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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서울교통공사 근로자 대표로 양대 노총이 아닌 올바른노조 소속의 허재영 후보가 55.19%(1,899표)를 얻으며 당선됐다. 서울교통공사에서 양대 노총 소속이 아닌 근로자 대표가 당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달 3~10일에 치러진 영업본부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근로자 대표 선거에서 올바른노조 허재영 후보가 2위 민노총 임정환 후보 44.81%(1,542표)를 제치고 당선됐다. 2위 임 후보는 양대 노총 단일 후보로 출마했다.
양대 노총 지고 MZ노조 뜬다
현재 서울교통공사 영업본부 조합원 구성에서 올바른노조가 차지하는 비율은 31%에 불과하다. 민주노총 43%, 한국노총 10%로, 양대 노총 합계가 과반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허 후보가 당선된 것이다. 서울교통공사 노조 관계자는 이번 선거를 '파란이 일어났다'고 평했다.
허 후보는 지난 2016년에 입사한 31세 조합원으로 알려졌다. 선거전 초반만해도 양대 노총 후보가 아니라는 이유로 실제 득표력이 한참 모자랄 것이라는 평이 돌았으나,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통상 근로자 과반이 가입된 노조가 당연직으로 근로자 대표를 맡지만, 지난 2021년 8월 올바른노조 결성 이후 청년층 조합원이 양대 노총에서 이탈하면서 민주노총의 과반이 깨져 이번에 선거를 치르게 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에서도 '비권' 바람, 직장에서는 양대 노총 아닌 노조
S대의 '비권' 출신으로 정치권에서 활동 중인 K씨는 이번 사건을 '대학가의 비권 바람이 직장으로 옮겨간 것'으로 해석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대학가에 확산된 운동권 반발 움직임에 더 이상 학생들에게 민주화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운동권 학생들이 페미니즘 등으로 옮겨가다 결국 대학가에 학생회 설립 자체가 어려워지게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직장에서도 민주노총, 한국노총에 대한 반발 세력이 MZ세대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서울교통공사의 MZ세대 출신이자 '비 노총 출신' 노조 대표가 당선된 것과 더불어 주요 대기업, 공기업에서도 MZ세대 출신의 노조가 빠르게 구성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가 결의식을 갖고, LG전자, 서울교통공사, 한국가스공사, LS일렉트릭, LG에너지솔루션, 부산관광공사 등의 주요 대기업, 공기업 출신 MZ세대 노조 관계자들이 모여 새로운 사고의 노조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가 공식 출범 전부터 내세웠던 메시지는 '상식'이다. 이는 그간 양대 노총이 운영하는 노조가 '상식'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지적으로 풀이된다. 이어 '상생', '공정', '연구', '자율성', '합리적', '수평적'이라는 키워드도 꼽았다. 과거의 'N86'이 주축이 됐던 노조들이 군대식 문화와 이기주의에 몰두해 있었던 반면, MZ세대 노조는 소통을 중시하고 사측과 합리적인 결론을 얻어내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MZ세대가 이끄는 노조의 모습은?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는 "노조의 이미지가 국가 지원금을 착복하고, 자식들을 강제로 정규직으로 해달라고 고집을 피우는 모습, 길거리에서 고성방가를 지르고 업무를 방해하는 이미지로 낙인찍혀 있는 반면, MZ세대의 노조는 사측과 현실적인 문제를 논의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고 말했다.
한편 MZ노조가 기대를 받고 있기는 하나, 실제로 집단 내부에서의 인력을 바탕으로 한 힘은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이 느끼고 있는 한계다. 이런 와중에 노조원 중 무려 31%가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의 올바른노조 소속인 서울교통공사에서 허재영 후보가 당선되자 MZ세대 노조에 대한 관심도 확대되는 추세다. 서울교통공사에서는 이번 영업본부 근로자 대표에 이어 진행되는 차량, 승무, 기술 본부 근로자 대표 선거에서도 올바른노조 측에서 낸 후보자가 당선될지 주목하고 있다. 송시영 올바른노조 위원장은 "조합원이 1,200명(에 불과한)인데 1,899표를 받은 것은 공사 내부에서도 조합다운 활동을 하는 곳이 올바른노조라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직원들도 변화의 바람에 탑승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현재 새로고침 협의회는 올바른노조를 포함, 부산교통공사 열린노조, 금호타이어 사무직노조 등 9개 노조, 약 7,000명 규모다. 새로고침 협의회는 이번 선거의 승리로 탄력을 받을 경우 양대 노총이 주력인 많은 업체들에게 MZ세대 노조 설립 바람이 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