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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테크] 동아시아 모델, 세계 산업정책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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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months 3 wee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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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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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에 대해 사실에 근거한 분석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전달에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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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자산업 성장, 교육·효율·인프라 결합의 결과
동아시아 모델, 경쟁력 원천은 공정 관리와 공급망
서방, 중국식 모델 모방보다 효율성·숙련 제도에 집중 필요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중국의 전자 수출은 교육과 산업의 결합으로 성장했다. 1990년 50억 달러(약 6조7,000억원)에 불과했던 전자제품 수출액은 2021년 1조 달러(약 1,340조원)로 늘었다. 같은 해 중국의 전자 수출 규모는 세계 5대 수출국의 합계를 넘어섰다. 이는 특정 기술 혁신이나 정책의 성과가 아니라 효율성 강화, 지식 확산, 치열한 경쟁, 외부 기술을 흡수할 수 있는 교육 체계가 맞물린 결과다. 2023년에도 중국은 약 6,220억 달러(약 830조원) 규모의 전자제품을 수출해 세계 시장의 30%를 차지했다. 일부 생산이 인도와 베트남으로 이전했지만, 전체 추세는 유지됐다.

사진=ChatGPT

역사적 맥락과 동아시아의 성장

동아시아의 성장을 이해하려면 20세기 후반의 산업 발전을 특수한 사례로만 보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 17세기 이전까지 아시아, 특히 중국은 응용 기술과 실용 공학의 중심지였다. 종이, 인쇄술, 화약, 나침반 등 근대 문명을 가능하게 한 주요 발명도 중국에서 나왔다. 이후 동서 간 격차는 혁신 능력 부족이 아니라 지정학적 상황과 제도적 선택에서 비롯됐다.

20세기 후반 개방과 자유화가 이뤄지자, 일본, 한국, 대만, 중국은 산업 역량을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외부 지식을 흡수하고 기존 시스템의 효율을 극대화했다. 값싼 노동력이나 산업 스파이 활동으로만 설명하는 시각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교육, 지식 확산, 인프라는 다른 국가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다.

R&D 투자와 제도적 기반

일본의 전후 재건기, 한국의 고도성장기, 중국의 개혁 개방 시기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학습에 대한 집중 투자’였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5%를 연구개발(R&D)에 투입하며, 일본은 3%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은 규모에서 압도적이다. 2024년 중국의 R&D 지출은 3조6,000억 위안(약 720조원)을 넘어섰고, GDP 대비 비중도 2.68%에 이르렀다. 국제 특허 출원(PCT)에서도 중국 기업은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정부가 연구 성과 확산을 지원하면 기업은 합법적으로 모방하고 빠르게 적응하며, 일부는 원천 기술도 확보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가치사슬이 단계적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완성형 솔루션을 활용한 도약도 가능해졌다.

교육과 자동화의 기반

중국 전자산업의 성장은 학습 효과와 규모의 경제에서 비롯됐다. 아이폰 조립 초기 중국이 얻은 이익은 기기당 몇 달러에 불과했지만, 공정 숙련도가 쌓이면서 더 정교한 부품을 공급할 수 있게 됐다. 현재 미국의 대중국 전자제품 의존도는 줄고, 스마트폰 생산은 인도와 베트남으로 분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중국 모델의 약화가 아니라 같은 조건을 갖춘 지역으로 방법론이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1990~2020년 주요 생산국 전자제품 수출 규모(단위: 십억 달러)
주: 연도(X축), 수출 금액(Y축)/중국(파란색), 미국(초록색), 대만(회색), 한국(노란색), 독일(빨간색)

교육은 이 구조의 핵심이다. 2022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수학 점수는 싱가포르 575점, 일본 536점, 한국 527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472점을 크게 웃돌았다. 이는 공정 관리, 소프트웨어 테스트, 문제 해결에 필요한 기초 역량을 의미한다. 이러한 인적 기반이 점진적인 기술 변화를 산업 현장에서 흡수하는 힘으로 이어졌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산업용 로봇 밀집도를 기록하고 있으며, 일본과 중국도 상위 10위권에 들어 있다. 자동화는 값싼 노동의 대체가 아니라 생산 효율을 높이는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주요 국가별 PISA 2022 수학 점수 평균(단위: 점)
주: 국가-싱가포르, 일본, 한국, OECD 평균, 미국(X축), 점수(Y축)

생산 효율성과 글로벌 분업 구조

중국의 생산 시스템은 효율을 우선으로 한다. 반도체 패키징, 인쇄회로기판(PCB) 조립, 정밀 광학 분야에서는 로봇 활용도가 특히 높다. 이들 공정은 작은 수율 차이도 큰 금액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숙련된 관리와 지속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수율이 0.1%만 개선돼도 수백만 달러의 차이가 발생한다. 이러한 정밀한 관리가 가능하도록 기술 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것이 국가 정책의 중요한 과제다. 중국 연해 지역의 임금은 크게 올랐지만, 경쟁력이 유지되는 이유는 인건비가 아니라 공정의 안정성과 효율성 때문이다. 의류나 단순 조립처럼 임금이 핵심인 산업은 동남아시아로 이전했지만, 정밀 관리가 필요한 산업은 여전히 중국에 남아 있다.

이런 구조는 단기간의 통상정책으로 흔들기 어렵다. 실제 연구에 따르면 전자제품 관세가 10%포인트 오를 경우 중국의 수출은 12~21% 감소한다. 그러나 이는 산업 역량 약화가 아니라 단기 충격에 불과하다. 미국 위스콘신주 폭스콘 LCD 공장 실패 사례도 같은 맥락이다. 관세와 보조금만으로는 숙련된 공급망과 인력, 성과급 체계를 구축할 수 없다. 동아시아에서 성과를 낸 것은 항만, 전력, 도로, 직업학교, 중소기업 금융 같은 기반 시설이었다. 이런 요소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수입대체 정책은 성과를 내기 어렵다.

세계 무역 흐름도 이를 확인시켜 준다. 전자제품은 여전히 세계 교역의 핵심 품목이고, 아시아가 정보통신기술(ICT) 무역을 주도한다. 다만 구조는 변하고 있다. 2017~2023년 사이 중국의 전자제품 수출 비중은 소폭 줄었고, 미국 기업들은 조립을 베트남과 인도로 분산했다. 그러나 이들 국가도 핵심 부품은 중국과 주변국에서 조달한다. 조립지는 달라졌지만, 공급망은 더 긴밀해졌다. 정책적 시사점은 명확하다. 경쟁력의 핵심은 국가가 아니라 공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이다.

서방이 배워야 할 것과 한계

서방이 참고해야 할 교훈은 중국식 모델 복제가 아니라 효율성을 정책 목표로 삼는 일이다. 연구개발 정책도 단기 성과에 치중하기보다 공급망 전반의 역량 강화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일본, 한국, 중국은 기업 연구개발, 산학협력, 측정·검증 인프라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왔지만, 미국과 유럽은 특정 시설 유치에 집중해 공급업체 경쟁력 강화로 연결되지 못했다. 필요한 것은 중소기업이 안정적으로 적합성을 입증할 수 있는 공개 조달 시험, 생산 효율과 생산 주기 개선에 연계된 재정 인센티브, 지역 단위 장비 투자 지원이다.

그러나 중국의 우위를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어렵다. 중국 제조업의 힘은 수십 년간 축적된 공급망이다.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우방 간 공급망 구축)’과 근접 생산이 확산되고 있지만, 멕시코와 베트남은 아시아 부품 의존도가 여전히 높다. 인도는 스마트폰 생산을 확대했지만, 부가가치 비중은 베트남보다 낮고, 규제 장벽으로 부품 산업 이전도 더디다. 따라서 서방의 산업정책은 중국식 대규모 클러스터 모방보다 첨단 패키징, 전력전자, 정밀 구동 같은 병목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정책은 효율성의 사회적 함의도 고려해야 한다. 아시아는 경쟁을 통해 성과를 냈지만, 동시에 학벌 중심의 불평등 구조라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서방이 참고해야 할 부분은 단순한 교육열이 아니라 숙련을 공정하게 평가하고 보상하는 제도다. 직업적 역량을 임금, 고용 안정, 사회적 지위와 연결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성장을 뒷받침하는 방법론

정책이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의 전자 수출이 30년간 200배 성장했다는 결과가 아니다. 핵심은 생산 효율 향상, 공급업체 승인 기간 단축,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인력 확보다. 이런 요소가 전이 가능한 경쟁력이다.

서방은 같은 성과를 단기간에 재현하기 어렵다. 그러나 효율성을 산업의 기본 원칙으로 삼는 것은 가능하다. 실용적 수학 능력 확산, 기존 지식의 전파, 공정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인프라, 성과를 공정 개선 중심으로 평가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공급망의 회복력과 효율성을 높이려면 검증된 방법론에 투자해야 한다. 변화를 이끄는 힘은 지속적인 교육, 경쟁, 인프라 연결에 있으며, 이는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he Efficiency Engine Behind East Asia's "Miracle"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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