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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몬트·캐나다 배릭 골드 등 금 채굴 기업, 구리 투자 집중 몽골 미래 먹거리로도 낙점, 본격 채굴 시 빈곤률 감소 기대 파마나 광산 생산 중단 타격, 공급 대란 우려에 ‘귀한몸’된 구리
그간 대규모 과잉 공급을 이유로 맥을 못 추던 구리 시장에 투자금이 대거 몰리고 있다. 주요 광산 기업들의 생산이 축소되고 있는 데다 전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 전환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당장 올해부터 구리 공급 대란이 올 것이란 전망이 확산하면서다. 구리 수요는 급증하고 있는 데 반해 공급량은 충분치 않아 가격 폭등이 일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세계적 금 채굴 기업들 ‘구리 광산’ 투자 랠리
4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금 채굴 업계 1위 기업인 미국 뉴몬트와 2위인 캐나다의 배릭 골드를 중심으로 구리 광산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먼저 배릭 골드는 파키스탄 레코디크 지역에서 70억 달러(약 9조3,200억원) 규모의 구리·금광 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레코디크 지역은 미국 국무부가 테러 조직으로 지정한 발루치스탄 해방군(BLA) 등 다수의 반군 단체가 출몰하는 지역으로, 테러 위협으로 인해 중국도 진출을 꺼리는 곳이다.
배릭골드는 이곳에서 2028년부터 생산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마크 브리스토우 배릭 골드는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1월 투자자들에게 "파키스탄에 사업장을 건설하고 잠비아 코퍼 벨트 지역의 룸와나 광산을 확장해 메이저 구리 생산업체가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아울러 배릭골드는 지난해 실패했던 캐나다 광산기업 퍼스트퀀텀미네랄(FQM) 인수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FQM은 파나마에 초대형 구리 광산을 개발한 뒤 행정 소송에서 패소해 채굴 허가권이 무효가 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이다.
미국 콜로라도에 본사를 둔 뉴몬트는 지난해 11월 호주 뉴크레스트 마이닝을 약 150억 달러(약 20조원)에 인수했다. 세계 최대 금 생산기업 자리를 지키기 위함이 아닌, 뉴크레스트의 구리 사업을 노린 인수였다. 뉴몬트는 뉴크레스트 인수 후 전체 매출의 약 10%를 구리에서 얻고 있다. 광산 개발이 예정대로 이뤄질 경우 구리 비중은 20%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몽골 정부도 ‘오유톨고이’ 구리 광산 개발에 박차
몽골도 오유톨고이(Oyu Tolgoi) 구리 광산 개발에 나서며 경제 도약을 꿈꾸고 있다. 몽골 남쪽 고비 지역에 위치한 오유톨고이 구리 광산은 세계 수요 증가에 발맞춰 몽골 경제에 큰 도움이 될 ‘미래 먹거리’로 꼽힌다. 오유톨고이 광산이 보유한 구리의 약 80%가 지하에 매장돼 있는 상태로, 현재 진행 중인 70억 달러 규모의 공사가 완료돼 본격적인 채굴이 시작되면, 매년 50만 톤의 구리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전기자동차 600만 대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오유톨고이 광산에서 채굴된 자원의 가치는 연간 약 50억 달러(약 6조6,600억원)에 달하는 만큼 34%의 지분을 보유한 몽골 정부는 매년 약 2억 달러(약 2,600억원) 상당의 로열티를 받게 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따라 몽골 정부 재정도 대폭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몽골은 1990년 시장경제로 전환한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 금융을 여섯 차례나 받는 등 극심한 경제 침체에 허덕이고 있다. 높은 원자재 가격과 중국의 석탄 수요 증가로 마이너스 성장은 면했으나, 여전히 몽골 정부는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몽골 정부는 구리 자원 호황에 힘입어 지난해 150억 달러였던 자국의 국내총생산(GDP)이 2030년까지 약 500억 달러로, 3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몽골의 빈곤율도 현 수준보다 절반 이상 낮은 15%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수요 급증한다는데 공급은 오히려 축소, ‘몸값’ 치솟는 구리
최근 구리 투자에 뭉칫돈이 몰리는 이유는 10년 내 구리 수요가 현재의 2배 수준으로 증가할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발전설비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송전망 구축을 위해 구리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또한 구리는 전기차 생산에 핵심 재료로 쓰인다는 점에서 미래형 소재로도 각광받고 있다. 이런 이유로 글로벌 원자재 업계에서는 구리를 ‘새로운 석유’라 부르기도 한다.
주요 투자은행(IB) 및 원자재 애널리스트들은 탈탄소화가 진행될수록 구리의 가치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관측한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평균 구리 가격이 9,750달러까지 오르다가 내년에 1만2,000달러(약 1,600만원)로 점프할 것으로 전망했고, 뱅크오브아메리카(BoA)도 달러 강세가 완화될 경우 올해 2분기에 1만2,000달러를 찍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최근 구리 가격의 오름세가 심상치 않다. 세계 최대 비철 금속 장터인 런던금속거래소(LME)에 따르면 지난해 7월 톤당 7,000달러까지 하락했던 구리 가격은 지난해 말 수요가 되살아나면서 현재는 1만 달러에 육박한다.
구리 가격의 상승 요인은 수요와 공급에서 모두 발생한 것으로 분석된다. 사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글로벌 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향후 몇 년간 구리가 과잉 생산될 것으로 여겨졌다. 국제구리연구그룹은 지난해 10월 보고서를 통해 올해 글로벌 구리 시장에서 약 46만7,000톤이 과잉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구리 시장에서 공급이 부족해질 조짐이 커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파나마 정부가 세계 10위 생산력을 가진 코브레 파나마 구리광산의 채굴과 가공 및 판매 활동을 중단하라고 명령하면서다.
앞서 파나마 정부는 광산 소유사인 FQM의 구리 채굴권을 연장해 준 바 있으나, 환경 파괴를 이유로 이를 반대하는 시위가 6주 넘게 이어지자 파나마 대법원이 광산계약을 위헌으로 판결, 파나마 대통령이 폐쇄 명령을 선언한 것이다. 이 조치로 해당 광산의 작년 4분기 정광 생산량은 전년 대비 42% 감소했으며, 수출 항구 운영도 중단돼 12만1,000톤의 정광 수출이 모두 막힌 상태다. 글로벌 광산기업 앵글로 아메리칸도 2026년까지 비용 절감이란 명분하에 지난해 12월 구리를 비롯한 주요 원자재의 감산을 결정했다. 구체적으로 내년 구리 생산량 목표치를 기존 대비 20만 톤 낮춘 73만∼79만 톤으로 제시했고, 2025년에는 생산량이 69만∼75만 톤 수준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이에 씨티뱅크는 지난해 12월 보고서를 통해 최근 UN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8) 회의에서 60개국 이상이 2030년까지 전 세계 재생에너지 용량을 3배로 늘리려는 계획을 지지했다며 이러한 움직임은 구리 가격에 매우 긍정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2030년까지 구리 수요가 420만 톤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2025년 구리 가격이 톤당 1만5천 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는 지난해 3월에 기록한 사상 최고치인 톤당 1만730달러보다 훨씬 높은 가격이다. 구리 공급 부족이 심각해질 경우 가격 폭등은 물론, 국가 간 구리 쟁탈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덴마크 투자은행 삭소의 올레 핸슨 상품전략가는 “구리는 녹색 에너지 전환을 위해 각국이 막대한 투자를 하는 과정에서 거대한 정치적 자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