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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세·증권거래세 인상, 주식 양도소득세 대상은 확대 부동산 세제는 제외, 부동산 정책효과 종합적으로 봐야 자본시장 활성화 기조 반영해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정부가 세제 개편을 통해 법인세·증권거래세율을 인상하고 주식 양도소득세 대상도 확대하기로 했다. 조세 형평성 회복과 세수 확대를 위한 조치로 윤석열 정부의 세제 개편을 문재인 정부와 같은 수준으로 되돌리는 조치다. 종합부동산세 등 부동산 관련 세제는 이번 개편 대상에서 제외됐다. 중과세로 부동산 시장을 억제하지 않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기조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 13개 개정안 담은 '세제 개편안' 발표
31일 정부는 법인세율·증권거래세율 인상과 주식 양도소득세 대상 대주주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2025년 세제 개편안'을 발표했다. 5년간 35조6,000억원을 더 걷는 대규모 증세 카드로 국세기본법, 국세징수법, 소득세법, 법인세법, 상속세 및 증여세법, 부가가치세법, 개별소비세법, 조세특례제한법, 종합부동산세법,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교육세법, 주류 면허 등에 관한 법률 등 내국세 12개 세법과 관세법 등 13개 세법 개정안이 마련됐다.
관심을 모았던 법인세율은 '응능부담 원칙에 따른 세부담 정상화' 차원에서 과세표준 전 구간 세율을 1%포인트씩 인상하며 문재인 정부 수준으로 환원됐다. 현행 9~24%인 법인세율은 과세표준 △2억원 이하 10% △2억원 초과, 200억원 이하 20% △200억원 초과, 3,000억원 이하 22% △3,000억원 초과 25%로 조정된다. 법인세 최고세율은 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 22%로 낮아졌다가 2018년 25%로 올랐고, 윤석열 정부에서 24%로 완화됐다.
법인세율 인상은 이미 예견된 조치였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1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법인세가 2년 새 40% 급감하며 성장, 소비, 투자 모두 위축됐다”며 "법인세 인상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지난 2년간 법인세수 결손은 2023년 24조6,000억원, 2024년 15조2,000억원으로 총 40조원에 달한다. 기획재정부는 이번 법인세율 인상으로 향후 5년간 8조1,672억원의 추가 세수가 확보될 것으로 추산한다.
수익 여부와 관계없이 주식 매도 시 내는 증권거래세율도 0.15%에서 0.20%로 0.05%포인트 올리기로 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금융투자소득세를 도입하면서 증권거래세를 인하하기로 했는데, 금투세 도입이 백지화돼 다시 증권거래세율을 높이려는 조치다. 주식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대주주 기준도 현재 ‘종목당 50억원 이상 보유’에서 ‘종목당 10억원 이상’으로 되돌린다. 주식 양도소득세를 내야 하는 대주주 범위를 넓혀 세수를 확보하겠다는 취지다.

부동산 관련 세제, 일부 조정으로 한정 그쳐
한편 이번 개편안에는 종부세 등 부동산 관련 세제가 포함되지 않았다. '세금으로 집값을 잡지 않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박금철 기재부 세제실장은 부동산 세제가 빠진 배경에 대해 "부동산은 많이 예민한 부문"이라며 "이미 금융 쪽에서 대출 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데다, 공급으로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부동산 세제가 만약 강화될 경우 시장에 미칠 영향도 있어, 종합적으로 지금 시행하는 정책효과나 이런 부문도 같이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취득세·종부세·양도세 등 세제를 활용한 부동산 대책은 문재인 정부 당시 다주택자를 대상의 고강도 규제에 활용됐으나, 이것이 '똘돌한 한 채' 현상으로 이어지면서 오히려 투기과열지구의 집값을 부채질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다만, 박금철 실장은 추후 부동산 세제 개편안이 나올 수 있냐는 질문에 "지금은 부동산 세제가 강화되면 시장에 미칠 영향이 있어 종합적으로 전체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빠진 것"이라며 "이번에 세제 개편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해서 영원히 안 들어갈 것이라고는 지금 단계에서는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세제 개편안에 포함된 부동산 관련 내용은 일부 간접적인 세제 조정에 그쳤다. 대표적으로 프로젝트 리츠 현물출자에 대해 과세 특례가 신설돼 2028년까지 한시적으로, 토지 등 현물출자 시 주식 처분 시점까지 양도세 또는 법인세 납부를 유예하도록 했다. 또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에는 주택건설용 토지의 종부세 추징 예외 사유가 신설됐다. 이에 따라 기존에는 토지 취득 후 5년 내 사업계획 승인을 받지 못하면 감면받은 종부세를 추징했지만, 천재지변 등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추징을 면제하기로 했다.
배당소득 세율 낮춰 세금 절반가량 줄어들 듯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한 조치로는 기업의 배당성향(순이익 중 배당액 비율)을 높이고 투자자의 금융자산 형성을 돕는 배당소득 분리과세가 신설됐다. 배당소득 분리과세는 주식 배당으로 번 돈에 대해 여타 소득과 별개로 세금을 매기는 방식이다. 지금까지는 연 2,000만원 이상 배당·이자소득이 발생하면 종합소득세 부과 대상에 포함돼 최대 45%의 누진세율이 적용됐다. 배당소득 분리과세는 고배당 자산가의 세 부담을 완화하는 효과가 크다는 측면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컸지만, 국내 증시 활성화 차원에서 전격 도입됐다.
정부가 발표한 개정안은 배당소득에 종전보다 낮은 세율을 매기는 것이 핵심이다. 배당으로 번 돈이 2,000만원 이하면 종전과 같은 14%를 적용한다. 2,000만~3억원 구간은 20%를 부과하고, 3억원을 넘는 소득에는 35%를 부과하기로 했다. 예컨대 기존에 배당소득으로 5,000만원을 벌고 기타 소득을 더해 최고 45%의 종합소득세 부과 대상자였던 사람은 배당소득에 대해 1,630만원을 세금으로 내야 했다. 새 세법상으로는 배당소득세가 880만원으로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다. 1억원을 배당받으면 3,880만원에서 1,880만원으로 줄어든다.
다만 분리과세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해당 기업의 배당액이 전년보다 줄어들지 않아야 하며, 배당성향이 40%를 넘거나 25% 이상인 상장사 가운데 직전 3년 평균 대비 배당액이 5% 이상 증가한 경우에만 대상이 된다. 공모·사모펀드, 부동산투자신탁(리츠), 특수목적법인(SPC) 등은 이번 제도에서 제외된다. 분리과세는 내년부터 3년간 한시적으로 적용되며, 기획재정부는 전체 상장사 약 2,500개 가운데 350여 개 기업이 요건을 충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연간 세수는 약 2,000억원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