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반도체 훈풍 타고 웃은 미국·일본 증시, 한국만 ‘울상’
입력
수정
실적 발표 3일 만에 주가 93% 급등한 ARM
日 닛케이225 지수 올해 들어 5.7% 상승
SK하이닉스 신고가 경신에도 韓 증시 ‘지지부진’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에 대한 긍정적인 보고서와 기업의 호실적이 연이어 발표되며 미국 주식시장에서 AI 반도체 관련 주식들이 급등하는 모습이다. 지난해 12월 잠시 주춤했던 기술주 중심 나스닥지수가 올해 들어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면서다. 엔비디아와 마이크로소프트(MS), AMD 등이 신고가를 경신하고 전체 나스닥지수 상승세를 견인했고, ARM의 반도체 실적 호조가 힘을 보탰다.
ARM 필두로 줄줄이 신고가 새로 쓴 AI 반도체 기업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12일(현지 시각) 영국 반도체 설계 기업 ARM의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29.3% 급등한 148.97달러로 장을 마쳤다. 앞서 지난 7일 최근 분기(2024년 1월∼3월) 매출을 최대 9억 달러(약 1조1,948억원)로 예상하며 시장의 평균 예상치(7억7,800만 달러·약 1조329억원)을 크게 웃돈 데 따른 결과로, ARM의 주가는 실적 발표 후 단 3거래일 만에 93%가량 치솟았다. 이로써 ARM의 시가총액은 1,530억 달러(약 203조원)에 달하며 3위 인텔을 약 300억 달러 차이로 바짝 추격하고 있다.
ARM은 스마트폰의 두뇌에 해당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설계 핵심 기술을 보유한 기업으로, ARM의 주력 제품 V9 아키텍처는 엔비디아 그레이스호퍼를 비롯해 MS 코발트, 아마존 그라비톤 등 다수의 AI 데이터센터용 CPU에 활용된다. AI 데이터센터 수요가 증가할수록 ARM 설계에 대한 수요 또한 늘어나게 된다.
ARM 외에도 다수의 AI 반도체 기업들이 신고가를 경신하며 시장의 봄날을 이야기했다. 엔비디아는 같은 날 전장 대비 4.17% 오른 주당 594.91달러로 거래를 마쳤고, MS, AMD, 브로드컴, 슈퍼마이크로컴퓨터 등 여러 기업이 이달 들어 52주 신고가를 기록했다. 특히 엔비디아는 장 중 한때 1조8,200억 달러(약 2,416조원)의 시가총액을 기록하면서 아마존의 시가총액(1조8,100억 달러)을 추월하기도 했다. 엔비디아 주가는 올해 들어서만 약 49% 상승했다.
이들 기업이 앞다퉈 신고가를 경신한 배경에는 AI 산업이 증시의 주도 테마로 등장했다는 점이 짙게 작용했다. 대표적 사례로는 2022년 등장한 생성형 AI ‘챗GPT’의 상용화를 꼽을 수 있다. 산업 현장 등 생성형 AI를 도입하는 분야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AI를 구동하는 온디바이스 AI 수요 증가로 이어진 것이다. 현재 챗GPT 개발사 오픈AI는 자체 AI 반도체 개발을 위해 TSMC 등과 접촉하고 있다.
공통 분모 ‘반도체’로 미국-일본 증시 강한 연동
일본 증시에서도 미국과 비슷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AI를 비롯한 반도체 관련주가 일제히 급등하며 시장의 상승세를 이끌면서다. 일본 최대 반도체 장비 업체 어드반테스트와 도쿄일렉트론의 주가가 1월 초 대비 각 41.8%(4,615엔→6,547엔), 23.9%(24,005엔→29,755엔) 오르면서 도쿄증시 대표 지수인 닛케이 225를 5.7%가량 끌어올렸다.
이들 기업 외에도 세계 최대 실리콘 웨이퍼 제조사 신에츠화학과 숨코가 각각 연초 대비 3.1%(5,725엔→5,903엔), 11.2%(2,090.5엔→2,325.5엔) 올랐으며, 세계 3대 포토레지스트 생산업체인 도쿄오카공업 주가는 3,075엔에서 3,527로 14.7% 뛰었다. 자산운용사 픽테재팬의 이토시마 다카토시 전략가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미국 증시와 무관한 흐름을 보이던 일본 증시가 반도체주 강세를 계기로 미국 증시와 강하게 연동하는 본래 흐름으로 되돌아왔다”고 분석했다.
韓 반도체 기업, 시장 하방 압력에 기술력 입증 과제까지 떠안아
반도체 관련 기업들의 연이은 신고가 경신에 힘입어 시장 회복의 신호탄을 쏜 미국, 일본과 달리 국내 증시는 유독 그 효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차전지 관련주의 실적 부진에 대한 우려가 반도체 관련주의 상승세를 상쇄시킨 데 따른 결과다. 실제로 국내 증시는 13일 SK하이닉스가 장중 14만9,300원까지 치솟으면서 52주 신고가를 새로 썼지만, 코스피 20위권 내 대형주인 LG에너지솔루션(-0.13%), POSCO홀딩스(-3.2%), 포스코퓨처엠(-2.3%) 등의 하락 폭이 큰 탓에 ‘SK하이닉스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과 일본에 비해 기술 경쟁력에서 우위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주가 상승을 가로막는 요인 중 하나다. 메모리 반도체 및 설계 등 전통적 반도체 분야에서는 안정적인 기술력을 구축하고 있지만, 최근 가장 화두가 된 AI 및 차량용 반도체 부문에서는 미국이나 일본의 기술력에 한참 못미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반도체 산업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한국의 반도체 기술 경쟁력은 평균 71점으로, 미국의 산업 경쟁력(100점)에 30% 가까이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 안팎에서는 AI의 등장이 가져올 산업 혁신이 본격화하며 관련 반도체 주 강세 또한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1990년대 중반 아마존이 이끈 www(월드와이드웹) 기반 인터넷 상용화, 2000년대 애플의 아이폰 개발로 인한 IT 기기 대체에 이은 AI 혁명이 인간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던 분야 상당수를 AI로 대체할 것이란 예상이다.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AI를 비롯한 자동화 붐으로 동일한 산출량에 투입되던 인적 노동량은 급감하고, 이를 통해 노동시장의 재구조화가 앞당겨질 것”이라며 “AI 확산의 최대 수혜자는 단기적으로는 반도체 관련 업종을 꼽을 수 있으며, 중장기적으로는 산업 전반이 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