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재생에너지 예산 역대 최대, '에너지 대전환' 기조 속에 공급 안정화는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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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내년 재생에너지 예산 1.2조원 편성 AI 전력 수요 폭증에 재생에너지 한계 지적 송전망 확충·저장설비 등 인프라 강화 관건

정부가 내년 재생에너지 예산을 역대 최대 규모로 편성하며 에너지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원전 예산은 차세대 기술인 소형모듈원자로(SMR) 연구개발(R&D)에 중점을 두고 소폭 증액됐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인공지능(AI) 시대 폭증하는 전력 수요를 고려할 때, 재생에너지 확대만으로 탄소중립을 달성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안정적인 전력 수요를 확보하면서도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설비 확충과 함께 송배전망 정상화, 에너지 저장 시설 확대 등 기반 시설에 대한 투자가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李 정부 재생에너지 예산, 추경 포함 4.8조원 편성
2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전날 공개된 ‘2026년 산업통상자원부 예산안’에서 내년 재생에너지 관련 예산은 올해 8,973억원에서 3,740억원(42%) 증가한 1조2,703억원이 편성됐다. 앞서 이재명 정부 국정기획위원회는 기술 주도 성장을 위한 과제 중 하나로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대전환을 이행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산업부는 "올해 7월 1,138억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 데 이어 내년도 예산을 대폭 확대함에 따라 재생에너지 분야 설비 투자 확대 및 첨단 연구 개발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재생에너지 보급을 확대하기 위한 신재생에너지 금융지원사업과 보급지원사업에는 총 8,501억원이 투입된다. 특히 RE100산단과 영농형 태양광, 햇빛·바람연금 등 국정과제 관련 예산은 전년 대비 2배이자 역대 최대 규모인 6,480억원으로 증액됐다. 재생에너지 관련한 기술 개발 투자도 강화된다.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핵심 기술 개발 사업에 역대 최대 규모인 3,358억원의 예산을 편성해 초고효율 탠덤 태양전지와 20㎿(메가와트) 이상의 대형 풍력 블레이드 등 태양광·풍력 분야 첨단 기술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반면, 원전 예산은 5,194억원으로 올해 대비 305억원(6.2%) 늘어나는 데 그쳤다. 소폭의 증액분마저도 대형 원전이 아닌 SMR 개발에 무게를 뒀다. 올해 2차 추경에서 원전 관련 예산이 편성되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이재명 정부의 재생에너지 예산이 4,858억원 늘어나는 동안 원전 예산은 305억원 증가에 그친 셈이다. 내년부터 고준위 방폐장과 신규 대형 원전 용지 선정 등 대형 원전과 관련해 굵직한 현안들이 본격적으로 전개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상당한 예산이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美 빅테크, 태양광·수력 등 재생에너지 확보 나서
일각에서는 데이터센터 등 전력 수요가 폭증하는 AI 시대에 원전 없이 재생에너지로는 대응이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구글의 탄소 배출량은 5년 전인 2019년과 비교해 51% 증가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탄소 배출량도 2020년보다 23.4%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아마존과 메타는 지난해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지난달 유엔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두 회사의 2023년 탄소 배출량은 2020년보다 각각 182%, 145% 증가했다.
탄소 배출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은 AI다. 생성형 AI는 막대한 데이터를 처리해야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는 구조이기에 전력 소비가 매우 크다. 대표적으로 오픈AI 챗GPT는 학습을 위해 수천, 수만 대의 그래픽처리장치(GPU)가 필요하다. 활용 단계에서 발생하는 전력 소모도 크다. 챗GPT에 한 번만 검색해도 일반 웹보다 약 5배 더 많은 전력을 소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5년 뒤 전 세계 AI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력량이 지금의 2배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문제는 대다수 데이터센터가 화석연료를 활용한 전력망에 의존하고 있어 AI 확산이 탄소배출 증가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골드만삭스는 데이터센터의 탄소배출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2028년 1,250억~1,4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실제로 미 동부·중서부 대규모 전력망에서는 AI 수요 확대와 신규 발전소 건설 지연의 여파로 전력 공급 비용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워싱턴DC 전력망은 전력 조달 단가를 전년 대비 22% 오른 메가와트(MW)당 329.17달러로 책정했다.
빅테크 입장에선 'AI'와 '탄소중립', 두 가지 목표 중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다. AI 경쟁에서 뒤처지면 미래 시장을 잃게 되고, 탄소중립을 포기하면 각국의 제재를 받기 때문이다. 이에 빅테크들 늘어나는 전력수요를 재생에너지로 채우는 데 주력하고 있다. 구글은 최근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브룩필드와 30억 달러 규모의 수력발전 전력 확보 계약을 체결했다. 수력발전 분야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계약이다. 메타도 텍사스 태양광발전소에 9억 달러를 투자해 재생에너지를 장기 공급받기로 했다.

탈원전국 獨, 전력 수입 의존하며 에너지 위기 초래
그러나 재생에너지 확대는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는 전력망 확충의 어려움이 꼽힌다. 국내에서 전력 공급에 제약이 발생하는 가장 큰 원인은 발전 능력이 아니라 송전망의 한계다. 2008년 밀양 송전탑 갈등을 계기로 전국 곳곳에서 송배전망 건설이 지연됐고, 전력 계통에 대한 투자 지연과 감소로 인해 송배전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재원도 부족하다. 송전망 정상화에는 100조원 이상이 필요한데, 한국전력의 적자가 누적되면서 전력망 투자가 더욱 어렵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재생에너지가 확대되면 전력망에 더 많은 자금이 투입돼야 한다. 태양광, 풍력 등을 효과적으로 생산하고 전달하기 위해서는 입지와 송전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지금은 지방 태양광 단지에서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낼 송전망도 없다. 들쭉날쭉한 발전량을 안정화하기 위한 저장시설 구축에도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발전량의 70% 이상을 저장해 필요시 공급하는 시스템까지 고려하면, 송배전망을 제때 구축하지 않고서는 재생에너지 확대나 탄소중립 목표 달성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탈원전 국가들의 사례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한때 제조업 강국으로 군림하던 독일은 최근 높은 에너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유럽의 병자’로 전락했다. 지난 2023년 4월 마지막 원전 3기의 가동을 중단하며 탈원전 국가가 됐지만, 동시에 에너지를 수입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면서 주변국의 전기 요금을 올리는 주범이 된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독일이 초과 수입한 전력량은 593만 가구가 1년 동안 사용 가능한 규모에 달했다. 반면 독일이 전력을 가장 많이 수입한 프랑스는 전체 전력의 70%를 원전으로 생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