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교통비 부담 커지는데 지하철은 ‘만년 적자’? 정부-지자체 간 논의 시급

서울시 대중교통 요금 인상 예고, 서민 교통비 지원책 필요성 대두 독일 ’49유로 교통 티켓’ 등 정액권 형태 교통카드, 대중교통 활성화 효과 입증돼 교통비 지원 논의보다 ‘만년 적자’ 지하철 재정 문제 해결이 먼저라는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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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가스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으로 서민들의 고충이 커진 가운데, 서울시가 지난 2월 택시요금 인상에 이어 올 하반기 교통비 인상을 예고하고 나섰다. 서울시는 지하철과 간·지선 버스 300원~400원, 순환 차등 버스 400원~500원, 광역버스 700원, 심야버스 350원, 마을버스 300원 수준의 인상안을 내놨다.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대중교통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만큼, 교통비 인상은 서민 가계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최근 국회에서 서민들의 교통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대중교통의 육성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된 가운데, 독일의 월정액 대중교통 티켓이 기존 ‘정기권카드’의 한계를 뛰어넘을 색다른 해결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편 대중교통 활성화 지원을 위한 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지원책 마련보다 ‘재정 문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부분 지자체의 대중교통 사업이 적자의 늪에 빠져 있는 만큼, 지원책을 마련하기 전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재정 분담에 대한 논의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독일의 월정액 교통카드 ’49유로 티켓’

대중교통 요금이 상대적으로 비싼 독일에서는 이전부터 일정 기간 무제한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월정액권 요금제, 무상교통제 등이 실시돼 왔다. 독일의 「근거리 대중교통의 지역화에 관한 법률(지역화법, RegG)」이 시민이 근거리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충분한 교통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관계 기관의 공적 임무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연방 정부는 2023년 5월 1일부터 에너지 및 인플레이션 위기에 대응하는 구호 패키지의 일환으로 ‘월 49유로 교통 티켓’ 제도를 도입했다. 49유로 티켓은 고속열차 등 일부 교통수단을 제외한 모든 대중교통을 49유로 월정액(월 단위 취소 가능) 티켓으로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구독형 디지털 티켓’이다. 49유로 티켓의 발행에 투입되는 연간 총비용은 30억 유로(약 4조3,000억원)로 추정되며, 이는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절반씩 부담한다. 독일은 월정액 티켓을 통해 서민의 교통비 부담을 줄이는 것은 물론, 에너지 절약 등 친환경적 효과까지 기대하고 있다.

49유로 월정액 티켓은 지난 2022년 6월부터 8월까지 한시적으로 시행한 ‘월 9유로 티켓’의 후속 정책이다. 9유로 티켓은 도입 당시 3개월 만에 약 5,290만 장이 판매되었으며, 실제 대중교통 이용 수요가 대폭 증가하는 효과를 냈다. 정책 시행 한 달 후 독일운송회사협회(VDV)와 독일철도(DB)가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9유로 티켓 도입 후 공공교통 수요는 25%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pexels

국내 교통비 절감 방안은?

국내 대중교통에서 49유로 티켓과 같은 ‘월정액 티켓’은 찾아보기 어렵다. 단 유사한 상품으로는 서울교통공사(수도권 지하철)의 정기권 운임을 충전하여 사용할 수 있는 ‘정기권카드’가 있다. 정기권 종류는 크게 ‘서울전용’과 ‘거리비례용’으로 나뉘며, 종류 및 운임 종류에 따라 가격 및 활용 방법이 상이하다.

서울전용 정기권카드 운임의 경우 55,000원 균일가(교통카드 기본운임 1,250원 x 44회)며, 최대 60회까지 사용 가능하다. 기본요금으로 한 달에 지하철을 60회 이용한다고 가정할 경우 7만5,000원(1,250원X60회)이 드는 반면, 서울전용 정기권을 활용하면 2만원가량(약 26%)을 절약할 수 있는 셈이다. 서울 외 경기도, 인천 등 지역에서도 사용이 가능한 거리비례용 종별 운임은 44회 기준 15% 할인된 가격으로 책정되며, 거리에 따라 1단계(20km마다 1회, 55,000원)부터 18단계(추가 차감 없음, 117,800원)로 분류된다.

정기권카드는 지하철을 타고 먼 거리를 출퇴근·통학하는 수도권 거주 직장인, 학생 등에 유리한 제도다. 하지만 사용 가능 기간과 횟수가 제한되어 있는 만큼, 지하철 이용 빈도 및 이동 거리에 따라 그 효율이 상이할 수 있다. 특히 서울전용 정기권카드은 30일 동안 최소 44회 이상을 이용하지 않을 경우 일반적인 교통카드를 사용할 때보다 오히려 불리하다. 아울러 버스와 환승이 되지 않는 등 활용처가 제한적이라는 점도 정기권카드의 한계로 지목된다.

사진=알뜰교통카드

정기권카드 사용으로 큰 혜택을 볼 수 없는 이들은 교통비 절감을 위해 다양한 절약 수단을 이용한다. ‘알뜰교통카드’가 대표적이다. 알뜰교통카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걷거나 자전거로 이동한 거리만큼 마일리지를 적립해 주는 상품이다. 도보 이동이 많은 경우 알뜰교통카드 사용을 통해 대중교통비를 최대 30%(특정 카드사 추가 할인 혜택 포함) 절감할 수 있다.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청년(만 15~34세)이라면 매월 5만원의 교통비 바우처를 지급받을 수 있는 청년동행카드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청년동행카드는 교통 여건이 열악한 산업단지에 소재한 중소기업 재직 청년에게 교통비를 지원해 주는 사업이다. 버스(마을·시내·시외·고속), 지하철, 택시, 주유비(경유·휘발유·LPG·전기) 등 다양한 교통수단에서 활용 가능하며, 카드 결제일에 한도 내에서 바우처가 차감되는 방식이다.

쟁점은 지원 모델보다 ‘재원 마련’

핵심은 무조건적인 현금성 지원을 지양하고, 실질적인 지원 수요를 충족하는 데 있다. 독일의 월정액 교통 티켓의 경우 국내 ‘정기권카드’와 유사하지만 비교적 활용도가 높으며, 그 효과가 입증된 정책이다. 추가적인 현금 지원 없이도 ‘교통비 부담 절감’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만큼, 국내에 도입될 경우 기존 정기권카드의 한계를 넘어 서민의 교통비 절약에 기여할 수 있을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대중교통의 육성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 역시 대중교통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 할인된 정액권 형태의 교통카드를 제안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대중교통 요금의 인하를 논하고, 지원 정책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에 앞서 재원 마련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철도와 지하철을 운영하는 공기업의 재정 적자는 점점 심화되고 있다. 서울시 지하철의 연간 적자 규모는 2019년 5,878억원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 1조1,448억원으로 급증했으며, 2022년에는 1조2,600억원(전망치)까지 적자 폭이 커졌다. 최근 5년(2018~2022년)간 지하철 연평균 적자 규모는 9,200억원에 달한다.

시민도, 공기업도 금전적 부담으로 인해 휘청이고 있는 시기다. 대중교통의 이용률 증진과 공공적 특성 강화는 필수적이나, 지속적인 적자로 인해 ‘대중교통 체계’ 자체가 흔들릴 경우 이 같은 지원책은 결국 무용지물이 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대중교통 재정 분담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대중교통 지원 체계 수립 및 재원 마련을 위한 적극적인 소통을 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