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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심 사업 정리·계열사 수 감축 속도 붙나
목표 주가 줄줄이 하향, 투자자 달래기 시급
김 의장 비롯 경영진 사법 리스크 여전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의혹을 받는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겸 CA협의체 공동의장이 구속된 지 101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대대적인 기업 쇄신 작업에 차질을 빚던 카카오가 그룹 총수의 복귀로 안정화를 이룰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AI 등 미래 사업 발굴에 집중”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5형사부는 전날 김 의장의 보석 청구를 인용했다. 지난 7월 23일 김 의장에 대해 “증거인멸 및 도망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한 지 101일만의 일이다. 앞서 김 의장 측은 보석 심문에서 재판부에 “우리 정보기술(IT) 산업을 이끌고, AI 등 미래 사업 발굴에 집중하고 있었다”며 “해외 빅테크와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김 의장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의장의 복귀로 카카오는 ‘총수 부재’라는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게 됐다. 카카오는 지난 4월부터 대대적인 계열사 정리에 나서는 등 고강도 쇄신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최고 의사결정권자이자 최대 주주인 김 의장의 부재로 쇄신에 속도를 내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지난해 144개였던 카카오 계열사 수는 현재 123개로, 김 의장의 의사결정으로 비핵심 사업 정리, 계열사 수 감축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카카오의 새 먹거리로 꼽히는 인공지능(AI) 부문 사업에서도 김 의장의 역할은 중요하다. 카카오는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은 물론 국내 경쟁사인 네이버와 비교해도 AI 서비스 개발 속도가 느리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MS는 윈도우 운영체제에 기본 탑재되는 AI 코파일럿(Copilot)에 음성대화, 시각인식 기능을 추가하며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으며, 네이버 역시 자체 대규모언어모델(LLM) 하이퍼클로바X를 주축으로 다양한 파생 모델을 선보이고 있다.
이렇다 보니 카카오가 지난달 22일 열린 개발자 컨퍼런스 ‘이프 카카오 2024’에서 대화형 AI 서비스 카나나(Kanana)에 대해서도 우려가 뒤따른다. 이미 국내외 경쟁사들이 각종 AI 서비스의 기능 고도화에 한창인 만큼 시장 내 후발주자인 카나나가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과감하고 발 빠른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카카오는 이프 카카오 AI 2024에서 엔비디아와의 협업 계획을 밝히며 AI 인프라 조성 의지를 나타냈다.
두둑한 영업 실적에도 주가는 ‘울상’
이른바 ‘오너 리스크’에 휘청인 주가를 회복시키는 일도 과제로 주어졌다. 올해 2·4분기 영업이익(1,340억원)이 전년 동기 대비 18.5% 증가하는 등 우수한 성적에도 창업자의 부재라는 대형 악재에 주가 하락은 물론 증권가 목표 주가마저 일제히 하향 조정됐기 때문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김 의장의 구속 직후인 지난 8월에만 미래에셋증권, 대신증권, 상상인증권, DS투자증권, NH투자증권 등 12개 증권사가 카카오의 목표가를 내려 잡았다.
임희석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카카오는 하반기 플랫폼 부문 성장세 둔화가 예상된다”며 “콘텐츠 부문도 하반기 반등을 꾀하기 어려운 만큼 목표 주가를 기존 7만원에서 5만원으로 하향 조정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오동민 삼성증권 연구원도 “카카오는 정부 규제와 조사, 소송 대응으로 그룹 성장률이 둔화하고 있다”며 “새로 제시된 중장기 성장 전략도 혁신성과 구체성이 여전히 부족한 만큼 목표 주가를 기존 5만1,000원에서 4만2,000원으로 내리고 투자 의견은 중립(HOLD)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외국인과 기관 역시 물량을 쏟아내며 주가 하락에 힘을 보탰다. 카카오 오너 리스크가 최고조에 달했던 7월 23일~8월 22일 한 달 동안 외국인과 기관은 카카오 주식을 각각 1,069억원, 792억원어치 순매도했다. 이는 전체 종목 가운데 7위, 16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김 의장의 구속 직전(7월 22일) 4만1,050원이던 카카오 주가는 9월 13일 3만2,900원까지 떨어졌다가 일부 회복해 이달 1일(10시 기준) 3만6,500원 선에 머물고 있다.
본격 경영 복귀 시점은 미정
업계에서는 김 의장의 보석으로 카카오가 최악의 상황은 벗어났다는 반응이다. 다만 김 의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사법 리스크는 여전히 불씨가 남아 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보석을 허가할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 형사소송법 제96조에 따라 결정했다”고 밝히면서도 김 의장의 주거를 제한하고 보증금 3억원과 소환 시 출석, 증거를 인멸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제출할 것을 그 조건으로 달았다.
이 때문에 김 의장은 당장 이달부터 지속적으로 재판에 출석해야 한다. 또 수사 과정에서 진술한 피의자, 참고인, 증인으로 신청되거나 채택한 사람을 만나거나 법정 증언에 영향을 미치는 일체의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갈 길이 구만리인 지금 운신에 상당한 제약이 걸린 셈이다. 김 의장은 전날 법원의 보석 인용 발표 후 서울 구로구 남부구치소를 나서며 “앞으로 법원의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본격적인 경영 복귀 시기나 시세조종 혐의 등 여타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