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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스타트업 '글로벌 진출' 타진하는 팁스, 보스턴과의 협력 '기대' 격변하는 사회, 실리콘밸리도 '밀랍' 녹았나 '실리콘힐스' 탄생 가시화, "보스턴에 종속돼선 안 돼"
미국 보스턴에 팁스(TIPS) 기업을 위한 글로벌 진출 거점이 마련된다. 창립 1주년을 맞은 스케일업팁스협회(이하 협회) 주도로 스케일업팁스 기업을 비롯한 팁스 기업 전체의 글로벌 진출과 성장을 지원하기 위함으로, 팁스를 한국의 우수한 기술 기반 스타트업 브랜드로서 글로벌 시장에 널리 알리기 위한 행보의 일환이다. 거점 마련이 이뤄지면 앞으로 보스턴 연구대학인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과 스케일업팁스 기업 간 글로벌 연구개발(R&D) 협력부터 바이오 기업 임상, 라이선싱 투자 유치를 위한 밋업 등 전방위 협력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협력 고도화, "美 보스턴에 거점 마련할 것"
협회는 12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창립 1주년 포럼을 개최했다. '스케일업팁스 프로그램의 발전방향'을 주제로 열린 이번 포럼에서는 협회 회원사 진행 현황과 발전적 방향 등이 논의됐다. 협회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지정한 스케일업팁스 운영사들로 구성된 단체다. 스케일업팁스는 투자형 R&D 일환으로 2021년부터 개시된 지원 사업의 명칭으로, 민간과 정부가 협업하는 지원 방식으로 구성돼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팁스 프로그램을 확대·재편해 하드웨어·제조분야 기술집약형 유망 벤처를 엄선해 지원하는 게 골자다.
이날 협회는 창립 기념 포럼을 계기로 내년부터 스케일업팁스 기업의 글로벌 협력을 고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특히 미국 보스턴에 거점을 마련해 팁스 기업의 글로벌 진출 기지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스턴과 산호세에서 연 2회 비즈니스 밋업도 정기적으로 열겠단 계획이다.
글로벌 R&D 협력도 함께 추진한다. 협회는 투자 기업과 컨소시엄을 이뤄 MIT ILP(Industrial Liaison Program)에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ILP는 MIT 학문적 연구성과와 산업계 상호연계를 지원하는 산학연계 프로그램으로, 기업·학계 간 협력과 산업 기술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설립됐다. MIT 교수진과 위탁과제 진행은 물론 MIT 기술을 활용한 제품·서비스 개발이 가능하다는 점 등 각종 이점이 많은 만큼 참여가 현실화된다면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협회는 기대하고 있다.
협회에 따르면 민간이 선 투자 후 R&D 자금과 투자를 병행하는 스케일업팁스와 마찬가지로 MIT와 공동 R&D를 원하는 기업이 컨소시엄을 이뤄 가입할 경우 정부가 일정 자금을 지원하는 형태로 사업이 이뤄질 전망이다. 협회에서는 스케일업팁스 기업 R&D 수요와 MIT 적합성 등을 고려해 지원 기업을 선정할 계획이다.
이외 국내 협업기관인 포스코홀딩스와 협력도 구체화해 오픈이노베이션과 후속 투자 등을 긴밀하게 연결한다. 포스코홀딩스는 스케일업팁스 전용 펀드를 조성해 선발 기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포스코의 제조인큐베이터를 팁스프로그램의 스케일업 플랫폼을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와 관련해 박성진 포스코홀딩스 산학연협력담당 전무는 “기업가치 상승(밸류업)은 우리가 삼성보다도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접근하고 있다”면서 “제일 잘하는 벤처캐피털(VC)에 자금을 투자하고, 가장 잘하는 VC가 투자한 기업을 포스코와 연결하는 것이 핵심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대격변' 일렁이는 美, "보스턴만 믿어선 안 돼"
다만 일각에선 사업이 진행될수록 보스턴과 협업관계보단 종속관계에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특히 최근 들어 다소 약세를 보이고 있는 보스턴에 사실상 종속될 경우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의 근간이 무너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 현재 미국 내 산업구조는 대격변 못잖은 변화를 겪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바이오 허브로 꼽히던 보스턴은 물론, 이전까지 '스타트업의 허브'로서 역할을 다하던 실리콘밸리마저 점차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있다.
이미 실리콘밸리를 등지고 떠나간 스타트업 창업자와 엔지니어가 수두룩하다. 2021년 한 해 동안만 30개 이상의 대기업이 캘리포니아에서 텍사스로 본사를 옮겼고, 지난해에만 65만 명이 캘리포니아를 떠나 '엑소더스 현상'이란 말까지 생겼다. 가장 유명한 기업 이전 사례는 바로 테슬라며, 이외에도 오라클(Oracle), 빅커머스(Big Commerce), 인디드 (Indeed) 등 거대 IT 기업 및 스타트업들이 오스틴에 본사를 두고 있다. 이른바 '실리콘힐스'의 탄생이다.
글로벌 투자 전문 연구기관 피치북 데이터에 따르면 전체 VC 투자 금액 중 실리콘밸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당장 지난해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 투자된 VC 펀딩 규모는 749억 달러(약 94조6,800억원)로, 2020년 대비 19% 성장하는 데 그쳤다. 반면 새로운 실리콘밸리로 부상하고 잇는 텍사스 오스틴은 49억5,000만 달러(약 6조2,600억원)를 기록해 같은 기간 77% 상승했다.
이 같은 엑소더스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명확하다. 부동산 가격과 인건비가 급등했고,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세금이 높아서다. 이에 반해 텍사스주는 캘리포니아에 비해 생활비가 훨씬 싸고, 부동산 가격도 낮다. 또 기업에 대한 적은 규제와 낮은 세금이 장점으로 꼽힌다. 이미 변화는 시작됐다. 과거의 영광에만 머물러선 급변하는 기술 흐름에 적응해 나가야 할 스타트업들은 살아남기 힘들 수밖에 없다. 미 보스턴에 국내 스타트업들이 지나치게 끌려다녀선 안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