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무효’ 판결에 美국채시장 ‘대혼란’, 트럼프 “관세 없애면 제3국 전락” 상고심 요청
입력
수정
트럼프 행정부 관세, 연방법원서 제동 관세 환급 가능성에 재정 악화 우려 고조 트럼프 행정부, 교역 상대국들과 ‘합의 불발’ 우려 피력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대부분을 위법하다고 최근 판결한 가운데, 이미 걷은 관세를 미국 정부가 환급해야 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관세를 환급할 경우 재정적자가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미국 국채 금리가 다시 급등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로부터 위임받은 다른 법적 수단을 다수 확보하고 있는 만큼 ‘관세 전쟁’이 쉽게 꺾이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재정 불안 우려 속 美 30년물 국채 금리 5% 육박
2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전 장보다 5bp(1bp는 0.01%포인트) 오른 연 4.281%를 기록했다. 30년물 국채 금리는 5bp 이상 올라 연 4.977%까지 상승했다. 2년물 국채 금리도 3bp 오른 연 3.658%를 기록했다. 이날 장중 고점 기준으로 30년물 국채금리는 연 4.97%를 돌파하며 7월 말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고, 10년물은 지난달 27일 이후 가장 높은 4.279%에 도달했다.
이번 국채 금리 급등은 지난달 나온 법원 판결의 여파다. 미 워싱턴DC 연방순회항소법원은 지난달 29일 7대 4 의견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해 전 세계에 부과한 상호관세 조치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IEEPA는 국가 안보상 ‘이례적이고 특별한 위협’이 발생할 경우 대통령이 상대국에 대해 경제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이다. 1977년 제정됐으며 앞서 미국이 이라크, 러시아, 북한 등을 제재하는 데 활용된 바 있다.
이번 판결에 따라 관세 환급 가능성이 불거지면서 재정 부담 확대 우려가 국채 금리에 반영됐다. 대규모 감세 정책으로 가뜩이나 재정적자 확대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관세 수입을 미국 내 수입업체 등에 돌려줘야 할 경우 추가 국채 발행이 불가피하다. 이는 국채 공급 증가와 더 높은 이자 부담으로 이어져 금리 상승 압력을 키운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부 장관은 올해 관세 수입이 1조 달러(약 1,397조원)에 이를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대통령 단독으로 IEEPA 집행 가능, 관세 정당성 부여하는 조항들도 존재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항소할 경우 대법원은 공화당 정권에서 임명된 보수 성향 대법관이 6명으로 6대 3의 보수 우위 구도를 이루고 있어, 트럼프 대통령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또한 만약 대법원까지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이 위법이라는 판결을 내린다 하더라도 현 관세 조치는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IEEPA 외 무역확장법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유지에 활용할 수 있는 조항들이 있기 때문이다.
약 5개로 추려지는 해당 조항들은 발동 전 절차적 요건이 많아 제약은 따르지만, 특정 산업이나 국가를 대상으로 규제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 대표적인 조항이 무역확장법 232조다. 이 조항은 ‘국가안보 위협’을 이유로 대통령이 특정 품목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활용해 △철강 △알루미늄 △자동차 △구리 제품에 고율 관세를 매겼으며 현재 △반도체 △의약품△풍력 터빈 등 산업에 대해서도 미 상무부가 부과 전 조사를 진행 중에 있다.
201조도 관세 부과를 위한 카드로 거론된다. 이는 수입 증가로 인해 미국 제조업이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경우 국제무역위원회(ITC) 조사를 거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조항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근거로 2018년 태양광 모듈과 세탁기에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다만 이는 특정 국가보다는 산업에 초점을 맞춰 규제를 가하는 경우에 적합한 조항으로 평가된다.
301조는 상대국의 차별적 무역 관행이나 국제 협정 위반에 대응해 관세 부과를 허용하는 조항으로, 미 무역대표부(USTR)의 조사와 대중 의견 수렴 후 발효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조항을 통해 2018년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매겼으며, 이는 현재까지 유효한 상태다. 지난 7월에는 브라질을 대상으로 USTR이 △무역 및 지적재산권 △산림 벌채 △에탄올 시장에 조사를 개시한 바 있다.
이 밖에 대규모 국제수지 적자나 달러화 급락을 막기 위해 15% 관세를 최대 150일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122조도 거론된다. 아직 활용된 전례는 없지만 의회의 승인을 받으면 기간 연장이 가능한 조치다. 아울러 1930년 제정된 스무트 홀리 관세법 338조는 특정 국가가 미국에 차별적 조치를 취할 경우 보복 관세를 허용하는데, 이 역시 전례는 없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활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 정부 “법원 관세 제동 땐 보복 당할 수도”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법원 판결을 '비상사태'라고 평가하며 행정부가 곧 대법원 심리를 요청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2일 트럼프 대통령은 라디오 프로그램 '스콧 제닝스 쇼'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결정은 국가 경제에 큰 부담을 준다"며 "관세를 없애면 제3세계 국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항소법원 판결은 임시방편일 뿐"이라며 "우리는 비상사태로 대응할 것이다. 아마 내일(3일) 중으로 항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간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 측은 관세가 지속되지 않을 경우 심각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결정이 뒤집히면 미국 경제에 재앙이 될 것"이라며 "관세가 철회되면 우리 국가는 약하고, 무기력하며 부유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세는 협상 과정에서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별개로 미 행정부는 법원이 상호관세를 무효로 하면 미국과 무역협상을 타결한 국가들이 합의를 지키지 않거나 미국에 보복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 대표는 지난달 29일 연방순회항소법원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법원이 상호관세의 위법성 여부에 관한 심리를 시작한 이후 행정부가 한국, 유럽연합(EU),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일본, 영국과의 무역 합의를 발표했다고 밝히면서 “현재 미국과 이들 교역 상대국은 이런 합의를 법적 구속력이 있는 문서로 만들기 위해 신속하고 부지런히 작업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 합의를 앞으로 수개월 동안 계속해서 마무리해 나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어 “수입을 규제하고 다른 나라를 (협상) 테이블로 데려오기 위한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는 이 중 어떤 합의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며 “협상의 성공은 관세를 즉각 시행하겠다는 믿을 만한 위협에 의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도 법원이 관세를 무력화하면 “현재와 미래에 미국과 미국의 외교 정책 및 국가 안보에 엄청나고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러트닉 장관은 “그런 판결은 국내외에서 미국의 광범위한 전략적 이해관계를 위협하고 외국 교역 상대국의 보복과 무역 합의 철회로 이어지며 외국 교역 상대국들과 진행 중인 중요한 협상을 탈선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