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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D램 시장 점유율 36%
2021년 시작된 HBM 개발 노력 결실
삼성전자 ‘점유율 회복-실적 개선’ 과제

삼성전자가 30년 넘게 지켜온 ‘글로벌 D램 최강자’ 타이틀을 내려놨다. 최근 수년 사이 인공지능(AI)의 가파른 발전에 적응하지 못한 가운데, 경쟁사 SK하이닉스에 시장 1위 자리를 내주면서다. 업계는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보다 상대적으로 기술적 우위에 선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앞세워 D램 시장 전반에서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을지 주목하는 모습이다.
HBM 리더십 굳건히 하겠다는 SK하이닉스
9일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D램 시장에서 SK하이닉스는 36%의 점유율로 1위에 올라섰다. 2위 삼성전자(34%)를 2%p 앞지른 성적이다. 각종 시장조사업체 집계에서 삼성전자가 D램 1위 자리를 양보한 것은 1992년 이후 처음이다. 미국 기업인 마이크론은 25%의 점유율로 삼성전자의 뒤를 이었다.
SK하이닉스의 분전은 HBM 부문에서 70%에 달하는 시장 점유율에서 기인했다는 분석이다. 최정구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책임연구원은 “HBM 수요가 큰 시장에서 D램을 성공적으로 공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이정표”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가 주력인 범용(레거시) 메모리 반도체의 수요 침체와 중국발 저가 물량 공세로 부진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 같은 구도가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세 등 미국발 무역 충격이라는 변수가 있긴 하지만, AI 수요가 탄탄한 만큼 그 충격은 크지 않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현재 SK하이닉스는 주력인 HBM3E(5세대) 12단 제품을 엔비디아를 비롯한 주요 고객사에 공급 중이며, 후속 제품인 HBM4(6세대) 12단 제품도 당초 계획보다 앞당겨 샘플을 공급한 상태다. 연내 해당 제품의 양산에 돌입하고, HBM4E 개발에도 속도를 내 HBM 리더십을 굳건히 한다는 게 SK하이닉스의 계획이다.
반대로 삼성전자가 HBM을 제외한 레거시 반도체에서 강세를 보이는 만큼 각축전이 예상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메모리 수요가 HBM에 집중되면서 D램과 낸드 일부 제품의 가격 인상이 발생하고, 메모리 업황이 회복 조심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최근 미국 마이크론은 고객사에 D램 일부 제품의 가격 인상 계획을 통보하기도 했다. 업황 개선을 등에 업은 기업들로선 실적 개선 또한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최신형 HBM 개발에 속도를 내며 분위기 반전을 앞당기겠다는 입장이다.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은 지난달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 참석해 “이르면 2분기, 늦어도 하반기부터는 HBM3E 12단 제품 생산을 고객사 수요에 맞춰 확대할 계획”이라며 “HBM4와 커스텀(맞춤형) HBM4 같은 차세대 HBM 개발도 차질 없이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개발-양산-노하우 축적’ 선순환 구축
일반적으로 D램 시장은 선단 공정 기반 D램 설계를 개발하고, 목표 수율을 끌어올린 뒤 양산에 돌입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1a에서 1b, 1c로 세대를 거듭할수록 성능과 전력효율은 증대되고 칩 사이즈는 축소하는 게 핵심이다. 이 때문에 D램 시장은 기존 생산시설에서 공정을 전환하는 것만으로도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SK하이닉스는 일단 1c 경쟁에서 승기를 쥔 것으로 평가받는다. 단순히 경쟁사보다 해당 제품의 설계를 빨리 완성한 데서 나아가 목표 수율을 훌쩍 넘겨 양산 단계에 가장 근접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가 1c 공정으로 찍어낸 D램은 직전 세대보다 성능은 28%, 전력효율은 9% 이상 개선된 것으로 전해진다. 1a 공정 경쟁이 본격화한 지난 2021년부터 엔비디아와 HBM3 공급 협력을 염두에 두고 개발을 이어간 것이 주효했다.
1a D램의 성공적 설계는 HBM3 시장 독점으로 이어졌고, 몇 세대를 거듭 독점 공급 덕에 노하우도 톡톡히 쌓였다. 여기에 엔비디아가 내년에 수급할 HBM4 16단 제품까지는 1b 공정이 적용되는 만큼 SK하이닉스로선 최소 2~3년 수주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다. 시계가 훤하게 뚫려 있다. 최선단 공정인 1c D램에서도 SK하이닉스가 가장 앞설 수밖에 없는 판이 만들어진 셈이다.
일각에서 삼성전자가 올해 파운드리(수탁생산) 투자를 절반으로 줄일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다. D램에서의 부진을 초기에 바로잡지 못하면, 한두 해 투자를 이어가더라도 중장기 성장을 기약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당장 1년 뒤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파운드리에 더 많은 돈을 투입한다 해도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게 삼성전자 안팎의 일관된 견해다.
중국산 물량 공세에 점유율도 가격도 ‘위태’
여기에 최근에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업체들까지 D램 시장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며 삼성전자의 앞날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옴디아에 의하면 중국 창신메모리(CXMT)의 올해 D램 웨이퍼 생산량(전망치)은 237만 장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54% 늘었다. 삼성전자의 올해 D램 웨이퍼 투입량은 789만 장으로 전년 대비 6% 증가에 그쳤으며, SK하이닉스는 지난해보다 15% 늘어난 592만 장의 웨이퍼를 투입한다.
CXMT의 폭발적인 생산량 증가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3강 구도’에서 구축된 가격 방어선 또한 무너질 전망이다. 트렌드포스는 올 1분기에만 D램 평균거래가격(ASP)이 8~13% 하락할 것으로 예측했으며, IM증권은 적어도 내년이 돼야 가격 정상화가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송명섭 IM증권 연구원은 “지난 20년가량의 역사를 되짚어 봤을 때, 반도체 사이클의 지속 기간은 1.5~2년이었다”며 “(범용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이 올해 말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