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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가계신용이 3분기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급증한 영향이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특례보금자리론 취급, 통화정책 긴축 종료 기대감 등 복합적인 요인이 맞물리며 대출 수요가 급증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전문가들은 △지난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는 점 △국내 물가 상승세가 안정되지 않았다는 점 △부동산 시장이 회복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 등을 들어 한국은행(한은)이 차후 추가 금리 인상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가계신용 3분기 만에 상승 전환
22일 한은이 발표한 ‘2023년 2분기 가계신용(잠정)’에 따르면 올해 2분기(6월 말) 기준 가계신용(가계대출+판매신용) 잔액은 1,862조8,000원으로, 전 분기 대비 9조5,000억원 늘며 3분기 만에 상승 전환했다. 증가폭은 2021년 4분기(17조4,000억원) 이후 최대 수준이다.
단 전년 동기 대비 가계신용 잔액은 5조6,000억원(0.3%) 줄며 2분기 연속 감소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가계신용 증감률은 △지난해 2분기 3.2% △3분기 1.4% △4분기 0.2%를 기록하며 꾸준히 증가해왔으나, 올 1분기 (-0.5%)부터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가계신용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가계대출 잔액은 올 2분기 1,748조9,000억원으로 직전 분기 대비 10조1,000억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주담대 잔액은 1,031조2,000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14조1,000억원 증가,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꾸준히 몸집 불리는 가계대출·주담대
국내 가계대출은 작년 하반기부터 올 3월까지 감소세를 보였으나, 4월에 2조,3000억원 증가한 이후 5월(4조2,000억원), 6월(5조8,000억원), 7월(6조원)까지 4개월 연속으로 증가폭을 키워왔다. 특히 7월 가계대출 증가폭은 2021년 9월(6조4,000억원) 이후 1년 10개월 만에 최대 규모였다. 2분기 가계신용 증가폭이 눈에 띄게 커진 이유다.
눈에 띄는 것은 주택 구입 관련 자금 수요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주담대는 올해 3월부터 5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입주 물량 증가, 전세자금대출 증가 전환 등이 주담대 증가세를 견인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 주택 매매거래량은 지난해 4분기 9만1,000호, 올 1분기 11만9,000호, 2분기 15만5,000호로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대출 급증으로 인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연령 특성상 직업이 없거나 고용이 불안한 만 19세 이하·20대가 주담대를 실행한 이후 제때 상환하지 못해 궁지에 몰리는 양상이다. 1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양경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이 19개 은행(시중·지방·인터넷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연령별 주택담보대출 연체율 현황’ 자료에 따르면, 2분기 말 기준 만 20대 이하 연령층의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0.44%로 집계됐다. 이 중 19세 이하의 주담대 연체율은 20.0%에 달했다.
한은 금리 인상 가능성 커졌다
전문가들은 유동성이 늘고 부동산 시장이 꿈틀대기 시작한 만큼 한은의 추가 금리 인상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지난달 단행된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 역시 국내 기준금리 인상을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는 7월 정례회의 끝에 만장일치로 기준 금리를 0.25%p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의 기준금리는 5.25~5.50% 구간까지 올랐다.
미국은 작년 3월부터 15개월 동안 쉼 없이 금리를 인상해 왔으며, 지난 6월 금리를 동결한 뒤 한 달 만에 긴축 행보를 재개했다. 긴축 강행 원인은 다름 아닌 인플레이션이다. 연준은 "지금 미국의 경제 성장은 완만하고 일자리 증가세는 견고하고 실업률은 낮다"면서도 "물가 상승 수준은 여전히 높다"고 평가했다. 6월 들어 물가상승세가 눈에 띄게 완만해졌지만, 아직 목표치를 달성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으로 한국과 미국의 금리 차이는 최대 2.00%까지 벌어졌다. 역대 최대 수준이다. 일반적으로 한국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낮아지게 되면 미국 자산의 가치가 상승하고, 우리나라 자산 가치는 평가절하된다. 이에 따라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거나 우리나라에 유입된 외국인 투자 자금이 유출될 위험이 있다. 한국은행은 미국과의 금리 차이가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 아니라고 부정해 왔으나, 이어지는 긴축 압박을 무시하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국내 물가가 아직 안정기에 접어들지 못한 가운데, 대출 증가로 유동성이 풀리고 부동산 시장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13일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상당 기간 긴축 기조를 이어 나가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고 있다"며 "금융통화위원회 6명 모두 3.75%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