 소상공인들은 인력 구조조정과 근로 시간 단축, 인력 대체 기술을 해결책으로 내세우며 ‘기존인력 감원(34.1%)’과 ‘근로 시간 단축(31.6%)’을 대처 방안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최저임금 인상의 직격탄을 맞게 된 편의점 업계에서는 무인점포가 더욱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편의점 4사(CU·GS25·세븐일레븐·이마트24)에 따르면 작년 5월 기준 낮에 점원이 상주하고, 심야에는 무인으로 운영되는 하이브리드 매장 수는 2,603개로 집계됐다. 김문식 한국주유소운영업협동조합 이사장 역시 “상당한 숫자의 주유소가 아르바이트를 정리하고 가족을 동원하는 추세며, 인건비 부담으로 영업시간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소상공인연합회에 따르면 야간시간 미운영 편의점 비율은 2016년 13.8%에서 2020년 20.4%로 증가했다.

숙련도에 맞게 최저임금 차등 배정하는 식으로 발전 필요

한편 해외에서는 나이나 숙련도에 따라 등급을 나누어 최저임금을 차등 분배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영국을 비롯한 영연방에서는 국가최저임금제도(National Minimum Wage)를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견습생(Apprentice) ▲18세 미만 ▲18~20세 ▲21~22세 ▲23세 이상으로 나눠 2023년 4월 기준 ▲견습생 £5.28(약 7,600원) ▲18세 미만 £5.28(약 7,600원) ▲18~20세 £7.49(약 10,700원) ▲ 21~22세 £10.18(약 14,500원) ▲23세 이상 £10.42(약 15,000원)로 지급한다.

캐나다엔 연방정부 차원의 최저임금은 없고, 주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하며 2010년대 이후로 모두 하한선(11.00 캐나다 달러 이상)이 책정되어 있다. 최저임금이 가장 높은 주는 브리티시 컬럼비아로 15.65 캐나다 달러(한화 약 15,300)이며, 가장 낮은 주는 서스캐처원으로 11.81 캐나다 달러(한화 약 11,500)이다. 또 미국처럼 팁을 받는 직종인 식당 종업원 등과 청소년 학생 신분의 아르바이트생은 법적으로 일반 노동자에 비해 낮은 최저임금이 적용된다.

지난 2015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신년 연설을 통해 “정말로 당신이 연간 15,000달러 미만의 급여로 종일 근무하면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시도해보라”라고 말하며 국민의 90% 가까이 지지를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최저임금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데이비드 뉴마크(David Neumark) 캘리포니아대 어바인캠퍼스 경제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미국의 경우 최저임금제가 가족의 빈곤에 기여할 수 없으며, 이미 EITC(근로소득공제)를 통해 저소득 가구를 보조하고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실제로 최근 미국에서 최저임금을 주 40시간 노동 기준 최소 생활 임금인 15달러로 인상하자는 이야기가 빗발치고 있지만 이에 대해선 아직 더 검토해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결국 핵심은 자본주의 사회에선 시간만 때우며 일을 하는 사람과, 기술 및 역량이 뛰어난 사람에게 부여되는 급여에 차이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최저임금제는 정부 차원의 복지 정책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국고가 아닌 사용자의 지출 하한선을 강제하기 때문에 시장 규제에 가깝다. 제도의 의도 자체가 근로자의 최소 생활과 생존권 보장을 위하는 것인 만큼, 근로하는 사업주와 한계 근로자 둘 모두를 보호하기 위한 최저임금제도의 변화가 요구된다. 이번 최저임금위에서 내년 최저임금 수준 및 업종별 구분(차등) 적용 여부와 생계비 적용 방법 등에 대해 더 깊이 있는 논의가 진행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