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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 대대적 암호화폐 제도 개편안 제시 디지털 자산 분류·과세 등 관련 체계 적극 손질한다 비트코인 전략적 비축 자산으로 확보 예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암호화폐를 미국 경제 전반에 통합하겠다는 강경한 의지를 드러냈다. 백악관 보고서를 통해 암호화폐 관련 제도에 대한 전면적 개편안을 제시하고, 암호화폐를 준비 자산으로 간주하겠다는 국가 정책 방향을 재확인한 것이다.
백악관의 '가상화폐 로드맵'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 악시오스 등 외신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날 백악관은 대통령 직속 디지털 자산 실무 그룹이 작성한 168쪽 분량의 보고서를 공개하며 연방 정부 전 부처에 디지털 자산 도입과 규제 완화를 주문했다. 이번 보고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월 취임 직후 서명한 행정명령에 따라 구성된 실무위원회가 6개월간의 분석 끝에 마련한 결과물이다. 해당 행정명령에는 미국의 디지털 자산 산업 리더십 강화를 핵심 목표로 설정하고, 규제 명확화 및 산업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 로드맵 작성을 지시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보고서는 디지털 자산을 ‘증권’과 ‘상품’으로 명확히 구분하는 체계(분류 기준)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증권에 해당하는 암호화폐는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상품으로 간주되는 경우는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각각 담당해야 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비트코인과 같은 현물 기반의 시장은 CFTC가 관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명시했다. SEC의 폴 앳킨스 위원장은 보고서에 대한 공식 입장을 통해 “디지털 자산에 대한 합리적인 규제 체계는 미국의 혁신을 촉진하고 투자자를 보호하며, 자본시장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CBDC 설 자리 잃을까
보고서에는 은행이 암호화폐를 보관하고 관련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조언도 담겼다. 현재는 복잡하고 불투명한 인가 절차가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은행의 인가 취득 절차를 간소화하고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과세 체계 개편도 주요 권고 사항 중 하나다. 보고서는 “디지털 자산은 기존의 주식이나 상품과는 다른 특성을 갖는다”며 스테이킹 등 새로운 수익 구조를 고려한 맞춤형 세금 제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연방소득세 기준에서 디지털 자산을 별도의 자산군으로 분류하고, 이에 맞는 과세 규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스테이블코인 정책도 눈에 띈다. 보고서는 달러와 가치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이 미국 달러의 국제적 지위를 유지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에 대해서는 명확히 반대 입장을 밝혔다. 보고서는 “CBDC는 국가가 개인의 금융 활동을 감시할 수 있는 위험한 수단이 될 수 있다”며 CBDC 관련 연구와 개발을 금지하는 ‘CBDC 감시국가 반대법(CBDC Anti-Surveillance State Act)’의 통과를 촉구했다.

美 재무부 금고에 비트코인 쌓인다
아울러 보고서는 "재무부와 상무부 등이 '비트코인을 전략적 비축 자산으로서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전략(strategies that could be used to acquire additional bitcoin for the Reserve)'을 마련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그간 행정명령 등을 통해 밝혀 온 비트코인 비축에 대한 정책적 의지를 공식화하고, 연방 정부 산하 부처를 통해 이를 관리하겠다는 구상을 공개한 것이다.
해당 전략은 별도의 신규 예산이나 증세 없이 수립될 전망이다. 보고서가 "재정 중립적이고, 미국 납세자에게 별도 비용을 지우지 않아야 한다(in ways that are budget neutral and do not impose incremental costs on U.S. taxpayers)"는 비트코인 추가 확보 전략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의 비트코인 비축은 몰수 자산으로 구성된 별도 준비금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행정명령 등을 통해 알려진 미국 정부의 비트코인 보유량은 약 20만 개다.
일각에서는 미국 정부가 보유 중인 금을 일부 매각한 재원으로 비트코인을 추가 확보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보고서에서 금 매각 등 구체적 재원 조달 방식이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기존 실물자산의 비중 재편을 통한 디지털 자산 전환이 가능하다는 시각이다. 암호화폐 투자회사 판테라 캐피탈의 댄 모어헤드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5월 한 연설에서 "미국 정부가 보유 중인 금을 매각하고, 최대 6,000억 달러(835조원)를 비트코인에 투자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은 켄터키 포트 녹스에 1,100만 년 치 노동 임금을 금으로 묻어두고 있다"며 "이는 너무나 구시대적이며, 40세기 전 파라오들이 하던 방식"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 금은 시간이 지나면서 비트코인으로 이전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