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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오피스 공실률 20% 육박, “역대 최고” 팔지도 못하고 고치지도 못하는 노후 건물 다수 대출 부실 우려에 전 세계 은행권 ‘초비상’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위기론이 최고조에 달한 가운데 헐값 매물이 속출하고 있다. 이와 함께 대규모 상업용 부동산 대출을 취급하는 은행들의 위기도 본격화했다. 전례 없는 부동산발 위기가 금융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면서 전 세계 은행들은 대응책 마련에 돌입했다.
뉴욕 상업용 부동산 가격 1년 사이 53.9% 급락
8일 미국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캐나다국민연금(CPP)은 2021년 7,100만 달러(약 942억원)에 사들인 뉴욕 맨해튼의 360파크애비뉴사우스 빌딩의 지분 29%를 지난달 공동투자자인 보스턴프로퍼티(BXP)에 매도했다. 이 과정에서 BXP가 CPP에 지불한 금액은 단돈 1달러(약 1,300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CPP는 2021년 지분을 매수할 당시 해당 건물의 가치가 4억 달러(약 5,309억원)를 상회할 것으로 기대한 바 있다. 하지만 이듬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대대적인 금리 인상을 단행하며 상황이 급변했다. 다수의 부동산 소유자가 높은 금리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매물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조사기관 그린스트리트에 따르면 뉴욕의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2022년 3분기부터 2023년 3분기까지 불과 1년 사이 53.9% 하락했다. 통상 부동산 매입 과정에 70% 안팎의 대출을 이용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입 가격 그대로 건물을 매도하더라도 대출을 갚기에 부족한 셈이다.
오피스 수요가 급감했다는 점도 상업용 부동산 매물이 넘치는 요인 중 하나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재택근무와 하이브리드 근무가 보편화하면서 오피스 수요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다. 무디스애널리틱스의 조사에서 2022년 12월 18.8% 수준이던 미국 오피스 공실률은 지난해 12월 19.6%까지 오르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최근 인공지능(AI)을 도입하며 감원에 나선 정보기술(IT)기업이 급증하는 등 오피스 수요 감소가 가팔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주를 이룬다.
갈수록 높아지는 공실률에 금리까지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자 부동산 관련 대출 연체율도 오름세를 거듭하는 모습이다. 부동산 정보제공업체 트렙에 의하면 지난해 1월 1.86%에 불과하던 미국 사무용 부동산 대출 연체율은 올해 1월 6.3%까지 치솟았다. 이같은 연체는 주로 노후화한 소형 빌딩에 집중된 것으로 드러났다. 블룸버그통신은 “낡고 작은 건물일수록 공실률이 높은 탓”이라고 분석하며 “노후화한 건물은 현행법이 요구하는 친환경 설비 요건 등을 구비하기 힘들어 용도 전환도 쉽지 않은 실정”이라고 말했다.
노후화 빌딩 용도 변경 한계, 공실률 증가 불가피
전문가들은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이른 시일 내 정상화되긴 어려울 것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팬데믹 종료 후에도 사무실로 돌아오는 기업과 직장인이 극소수인 탓에 오피스 공실률의 증가 또한 계속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카이런 라이추라 부동산 부문 부수석은 “상업용 부동산 침체는 2025년 말까지 단계적으로 하락해 그 가치가 고점 대비 35% 수준까지 하락할 것”이라며 “최악의 경우 내년 말 이후에도 추가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JP모건의 상업용 부동산 책임자 알 브룩스 또한 “오피스 부동산 시장은 큰 변화를 겪고 있다”고 진단하며 “다시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은행의 치솟는 연체율이 노후화한 소형 부동산에 집중된 만큼 이들 상업용 부동산이 용도 변경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 순차적 몰락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은행 손실 가시화, 뱅크런 사태 재현되나
상업용 부동산 대출 관련 손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은행은 물론 금융시스템 전체에도 비상이 걸렸다. 자산 포트폴리오 중 상업용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은행들을 위주로 위기감이 고조됨에 따라 지난해 실리콘밸리은행발(發)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가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가 고개를 들면서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케이비더블유(KBW) 나스닥 지역은행 지수가 불과 이틀 사이 8.1% 하락하는 등 시장 불안이 가중되기도 했다.
이같은 위기감은 미국을 넘어 유럽과 일본 등 전 세계 곳곳으로 번지고 있다. 비용 절감을 위한 인원 감축 등 구조조정에 나선 은행이 속속 포착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비용 절감에 팔을 걷어붙인 독일 최대 은행 도이체방크가 대표적 예다. 도이체방크는 이달 1일 진행된 실적 발표 자리에서 “운영 효율화를 위해 인력 3,500명을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도이체방크가 고용한 전 세계 인력의 약 4%에 해당하는 규모다.
지난해 57억 유로(세전, 약 8조1,638억원)에 달하는 이익을 거둔 도이체방크가 이처럼 대대적인 인원 감축을 선언한 배경에는 미국 상업용 부동산 익스포저(위험노출액)에 따른 미래 불확실성이 짙게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도이체방크는 지난해 4분기 상업 부동산 손실에 대비한 충당금이 1억2,300만 유로(약 1,761억원)로 전년 동기(2,600만 유로·약 372억원) 대비 4배 수준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도이체방크의 미국 오피스 대출은 전체 대출의 1.5% 수준에 불과하지만, 전 세계 은행들의 관련 손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만큼 불안 요소를 지울 수 없다는 설명이다.
도이체방크 외에도 미국 오자크은행과 밸리내셔널뱅코프, 뉴욕커뮤니티뱅코프 등 다수의 지역 은행들이 위기설과 함께 주가 하락에 직면했으며, 스위스 줄리어스베어은행과 일본 아조오라은행 등 자산 중 미국 상업용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전 세계 은행들은 커지는 손실 우려에 경영자 교체를 선언하기도 했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의 부진 여파가 갈수록 그 위력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