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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에너지솔루션, 특허 1,000여개 중 절반 이상 글로벌 기업들에 침해
각종 특허 침해 소송 대응에도 비용 절감 노리는 고객사들 설득 쉽지 않아
전문가들, 과거 SK온 영업비밀 유출 사태 눈여겨 볼 만하다는 지적
중국 기업과 매출액 3% 수준의 기술 로열티로 합의한 사례도 있어
LG에너지솔루션이 배터리 업계에 만연한 '특허 무임승차'에 강력 대응한다. 불법적으로 특허를 사용하는 기업에는 소송과 경고 등 강경 대응하는 한편 글로벌 배터리 특허 라이선스 시장을 조성해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24일 LG에너지솔루션에 따르면 현재 LG에너지솔루션이 보유한 특허 중 경쟁사가 침해하거나 침해할 것으로 예상되는 전략특허 수는 1,000여 개다. 이 중 실제로 침해된 것으로 확인된 특허는 580건에 이른다.
전략특허 무임승차 강력 대응
LG에너지솔루션은 정보기술(IT) 기기용 소형 배터리부터 전기차용 중대형 배터리에 이르기까지 이미 시장에 판매되고 있는 경쟁사 제품에서 고유 기술 침해 사례를 다수 발견했다. 실제 유럽 각지에 전기차를 판매하는 A사의 전기차 배터리를 분석한 결과 LG에너지솔루션의 코팅분리막, 양극재, 전극·셀 구조 등 핵심 소재와 공정에서 특허 침해 30건 이상을 확인했다. 세계 굴지 전자기기 제조 업체에 납품되는 B사의 배터리에서도 확인된 특허 침해만 50건 이상이라고 LG에너지솔루션은 부연했다.
그동안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무역위원회(ITC)나 독일 법원 등에 경쟁사를 대상으로 특허침해나 영업비밀 탈취에 소송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대응을 해왔다. 그럼에도 부당한 지식재산권 침해가 지속되고 있어 보다 강력히 대응하기로 했다. 정당한 라이선스 계약 없이 무분별한 기술 침해가 이어질 경우 특허 침해 금지소송에 나설 방침이다. 미국·유럽·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 현지 전문가를 확보, 글로벌 소송 역량도 강화할 계획이다. 아울러 해외 IP오피스도 확대해 글로벌 지식재산권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방침이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은 “기업의 존속과 산업의 발전을 위해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고 무분별한 특허 침해에 엄중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며 “합리적인 라이선스 시장 구축에 앞장서 특허권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수취하고 미래 핵심 기술 개발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배터리 후발기업들의 무분별한 지적재산권 침해 이어져
LG에너지솔루션이 특허 무임승차 강경대응에 나선 이유는 최근 배터리 후발기업의 무분별한 지적재산권(IP) 침해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재 LG에너지솔루션은 현재 배터리 제조에 상용화돼 쓰이는 기초 기술인 1세대 기술부터 첨단 3세대 기술까지 현재 등록기준 3만2,000건, 출원기준 5만8,000여건에 이르는 특허를 확보하고 있다. 이 중 경쟁사가 침해하거나 침해할 것으로 예상되는 ‘전략특허’는 1,000여 개다. 이 가운데 실제로 경쟁사가 침해한 것으로 확인된 특허만 해도 580건에 이른다고 LG에너지솔루션 측은 밝혔다.
LG에너지솔루션은 “IT 기기용 소형 배터리부터 전기차용 중대형 배터리에 이르기까지 이미 상업화돼 시장에 판매되는 경쟁사의 제품에서 LG에너지솔루션의 고유 기술을 침해하는 사례가 다수 발견되고 있다”고 말했다. 각종 소송에도 불구하고 지적재산권 침해가 지속되고 주요 완성차 업체들조차 배터리 공급사 선택에 특허권 준수 여부를 고려하지 않는 등 시장 왜곡이 심각해져 보다 강력한 대응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합리적인 라이선스 시장 구축에 박차, "선순환 구조 만들 것"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2015년 28GWh(기가와트시)에서 2023년 706GWh로 25배가량 성장했으며, 2035년에는 5,256GWh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시장 규모가 성장하면서 주요 기술 특허를 선점한 LG에너지솔루션과 달리 질적으로 우수한 특허를 확보하기 어려운 후발 기업들이 특허 무단 탈취를 통해 유럽, 중국, 인도, 동남아 등으로 시장 진출을 확대한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LG에너지솔루션은 합리적인 라이선스 시장 구축을 주도하기 위해 특허풀(Pool)이나 특허권 매각 등 다양한 방식의 수익화 모델을 활용해 나갈 계획이다.
먼저 현재 시장에서 침해 중인 특허를 중심으로 글로벌 특허풀을 통해 주요 특허를 단계적으로 라이선스해 라이선스 사업과 관리를 효율화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선도업체는 특허권에 대한 합리적인 로열티를 받아 기술 개발 등에 투자를 확대하고, 후발기업은 정당한 특허권 사용을 통해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SK온과 특허 침해 공방전 끝에 2조원 합의금 받아낸 전력도
앞서 LG에너지솔루션은 2019년 SK온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를 이유로 ITC와 미국 델라웨어 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SK온의 모회사)을 제소한 바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의 승소로 SK온은 10년간 미국에서 배터리 판매가 금지될 뻔한 위기에 놓였으나, 양사가 극적으로 합의에 성공하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당시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한 LG에너지솔루션 직원들이 영업비밀을 빼갔고 미국 폭스바겐 전기차 배터리 물량을 대거 따낸 배경이 됐다는 것이 알려지자 국내 배터리 업계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큰 논란이 됐다. SK 측의 패소로 소송이 끝나자 10년간 판매 금지 결정이 미국 바이든 대통령에게 올라갔고, 대통령 서명 제한 시간을 눈앞에 두고 양측이 합의금 1조원과 3조원 사이 팽팽하게 맞서던 것을 2조원으로 타협한 것이다.
결국 SK이노베이션이 현금으로 1조원, 로열티로 1조원을 각각 합의된 방법으로 LG에너지솔루션에 지급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합의 당시 현금 1조원(약 7억3,000만 달러)을 지급하고, 2023년부터 누적 지급액이 1조원이 될 때까지 연간 매출액의 일정 비율을 매년 지급하는 방식이다.
당시 LG에너지솔루션은 SK에 배터리 매출의 3%를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중국 ATL을 상대로 ITC에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을 때 최종판결 직전 안전성 강화 분리막 매출의 3%를 기술 로열티를 받기로 합의했던 전례를 따른 것이다. 다만 SK온과 합의한 금액은 매출액의 약 1%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률 전문가들은 LG에너지솔루션의 전략특허를 침해한 것으로 업계에 이미 알려진 주요 중국 기업들이 이번 특허 소송의 주요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어 SK온과의 법적 분쟁 시 국내 기업 간의 극적인 합의를 위해 한국 및 미국 정부가 나섰던 것과 달리, 중국 기업들의 특허 침해는 앞서 2017년에 있었던 중국 ATL과의 선례가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서 미국이나 EU 각국 정부가 중국 기업들을 배려해 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