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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파이낸셜] 유럽, 초 단위 결제 시대 금융 안정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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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months 4 wee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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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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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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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에 대해 사실에 근거한 분석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전달에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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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금융시스템, 실시간 결제 제도 도입 예정
자산 구조와 헤지의 다양성, 위험 확산 완화에 기여
무보험 예금 대응 위한 안전망과 실시간 유동성 필요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3년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은 이틀 만에 전체 자금 기반의 약 3분의 2를 잃었다. 하루 만에 420억 달러(약 55조원)가 인출됐고, 다음 날 1,000억 달러(약 130조원)가 추가로 대기했다. 과거 금융사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던 규모의 뱅크런이 스마트폰 클릭 몇 번으로 발생한 것이다.

유럽은 이러한 인출 속도를 제도적으로 공식화하고 있다. 2025년부터 유로존 결제 서비스 제공자는 24시간 365일, 10초 안에 유로 즉시 이체를 처리해야 한다. 수수료는 기존 이체와 동일하고, 수취인 이름 확인 절차도 도입된다. 이는 상거래 활성화와 금융 포용 확대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금융 안정성에는 새로운 과제를 남긴다. 결제 속도를 늦출 수 없다면, 이에 상응하는 유동성과 안전망을 갖추는 것이 핵심 과제다.

사진=ChatGPT

속도과 예금 행태의 변화

뱅크런은 더 이상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결제 인프라가 정하는 속도로 전개되는 과정이다. 모바일 뱅킹, 즉시결제, 알고리즘을 통한 정보 확산이 자금 유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2023년 자금 유출 속도가 과거보다 두세 배 빨랐으며, 일부 은행은 하루 만에 예금의 20~30%를 잃었다고 분석했다. 2023년 크레디트스위스(Credit Suisse) 사태 역시 같은 맥락이다. 스위스 당국은 이를 “전례 없는 예금 이탈”로 규정했는데 이는 금융 충격의 본질이 아니라 거래 구조 변화의 결과라는 평가다.

예금 행태 역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유로존 비현금 결제 건수는 2024년 하반기 776억 건에 달했고, 카드와 계좌이체가 주를 이뤘다. 소셜미디어도 자금 흐름에 영향을 미친다. SVB 사태 당시 트위터 노출도가 높은 은행일수록 주가 하락 폭이 컸다. 다만 유럽중앙은행(ECB)의 연구에 따르면 모바일 뱅킹은 평시에는 변동성을 높이지 않는다. 문제는 특정 은행 관련 정보가 잘못 확산될 때 예금 이탈 속도가 급격히 빨라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속도를 제한하기보다는 신뢰할 수 있는 유동성 안전망과 정보 전달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은행 구조의 다양성과 취약성

유로존 은행 139곳의 2022~2023년 데이터를 활용한 분석에 따르면, 금리 인상은 장기 자산의 가치를 떨어뜨리지만 예금 금리가 늦게 반영되면서 은행의 예금 조달력 가치는 높아졌다. 2023년 9월 기준 만기 보유 대출 채권의 평가손실은 평균 자기자본의 30%에 달했으나, 금리스왑과 예금 조달력이 이 중 약 46%를 상쇄했다. 일부 은행은 국가별 모기지 구조 차이 덕분에 순자산가치가 오히려 개선되기도 했다.

이처럼 자산 만기 구조, 자금 조달 방식, 헤지 전략의 다양성은 손실을 줄이고 충격 확산을 차단하는 장치로 작동했다. 은행마다 재무구조가 달라 한 곳의 부실이 곧바로 전체로 번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은행별 자산 평가손실 헤지 수단과 비중(단위: 곳)
주: 자산 평가손실 중 헤지된 비중(X축), 각 구간별 헤지를 수행한 은행 수(Y축)/저원가성 예금(파란색), 금리 스왑 파생상품(노란색), 합계 (주황색)

그러나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다. 같은 분석에 따르면 무보험 예금의 5%만 유출돼도 일부 은행은 시가 평가 기준으로 지급불능 상태에 빠졌다. 10%가 빠져나가면 20곳 이상이 같은 상황에 직면했다. 초 단위 자금 이동이 가능한 환경에서는 은행이 담보를 동원하거나 자금을 조달하기 전에 이미 유동성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유럽연합의 예금보험 제도는 1인당 10만 유로(약 1억4,500만원)까지 보장하지만, 무보험·집중 예금은 여전히 구조적 취약 요인으로 남아 있다. 따라서 구조적 다양성은 시간을 벌어주고 충격 확산을 제한할 수 있지만, 충분하지 않다. 확실하고 신뢰할 수 있는 유동성 안전망, 그리고 공황 상황과 실제 지급불능을 구분하는 명확한 매뉴얼이 필요하다.

시가평가 순자산 변동과 무보험 예금 인출 리스크(단위: %)
주: 시가평가 순자산의 변동률(X축), 지급불능 상태로 만들 수 있는 무보험 예금 인출 비율(Y축)/단기(파랑 원), 중기(주황 원), 장기(초록 원), 기업·다각화 대출 은행(십자형), 소매·소비자 신용 대출기관(사각형), 글로벌 대형 은행(G-SIBs) 및 투자은행(삼각형)

국경을 넘는 디지털 자금 위험

국내 제도와 안전망만으로는 금융 불안을 모두 차단하기 어렵다. 스테이블코인과 같은 디지털 자금 흐름은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새로운 변수로 작용한다.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에 따르면 2024년 아르헨티나의 암호화폐 거래 중 약 62%가 스테이블코인이었고, 로이터는 이 현상이 신흥국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럽은 미카(MiCA) 규제를 통해 발행사에 자본과 준비금 요건을 적용했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달러 연동 토큰이 국내 결제망을 우회해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가 도입되면 속도는 동일하더라도 규제 틀 안에서 관리가 가능하다.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기존 방어 장치로는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해외 발행 토큰은 국내 결제망보다 빠르게 움직여 은행의 유동성 방어를 무력화할 수 있고, 국가별 규제 차이로 인해 대체 수단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있다. 위기 시 해외 연동 토큰 사용이 확대되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효과도 약화될 수 있으며, 자금은 초 단위로 국경을 넘어 충격을 다른 지역으로 확산시킬 수 있다.

속도에 맞는 대응 체계

즉시결제 시대에는 기존 규제와 절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은행이 몇 분 안에 담보를 동원하고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지 감독 당국이 직접 확인해야 하며, 근무시간 외 상황도 불시에 점검해야 한다.

정보 전달 절차는 사전에 정립돼야 한다. 소문 대응, 긴급 자금 창구 이용, 보증 제공 등 핵심 메시지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알릴지 미리 합의해 두어야 한다. 불명확한 대응은 시장 불안을 키울 수 있다.

자산·부채 구조의 다양성도 감독 체계에 반영돼야 한다. 동일한 장기 자산에 집중되지 않도록 하고, 예금 기반과 금리 위험을 결합된 위험으로 관리해야 한다. 예금이 소매 위주로 분산돼 있는지, 파생상품 헤지가 충분히 다변화돼 있는지도 감독 지표로 삼아야 한다.

또한 공황 상황과 실제 지급불능을 신속히 구분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2023년 위기는 낙인 우려, 담보 이동성 부족, 지원 지연이라는 문제를 드러냈다. 미국은 명목가 대출 프로그램을 통해 매각 압박을 완화했고, 유럽은 중앙은행 신용공여와 각국 체계를 활용했다. 공통된 교훈은 유동성 지원이 불안 확산보다 먼저 작동해야 한다는 점이다.

금융 안전망 필요

유럽은 초 단위 결제를 제도화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상거래와 금융포용에는 긍정적이지만, 금융 안정성을 위해서는 동일한 속도의 대응 체계가 필수적이다. 예금 조달 구조와 금리 위험을 감독의 핵심 축으로 삼고, 공적 안전망을 사전에 확립해 실제 훈련으로 검증해야 한다. 금융 안정은 속도를 늦추는 데 달려 있지 않다. 초 단위 결제 시대에 안전을 보장하려면 유동성과 정보 역시 같은 속도로 움직여야 한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he 10-Second Bank Run: Why Payment Speed and Portfolio Diversity Must Be Managed Together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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