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中, 과잉 생산 흐름 장기화하며 제조업 경기 악화 EU "中이 보조금 기반 과잉 생산으로 시장 교란해" 보조금 지급 사실 부인하는 中 정부, 실상은

중국이 제조업 과잉 생산으로 인해 홍역을 치르는 중이다. 수요를 웃도는 공급으로 인해 내수 시장 경쟁이 과열되고, 제조업 경기가 가라앉으며 디플레이션 흐름이 가속화한 것이다. 이에 더해 유럽연합(EU)을 비롯한 주요국도 중국이 정부 보조금을 이용한 물량 공세로 글로벌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며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몸살 앓는 中 경제
지난달 29일(이하 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 지방 정부들이 국내총생산(GDP) 성장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전기차와 인공지능(AI), 로봇 등 '신생산력' 분야 제조업 투자를 계속 늘리고 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제조업 투자는 지난해 9.5% 늘어난 데 이어 올해도 7.5% 성장할 전망이다. 베이징대학교 광화경영대학원 응용경제학과 옌세 조교수는 최근 한 세미나에서 "전 세계 제조업 부가가치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몫이 지금 약 27%에서 앞으로 5년 뒤 40%로 늘어날 수 있다"고 내다보기도 했다.
문제는 과도한 투자가 오히려 중국 제조업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비영리 민간 경제 조사기관 컨퍼런스보드 중국센터의 위한 장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하위 대도시들의 GDP 대비 투자 비율은 작년 평균 58%에 달했다. 이는 이미 높은 수준인 중국 전국 평균치(40%)를 크게 웃도는 수치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치(22%)의 2.6배에 해당한다. 장 이코노미스트는 보고서에서 "상당한 과잉 생산 능력에도 지방 정부는 부동산 시장 약세에 맞서기 위해 산업 및 인프라 투자를 늘리는 추세"라며 "잘못 쓰인 투자와 겹치는 생산 능력이 효율을 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중국 제조업 업황은 나날이 악화하는 추세다. 중국 국가통계국 자료를 살펴보면, 중국의 7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전월(49.7)보다 0.4%포인트(P) 하락한 49.3으로 집계됐다. 4월(49.0), 5월(49.5), 6월(49.7)에 이어 넉 달째 하락세를 이어간 것이다. PMI는 중국 제조업 경기 동향을 보여주는 지표로 기준인 50보다 높으면 경기 확장을, 낮으면 경기 수축 국면을 의미한다.
부적절한 투자와 과잉 공급은 물가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이어지는 경기 불황으로 소비자들이 줄줄이 지갑을 닫는 가운데, 공급이 시장 수요를 웃돌며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흐름이 가속화한 것이다. 중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 2월 전년 동월 대비 0.7% 급락한 뒤 3∼5월 연속 0.1% 하락을 기록했고, 6월 들어서야 0.1% 오르며 겨우 반등에 성공했다.
글로벌 시장까지 휘말려
더 큰 문제는 중국의 과잉 생산 기조가 자국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도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26일 경제 연구소 캐피털이코노믹스는 중국의 소비재 가격이 떨어지면서 디스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과잉 생산에 따른 부작용이라고 애널리스트들의 노트를 인용해 전했다. 중국의 수출 상품 가격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20% 이상 떨어졌으며, 이로 인해 선진국의 물가도 약 0.4%p 미끄러진 것으로 분석됐다.
캐피털이코노믹 애널리스트들은 중국에서 과잉 생산된 제품들이 세계 시장으로 쏟아져 들어가면서 기업의 약 30%가 적자를 감수하고 있으며, 이들 기업이 대출과 정부의 지원으로 버티는 중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 같은 상황을 미국뿐만 아니라 EU와 일본, 신흥 시장 등도 지켜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때 세계 경제 성장의 엔진이었던 중국의 성장 모델이 글로벌 경제 안정과 질서를 위협하면서 새로운 지정학적 갈등 원인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다.
실제 EU는 중국의 과잉 생산 재고가 덤핑 형태로 유럽 시장에 유입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유럽 산업이 붕괴하고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태양광 패널, 배터리, 전기차 등 신산업 분야에서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제품들이 유럽 기업들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달 16∼17일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해 "중국 경제가 둔화하면서 중국은 자국 시장이 흡수할 수 없는 보조금 기반의 과잉 생산으로 글로벌 시장을 범람시키고 있다"고 공개적인 비판 의견을 드러내기도 했다.

中 "중국인이 부지런한 것" 주장
반면 중국 정부는 제조업 과잉 생산의 원인으로 정부 보조금이나 과잉 투자 등이 아닌 '중국인의 근면·성실함'을 지목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리 총리는 지난달 24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EU 정상회의 폐막 연설에서 “중국의 제조 역량은 매우 강력하며, 많은 제조업 기업이 중국 국민은 놀라울 정도로 성실하다고 깊이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공장은 하루 24시간 가동된다”며 “일각에서는 이것이 세계의 수요와 공급 균형에 새로운 문제를 야기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중국의 공장 가동과) 별개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실제 중국은 중국의 주당 평균 근로 시간은 약 49시간 수준으로,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가장 길다. 아울러 리 총리는 “우리는 유럽만큼 부유하지 않으며, 그런 걸(보조금 지급) 할 여력이 없다”며 “어렵게 번 재정 자금을 보조금으로 써서 제품을 해외에 팔고 외국인들이 누리도록 지원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고 덧붙였다.
다만 시장에서는 중국 제조업 과열에 정부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 정부가 지난 10년간 ‘중국제조 2025’ 전략을 앞세워 시장을 공격적으로 지원해 왔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로디엄그룹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주요 산업체에 제공한 세제 혜택은 2018~2022년 연평균 29%씩 늘었다. 지난 2022년 중국 기업들이 누린 세제 혜택은 1,850억 달러(약 250조원)에 달한다. 국가 기금을 통한 직접 투자 규모도 2020년 기준 520억 달러(약 71조2,200억원)로 2015년 대비 5배 이상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