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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플랫폼 무신사, IPO 본격 돌입 목표 기업가치로 '10조' 설정 상장 밸류 괴리에 투자 손실 우려

무신사가 조만간 기업공개(IPO) 주관사 선정에 나설 예정이지만 발행사의 무리한 몸값 주장에 증권사 상당수가 거래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무신사의 성장에 자본을 댄 재무적 투자자(FI)들이 원하는 10조원 이상의 기업가치 평가방식은 시장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이란 판단이 지배적이다.
RFP 배포 임박, 밸류 눈높이 논란
5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무신사는 IPO 적정성 검토를 마치고 이르면 이번 주 내로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발송할 예정이다. 그간 추측만 무성하던 무신사의 IPO 계획은 지난달 열린 '글로벌 파트너스 데이' 행사에서 공식화됐다. 당시 박준모 무신사 대표는 "글로벌 사업 진출을 위해서는 물류 인프라 등에서 상당히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며 "IPO를 중요한 재원 확보 방안으로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무신사는 국내 이커머스 플랫폼 가운데 처음으로 상장에 도전하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시장 분위기는 달아오르는 기대감과는 커다란 온도 차이를 보인다. 특히 투자자 주주단의 밸류 기대가 높았던 SK엔무브나 케이뱅크 IPO가 상장 직전에 무산된 전례가 있어 주관업무를 준비하려는 IB들의 신중한 접근 방식이 감지된다. 이런 맥락에서 국내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무신사는 주주 일부가 10조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주장한다"며 "시장의 눈높이와 맞지 않다고 판단해 빅딜이지만 크게 (주관 업무 수임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무신사 IPO는 조단위 대형 거래로 다양한 동종비교군이 거론된다. 실리콘투(22.08)와 신세계인터내셔날(17.15), F&F(7.76), LF(7.17), 에이유브랜즈(26.89), 젝시믹스(9.50), 한섬(9.68), 달바글로벌(140.50), 에이피알(47.65), 아모레퍼시픽(14.45), 한국콜마(22.56) 등이다. 이들 기업의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은 약 28.96배로, 무신사 밸류에이션 산정 기준으로 활용할 수 있다.
무신사의 올해 1분기 당기순이익인 157억원을 연환산해 630억원으로 반영할 경우, 28.96배를 곱한 기업가치는 2조원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2023년 이미 3조5,000억원의 밸류에이션을 시장에서 인정받았지만 증권신고서 제출 시에는 더 투명한 공모가 산정이 요구된다. 앞서 박 대표는 2030년까지 글로벌 거래액 3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는데, 이 매출 목표가 실현되고 현재와 유사한 이익률을 유지한다고 가정해야 기업가치 5조원 이상을 꿈꿔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사업성이 뛰어나고 성장세가 가파르다 해도 공모가 산정을 위한 멀티플(PER 배수)로 30배 이상을 적용한 사례는 드물다. 실제로 현재 PER이 140배를 웃도는 달바글로벌도 상장예비심사 신청 당시 적용한 PER 배수는 19.93배였다. 물론 증권신고서 제출 시에는 20.99배로 소폭 조정됐지만 그마저도 고밸류 논란을 불러일으킬 뻔했다. 무신사가 공모가 산정에서 20배 안팎의 멀티플을 적용한다면 최대 가치는 1조원 중반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상장 46곳 중 16곳 공모가 하회
전문가들은 이러한 몸값 부풀리기가 IPO 시장의 신뢰 자체를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시장 논리가 무시된 공모가는 결국 상장 후 하락이라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되며, 이는 기업, 투자자, 기관 모두에 손실을 남긴다. 그럼에도 IPO 기업의 공모가 적절성 논란은 해마다 반복된다. 최근에는 대어급 IPO 기업들이 수요예측의 벽을 넘지 못해 상장을 잇달아 철회했고, 올해 증시에 입성한 일부 새내기주들은 공모가를 밑도는 주가 흐름을 보이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스팩·코넥스 제외) 상장한 46개 기업 중 16곳(34.8%)의 주가가 현재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 상장 당일 종가가 공모가보다 낮았던 기업은 13개다. 이 중 9곳은 현재도 공모가 이하다. 공모가 이하로 거래 중인 9개사는 엔알비, 대신밸류리츠, 쎄크, 더즌, 심플랫폼, 아이지넷, 와이즈넛, 데이원컴퍼니, 미트박스 등이다.
한국투자증권이 주관한 보험 서비스 애플리케이션 아이지넷의 경우 올해 상장한 종목 중 가장 큰 하락 폭을 기록했다. 공모가는 7,000원이었지만, 상장 첫날 4,335원으로 마감했다. 이에 따라 시총도 1,276억원에서 790억원으로 급감했다. 7월 말 기준 주가는 2,805원까지 하락해 시총은 495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7월 들어 이재명 정부의 코스피 5,000 공약 등 증시 활성화 기조 속에 상장 기업 수가 늘었지만, 성적은 엇갈렸다. 7월 한 달간 총 8곳이 IPO를 통해 증시에 입성했으나, 이 중 대신밸류리츠와 엔알비는 상장 당일 종가가 공모가 대비 각각 10.62%, 26.05% 낮았다. 7월 말 기준 낙폭은 각각 13.38%, 45.43%로 커졌다. 시장에선 이런 흐름을 두고 공모가 뻥튀기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기업 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공모가를 책정해 투자자 손실로 이어지는 구조라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상장 기업 중 상장 첫날 종가가 공모가보다 낮은 사례는 전체의 28%에 달한다.
"주관사 자율에 맡겨 한계 여전"
이 같은 일이 해마다 반복되자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5월 IPO 주관 업무 개선 방안을 통해 제도 개선에 나섰다. 2023년 파두 사태에서 불거진 중요 위험요인 기재누락과 공모가 고평가 등 일련의 논란으로 주관사 역량과 책임성에 대한 시장 신뢰가 하락한 데 따른 조치다. 금감원은 △주관사의 독립성 제고 △기업실사의 책임성 강화 △공모가 산정의 합리성 제고 △충실한 공시 △내부통제 강화 등 5가지를 시장 신뢰 회복을 위한 개선방안으로 제시했다.
공모가 산정과 관련한 기준도 마련했다. 지금까지는 주관사마다 일관된 기준이 없어 담당 팀별로 평가 기준에 차이가 있었고, 이 때문에 공모가를 산정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추정치를 사용하거나 부적절한 비교기업을 선정하는 등 합리성과 일관성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금융당국은 앞으로 금융투자협회가 'IPO 공모가격 결정기준 및 절차'를 마련하고 각 증권사에 배포하도록 했다. 이를 바탕으로 각 증권사는 내부 기준을 마련해야 하고, 예외를 적용할 때는 내부 승인과 문서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다만 업계에선 제도 개선 방향이 근본적인 해법이 되기 어렵다고 본다. 주관사가 자체 기준을 정하는 방식이어서 외부의 검증이나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IPO 주관 업무 개선안이 있었지만, 이는 여전히 주관사에 의한 결정"이라며 "IPO 주관은 주관사가 맡되 가치 평가는 외부 기관에 맡기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