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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FDI 유입 확대 속 홍콩 경유지 역할 약화 실질 소유자·제재 규제 강화에 따른 신뢰도 하락 싱가포르 등지로의 구조 다변화 필요성 부상
본 기사는 The Economy 연구팀의 The Economy Research 기고를 번역한 기사입니다. 본 기고 시리즈는 글로벌 유수 연구 기관의 최근 연구 결과, 경제 분석, 정책 제안 등을 평범한 언어로 풀어내 일반 독자들에게 친근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기고자의 해석과 논평이 추가된 만큼,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원문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023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ASEAN)은 전 세계 외국인직접투자(FDI) 흐름이 둔화되는 가운데서도 사상 최대 규모인 2,300억 달러(약 309조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 추세는 2025년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과거 이 투자 흐름의 자동 경유지였던 홍콩은 이제 곳곳에서 규제 장벽에 부딪히고 있다. 싱가포르는 실질 소유자 정보 제출 기한을 2영업일 이내로 단축했고, 말레이시아는 법인의 최종 소유자와 지배 구조에 대한 공개 의무를 강화했으며, 태국은 명의만 빌려 법인을 등록하는 형태의 간접 소유 구조에 대한 단속을 확대하고 있다. 여기에 2025년 1월 발효된 미국의 대중국 해외투자 규제까지 더해지며, “홍콩은 다르다”라는 차별화된 이미지는 오히려 규제 리스크로 간주되고 있다.
아세안 규제당국은 지정학적 구도보다 실질 소유 구조에 집중하고 있다. 이들은 이제 홍콩 등록 법인의 최종 소유자와 기술·자산 지배 구조를 직접적으로 파악하고자 하며, 홍콩을 단순한 중립적 교량이 아닌, 중국과 밀접히 연결된 금융 거점으로 재분류하고 있다. 이 같은 인식 변화는 홍콩이 여전히 중국 본토를 향한 자본 이동 경로로는 기능하지만, 동남아 시장을 겨냥한 출발점으로서의 위상은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글로벌 허브’가 아닌 ‘중국의 2차 플랫폼’
과거에는 홍콩이 예전처럼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지가 주요 관심사였다. 그러나 이제 핵심 쟁점은 홍콩이 어떤 성격의 도시로 받아들여지고 있는가다. 최근 동남아에서는 홍콩을 독립된 금융허브가 아닌, 중국 본토와 긴밀히 연결된 보조 플랫폼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국가보안법”의 강화와 데이터 통제, 정보 자유 제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서구권 기업과 규제당국은 홍콩의 법적 환경이 중국 본토와 실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동시에 아세안 국가들도 자금세탁방지 및 투명성 강화를 통해, 단순히 홍콩에 등록됐다는 이유만으로 규제망에서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 결과, 과거에는 무난하게 허용되던 홍콩 경유 거래가 점점 더 높은 문턱에 직면하고 있다.
지표가 보여주는 변화
겉으로 보이는 수치만 보면 홍콩은 여전히 활기를 유지하는 듯 보인다. 2024년에는 기업공개(Initial Public Offering, IPO) 유치 규모 기준 세계 4대 시장에 포함됐고, 총 830억 홍콩달러(약 14조4,000억원)를 조달했다. 2025년 상반기 IPO 자금 조달액은 지난 해 같은 기간보다 약 7배로 증가했으며, 같은 기간 GDP 성장률은 3.1%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 같은 회복은 대부분 중국 본토 기업과 자금에 기반하고 있다. 상장과 유동성 역시 내수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글로벌 자본이나 규제 민감 거래에서는 여전히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예컨대 “국가보안법” 제23조가 광범위하게 적용되면서, 데이터 프라이버시와 정치 리스크에 민감한 기관들은 법률 자문과 거래 구조를 재검토하고 있다.
반면 싱가포르는 단기간 내 2,000개 이상의 패밀리오피스(Single Family Office, SFO)를 유치하며, 자산관리 분야에서 신뢰성을 높이고 있다. 금융기관 대상 제재 기준 강화, 실질 소유자 정보 등록 의무화 등의 제도적 기반이 결합되면서, 동남아 지역에서 홍콩을 거치지 않고, 중국 본토 자회사 설립이나 싱가포르 기반 투자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다.

주: 연도(X축), FDI 유입액(Y축)
실무와 정책 설계를 위한 기준
홍콩은 더 이상 범용적인 국제 허브가 아니다. 중국과 관련된 사업에 특화된 플랫폼으로 재정의돼야 한다. 특히 미국의 수출 통제 대상이거나 민감 기술이 포함된 자금 흐름은 홍콩을 경유하지 않는 구조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 반도체, 양자 기술 등은 미국의 투자 제한 및 수출 통제 규정을 직접적으로 적용받는 분야이므로 더욱 그러하다.
실무자들은 계약서와 파트너십 문서에 실질 소유자 확인 조항과 데이터 처리 위치 명시를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 아세안 지역의 금융기관과 정부 기관은 이 조항을 기본 요건으로 요구하고 있다. 정책 입안자들 역시 기술 이전, 데이터 이전, 민감 거래에 특화된 규제 준수 문서와 가이드라인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대응의 단기 목적은 규제 변화 속에서도 사업 연속성을 확보하는 데 있고, 중장기적으로는 다변화된 구조를 통해 중국과 서방 양측으로부터 더 나은 협상 조건을 끌어내는 데 있다.
홍콩의 회복 주장에 대한 검토
홍콩이 회복 중이라는 주장에는 근거가 있다. IPO 반등, 패밀리오피스 증가, 자금 유입 확대 등은 실질적 지표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중국 기업과 중국 자금이 이끄는 흐름으로, 홍콩의 기능이 독립 금융허브가 아니라 중국의 외부 금융 출구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미국과의 이해관계가 얽힌 기술 협력이나 데이터 이전 프로젝트에서는” 국가보안법” 제23조가 법적 불확실성을 키운다. 아세안 규제당국도 실질 소유자 등록제와 간접 소유 구조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며, 홍콩 경유 거래의 위험 노출을 더 쉽게 포착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컴플라이언스 부서들은 미국 해외투자 규제에 대응해 실사 기준을 상향 조정하고 있다.
결국 문제는 자본 유입 여부가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 구조를 형성할 수 있는지다. 홍콩은 중국 중심 프로젝트에는 여전히 활용도가 있지만, 미국의 규제망을 우회하거나 북미와의 연결을 피하려는 구조에는 부적합하다.

주: 연도(X축), IPO 조달 금액(Y축)
새로운 분산형 운영 모델
홍콩이 중국 기업을 위한 보조 허브로 재편된 현재, 민감한 자금 흐름이나 규제 노출이 있는 사업에서는 단일 거점 전략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기능에 따라 거점을 분산하는 운영 모델이 필요하다.
예컨대 아세안 시장을 겨냥한 조달, 달러 결제, 데이터 저장에는 싱가포르가 적합하다. 이곳은 실질 소유자 정보와 제재 기준이 명확해 규제 리스크를 줄이고 심사 절차도 간소화할 수 있다. 반면, 인민폐 결제나 본토 시장 연계가 핵심인 경우에는 홍콩 또는 중국 본토를 통한 경로가 여전히 유효하다. 한편, 수출 통제 회피나 OECD식 데이터 규범을 우선시하는 프로젝트에는 도쿄, 시드니, 두바이와 같은 제3 지역 거점이 전략적 유연성을 제공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단순한 중복이 아니라 불확실한 환경에서도 운영을 지속하기 위한 실용적 분산 전략이다. 계약 체결 시 관할권을 다양하게 설정하거나, 결제 및 인수 경로를 이중화하고, 실질 소유자 및 데이터 관련 정보를 문서에 명시하는 절차가 이에 포함된다. 과도한 지역 의존을 피하고, 각 기능에 적합한 경로를 분산 배치하는 것이 앞으로의 운영 안정성과 정책 대응력을 높이는 핵심이 될 것이다.
감사의 시대를 위한 설계 원칙
2023년 아세안은 2,300억 달러(약 309조원)의 FDI를 유치했다. 그러나 더 주목해야 할 변화는, 홍콩의 브랜드보다 규제 환경이 훨씬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정책 환경에서는 과거의 관성으로 운영을 지속할 수 없다.
홍콩은 중국 본토와 연계된 경로로 유지하되, 아세안 대상 거래는 싱가포르 또는 규범 기반의 다른 허브에 분산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제재, 데이터, 실질 소유자 관련 계약 조항도 이중화 설계를 기본값으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지정학적 긴장이 완화되더라도 끊기지 않고, 악화되더라도 멈추지 않는다. 핵심은 철수가 아니라 구조의 재설계다. 변화가 빠른 환경일수록 구조적 복원력이 경쟁력이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지역 선택이 아니라 설계 원칙이다. ‘감사 시대’에 적합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다음 단계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From Awe to Audit: Why Hong Kong’s ‘Gateway’ Narrative No Longer Works for Southeast Asia’s Learning Economy | The Economy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2차 저작물의 저작권은 The Economy Research를 운영 중인 The Gordon Institute of Artificial Intelligence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