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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전쟁 격화 속 경기침체 우려 고조 미국, 9일부터 중국에 104% 관세 부과 뚝뚝 떨어지는 국제유가, WTI 59.58달러

글로벌 관세전쟁 격화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가 현실화하면서 국제유가가 4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특히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배럴당 60달러 선마저 무너졌다. 미국이 중국에 추가로 50%의 관세를 더 얹으면서 미·중 무역전쟁이 격해지자 투자자들이 연일 원유를 던지는 양상이다.
배럴당 60달러 무너져
8일(이하 현지시간) ICE선물거래소에서 6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은 배럴당 62.82달러에 마감했다. 전 거래일보다 1.39달러(−2.16%) 하락한 수치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도 배럴당 59.10달러로 마감하며 전장 대비 1.34달러(−2.22%) 떨어졌다. WTI 가격이 60달러 아래로 내려간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였던 2021년 4월 이후 처음이다.
국제유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관세 부과 계획을 발표한 지난 2일 이후 4거래일 연속 하락 중이다. 상호관세 조치가 보복 관세를 유발하고, 그로 인해 세계 경기 침체와 원유 수요 감소가 현실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가 하락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날 중국은 “미국이 고집대로 한다면 끝까지 맞설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하며 무역전쟁의 긴장감을 한층 끌어올렸다. 같은 날 백악관 캐롤라인 레빗 대변인은 “중국을 대상으로 한 총 104% 관세가 9일 0시 1분(미 동부시각 기준)부터 발효된다”고 밝히며 시장의 관세 완화 기대도 일시에 사그라들었다. 이는 앞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산 수입품에 적용한 관세 54%에 50%를 추가한 것이다.
관세 충격에 원자재 값도 급락, 산업용 금속 하락폭↑
관세 전쟁이 미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공포 속에서 그간 안전 자산으로 각광받던 금 가격도 꺾이기 시작했다. 8일 뉴욕상업거래소(COMEX)에서 금 선물은 일주일 전보다 3.77% 떨어진 트로이온스당 3,025.94달러에 거래됐다. 같은 기간 은 선물은 12.41% 떨어져 온스당 30.005달러에 거래됐다.
지난 2일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조치를 발표하면서 주식 시장 쇼크가 이어지자 원자재 시장에서도 귀금속 매도세가 이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ING는 “글로벌 투자자들이 다른 곳에서의 손실을 메우기 위해 다른 자산들과 더불어 귀금속을 매도했다”며 “전통적 안전자산인 금조차 이달 초에 도달했던 사상 최고치에서 하락했다”고 밝혔다.
특히 차입 투자자들은 2020년 팬데믹 이후 최대 규모의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 압박에 직면해 귀금속을 매도하고 있다. 은의 경우 금과 달리 전기전자·태양광·의료 부문에서 산업용 금속으로도 쓰이고 있어 낙폭이 더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ING는 “글로벌 무역 전쟁은 둔화되는 글로벌 성장의 맥락에서 산업용 금속에 부정적”이라며 “미국과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이 산업용 금속의 가장 큰 소비국”이라고 지적했다.

2008년 금융위기 후 최악 폭락장, “경제 핵겨울 온다”
이 같은 흐름은 수출로 먹고사는 아시아 국가들엔 큰 타격이다. 실제 지난 7일 아시아 증시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최악 폭락장을 맞았다. 한국 코스피는 개장 초반 5% 넘게 급락해 5분간 프로그램 매매가 정지되는 사이드카를 발동했다. 종일 투매에 시달린 끝에 코스피는 직전 거래일보다 5.57%, 코스닥은 5.25% 하락 마감했다. 일본 닛케이평균도 7.83% 급락한 채 거래를 마쳤다.
중화권 증시는 더 큰 타격을 입었다. 지난주 목·금 청명절 연휴로 거래가 없다가 이날 문을 연 탓에 충격을 한꺼번에 받았다. 대만 자취안지수는 9.7% 폭락했고 홍콩 항셍지수는 13.22%, 중국 본토 상하이종합지수도 7.34% 떨어졌다. 이어 개장한 유럽 주요국 증시는 장중 3~6%대 하락세를 보였고, 뉴욕 증시도 연이어 급락세로 출발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개장 초반 4%대 하락하며 5,000선이 무너졌고, 기술주 위주의 나스닥지수 역시 4%대 하락에 1만5,000선이 깨졌다.
세계 증시가 몸살을 앓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그는 6일 플로리다에서 워싱턴으로 돌아가던 길에 전용기에서 기자들에게 “아무것도 떨어지길 바라지 않지만, 때로는 약을 먹어야 뭔가를 고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시장이 무너지고 있어도 미국의 무역 적자를 줄이기 위해 관세 전쟁을 계속해 나갈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이에 월가의 거물들과 경제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주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세계적 투자 전략가 제러미 시겔 미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관세 정책이) 1930년대 대공황을 악화시킨 ‘스무트-홀리 관세법’보다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미국 역사상 약 95년 만에 가장 큰 정책 실수가 나왔다. 관세 여파로 당분간 시장에 폭풍우가 닥칠 것”이라고 했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공개 지지했던 헤지펀드계 거물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캐피털 회장도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서 “전 세계를 상대로 경제 핵전쟁(economic nuclear war)을 벌인다면 투자는 멎을 것이고, 소비자는 지갑을 닫을 것이고, 미국의 평판은 심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 기업 리더들에게서 신뢰를 잃고 있다. 우리가 이러려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투표한 것은 아니다”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부과를 연기해) 바로잡지 않으면 우리는 경제적 핵겨울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