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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행, 기준금리 0.5%로 4회 연속 동결 "디플레이션으로 되돌아갈 위험 낮아져"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은 2.2%→2.7%로 상향

일본은행(BOJ) 기준금리를 동결하기로 결정하면서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잇달아 금리 인상에 나선 흐름과 상반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다만 이번 동결 결정의 이면에는 뚜렷한 전환 신호가 내포돼 있다. 일본은행이 수년 만에 처음으로 기존 2.2%에서 2.7%로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상향했기 때문이다. 대다수 중앙은행이 설정한 인플레이션 목표치가 2% 안팎임을 감안하면, 2.2%라는 기존 수치도 이미 정책 대응을 촉발할 경계선에 근접한 것인데, 2.7%는 사실상 일본은행의 ‘관망’이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日銀 금리 4회 연속 동결, 0.5% 유지
1일 현지 공영 NHK와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일본은행은 지난달 30일부터 이틀간 실시한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5%로 동결하기로 했다.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한 건 4회 연속이다. NHK는 "미국의 관세 조치를 둘러싸고 지난주 미일이 합의했으나 경제,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확인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일본은행은 같은 날 발표한 경제·물가정세 전망(전망 리포트)에서 2025회계연도(2025년 4월~2026년 3월) 신선식품을 제외한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 전망치를 종전 2.2%에서 2.7%로 상향 조정했다. 수치상 변화는 제한적이나, 정책적 함의는 결코 작지 않다.
지난 수십 년간 일본은 디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하락)과 장기 침체에 시달려 왔고, 일본은행은 세계 주요 중앙은행 중 유일하게 마이너스 또는 제로금리 정책을 고수해 왔다. 이런 상황 속 2.7%라는 수치는 새로운 국면으로의 진입을 시사한다. 이는 일본은행의 목표치를 넘어설 뿐 아니라, 연방준비제도(Fed·연준)나 유럽중앙은행(ECB)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즉각 행동에 나설 만한 수준과도 유사하다.
정치적 불확실성, 통화정책 장애물로
문제는 속도다. 성급한 금리 인상은 경기 회복세를 꺾을 수 있고, 지연은 인플레이션 고착화를 야기할 수 있다. 특히 일본처럼 장기간 저물가와 제로금리에 익숙한 경제에서는 통화 정책 기조의 작은 변화조차 시장 충격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행으로선 인상 시점과 강도 모두가 불확실성의 영역에 놓여 있는 셈이다.
정치 리스크도 정책 판단을 제약한다. 최근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는 사퇴 압박에 직면해 있으며, 경제 개혁과 통상 전략은 표류 상태다. 일본은행 입장에서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재정 정책과의 조율이 필수지만, 정치 리더십의 불안정은 공조를 사실상 어렵게 만든다. 이대로 이시바 총리의 퇴진이 현실화될 경우, 금리 인상이라는 중대한 정책 전환이 정치적 공백 속에서 추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시장 불안정성 역시 우려 요인이다. 리더십 공백은 투자심리 위축과 환율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통화정책의 의도된 효과를 상쇄시킬 수 있다. 게다가 만약 차기 정권이 포퓰리즘적 지출 확대나 구조개혁 후퇴에 나설 경우, 일본은행 더욱 불리한 조건에서 금리 인상을 강행해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

임금 모멘텀 부재와 통화정책 교착
또한 궁극적으로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여력은 실질임금 상승 여부에 달려 있다. 인플레이션만으로는 금리 인상의 정당성이 부족하며, 가계 소비를 지탱할 만한 임금 모멘텀이 동반돼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일본 기업들의 임금 인상은 기대에 못 미쳤고, 디플레이션과 임금 정체에 익숙한 고용 관행은 여전히 견고하다.
물론 일부 긍정적 신호도 감지된다. 토요타·혼다·미쓰비시 등 주요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의 통상 마찰이 완화될 경우 임금 조정 가능성을 시사한 데다, 최근 일본 정부가 발표한 경제백서에서도 임금 상승 전환의 조짐이 언급됐다. 이는 일본은행으로 하여금 보다 명확한 긴축 전환을 단행할 수 있는 결정적 근거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실질임금의 구조적 상승이 현실화된다면 이는 단순한 경기 회복이 아닌 '30년 디플레이션 탈출'의 신호로 간주될 수 있다. 반대로 이해관계의 충돌이 표면화될 경우, 그 충격파는 오히려 불확실성을 증폭시킬 공산이 크다.
변수는 관세 리스크다. 이들 기업이 향후 수개월 내 유리한 통상 조건을 확보한다면, 임금 인상에 나설 여력을 동시에 갖출 수 있게 된다. 이는 일본은행이 보다 과감하게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는 신호탄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많은 분석가들이 주목하는 핵심 지표가 관세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그 시점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 중론이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여전히 수치 기반의 점진적 접근을 강조하고 있으며, 일본은행 내부 기류도 급격한 정책 선회를 경계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현실화됐고 정치 구도는 요동치며, 기업들 역시 전환을 앞두고 있지만 이 모든 조건이 동시에 정렬돼야만 일본은행의 결단 실현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