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테크] AI 자동화 한계, 교육은 인간 역량 강화 준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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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반복·표준화 업무 강점, 복잡·변수 과제 한계 국가와 산업별로 다른 자동화 파급 효과 인간의 복합적 역량을 강화하는 교육정책 필요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Research Memo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AI)과 로봇은 여전히 제한된 기능에 머물러 있다. 특정 과제에서는 성과를 내지만, 범용적 활용은 쉽지 않다. 반대로 인간은 예외 상황을 처리하고, 다양한 역할을 결합하며, 맥락에 맞게 대응할 수 있다. 교육정책은 이러한 인간의 능력을 강화하고, 자동화를 대체가 아닌 보완의 수단으로 삼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노동 종말론은 과장된 전망에 가깝다. 실제로 기술 최전선에서도 대부분의 직무는 전면 대체가 어렵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전 세계 일자리의 상당 부분이 AI에 ‘노출’돼 있다고 분석했지만, 이는 단순히 영향을 받을 가능성을 의미할 뿐, 곧바로 일자리 소멸을 뜻하지 않는다.

협소한 자동화의 한계
산업계에서 흔히 ‘AI’로 불리는 기술은 자동화와 패턴 인식의 결합에 가깝다. 훈련된 데이터와 환경에 의존하기 때문에 변수가 생기면 취약하다. 예컨대 로봇은 정밀한 조립 작업은 반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지만, 포장 방식이 바뀌거나 조명이 달라지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
최근 범용 로봇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나, 대규모 데이터와 기초 모델을 활용하더라도 실제 환경에서 안정성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2023~2025년 분석 결과에 따르면 AI는 적은 데이터로 학습하거나 여러 과제를 동시에 수행하는 능력은 향상됐지만, 복잡한 추론과 예외 대응은 여전히 부족하다. 결국 자동화는 정밀한 일부 작업에 강점을 보일 뿐, 인간을 대체하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주: 비반복적 인지 작업, 비반복적 육체 작업, 반복적 육체 작업, 반복적 인지 작업(시계방향 순)/자동화는 주로 반복적인 인지·육체 노동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인공지능은 주로 비반복적인 업무를 보조한다. 새로운 역할은 이 경계 지점에서 생겨난다.
따라서 교육정책은 이런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학생들이 자동화의 취약성을 인식하고, 과제를 재구성하며, 실패 상황에 대응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특정 산업을 넘어 전반적으로 요구되는 인간 중심의 역량이다.
국가별 노출과 파급 차이
IMF 2024년 분석에 따르면 AI 노출 비율은 선진국 약 60%, 신흥국 40%, 저소득국 26%로, AI 확산의 충격은 국가별로 다르게 나타난다. 선진국은 노출 비율이 높아 단기 충격이 크지만, 생산성 향상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반대로 신흥국과 저소득국은 노출 비율이 낮아 당장 충격은 작지만, 기술 활용 기반이 부족해 성장 기회를 놓칠 가능성이 크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생성형 AI의 단기 효과가 전면 자동화가 아니라 업무 보조에 있으며, 특히 여성 고용이 집중된 사무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회원국 일자리의 상당 부분이 자동화 위험에 놓여 있으며, 교육 수준과 과업 구성에 따라 차이가 크다고 분석했다. 공통된 결론은 전면적 일자리 대체보다는 과업 단위의 변화가 크며, 산업별·기술별로 이질성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자동화 집중과 인프라 제약
산업용 로봇은 특정 지역에 편중돼 있다.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설치된 산업용 로봇의 70%가 아시아에 집중됐고, 절반은 중국에 배치됐다. 중국은 제조업 노동자 1만 명당 로봇 수가 4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어 470대를 기록했으며, 국산 공급업체 비중도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세계 제조망 전체에도 파급 효과를 미친다. 글로벌 가치사슬에 편입하려는 국가들은 이제 단순 노동력이 아니라 로봇과 협업할 수 있는 역량을 요구받고 있다.

주: 2014년 기준 연평균 임금(X축), 근로자 1인당 로봇 보급 변화율(Y축)/농업(AGRI, 파랑), 섬유(TEX, 초록), 화학(CHEM, 주황), 통신/서비스(COMM, 진한 갈색), 전기/전자(ELEC, 보라), 기계(MACHINE, 노랑), 자동차(AUTO, 빨강), 건설(CONST, 회색)
한편, 디지털 인프라 격차는 여전히 큰 제약이다. 세계 인구 다수는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으나 저소득국의 이용률은 여전히 낮다. 전력 접근성도 불충분해 수억 명이 전기를 쓰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 초고속 인터넷 보급에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한계는 학교와 직장의 AI 활용뿐 아니라 생산성 향상 전반에도 걸림돌이 된다. IMF 역시 준비 부족이 소득 격차를 확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역별 상반된 경험
지역별 연구는 상반된 결과를 보여준다. ILO와 세계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 지역은 단기적으로 일자리 감소 위험이 크지만, 디지털 인프라 부족으로 파급 효과는 제한적이다. 반면 동아시아·태평양 지역은 기술 도입이 일부 산업에서 오히려 고용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생산성 향상과 규모 확대가 직접적 대체 효과를 상쇄했기 때문이다. 다만 새 일자리의 혜택은 숙련 노동자에게 집중됐다.
이 사례들은 자동화가 일자리를 줄이는 동시에 새로운 보완적 일자리를 만들 수 있으며, 확산 속도와 효과는 인프라 수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교육훈련 체계는 변화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조정돼야 한다.
교육정책 재설계의 방향
범용 인공지능이 아닌 협소한 자동화가 중심인 현실에서 교육은 상황 대응 능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개편돼야 한다. 유네스코의 AI 역량 프레임워크가 강조하듯, 비판적 활용, 윤리적 판단, 기본적 모델 이해가 핵심이다. 조기 교육부터 심화 과정까지 이런 역량을 체계적으로 강화하면, 졸업생들은 문제 범위를 정확히 설정하고 실패 가능성을 예측하며 균형 잡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교육 개편은 대학뿐 아니라 직업교육훈련(TVET)에서도 필요하다. 산업 현장은 이미 운영, 유지보수, 데이터 관리가 결합된 ‘퍼플칼라’형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신규 로봇의 상당수가 아시아에 설치되는 현실에서, 가치사슬에 참여하려면 안전, 센서 교정, 제어 논리, 데이터 기록, 라인 재구성 같은 역량을 습득해야 한다. 교육 당국은 산업계와 협력해 마이크로 자격증을 설계하고 학위 과정으로 연계해야 하며, 장비 부족은 공유 훈련센터로 보완할 수 있다. 이는 유지보수·통합·예외 처리 수요 확대에 대비한 현실적 투자다.
사무직은 생성형 AI에 가장 크게 노출된 직종이자 여성 고용의 핵심 기반이다. 재훈련 없이는 안정적 일자리가 위협받을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전력과 인터넷 같은 기본 인프라를 확충하고, 교육 당국은 과업 단위 기준을 공개하며 실제 성과를 측정해야 한다. 자동화 효과는 불균등하고 경로 의존적이므로 반복적 평가와 증거 기반 확산이 필요하다.
다재다능한 인재 양성으로
AI 확산은 일자리 전면 대체가 아니라 과업 재설계와 인간-기계 협업을 통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략적 초점은 범용 자율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적응력과 융합적 역량을 강화하는 데 있다. 자동화의 취약성을 관리하고, 예외를 포착하며, 문제를 재구성하는 능력을 교육 과정 속에 포함하는 것이 핵심이다. 교육시스템은 기본 인프라 확충, 비판적 활용 역량 강화, 직업훈련과 산업 협력 확대, 과업 단위 성과 측정을 통해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로봇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 인간의 역량 강화는 그보다 앞서야 한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Beyond the Robot Hype: An Education Strategy for Narrow Automation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