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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약품 대표 기습 강등, 이사회 연기·임종윤 대표 선임 불발 등 원인
손잡은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한미약품 모녀, '형제 측 압박' 본격화
경영권 분쟁 전면전, 임시주총 거부에 모녀 측 '법적 대응' 시사하나
한미약품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이 다시 불붙었다. 형제 측 우군 역할을 하던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돌연 모녀 측으로 돌아선 영향이다. 신동국 회장과 모녀 측이 합세한 대주주 연합이 형제 측에 압박을 강화하고 있는 만큼 혼란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분수령은 내달 임시주주총회로, 여기서 이사회 확대 등 안건이 통과하면 모녀 측에 힘이 크게 실릴 것으로 관측된다.
한미약품 대표 전무로 강등
29일 업계에 따르면 전날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의 직급이 전무로 강등됐다.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 서울 본사가 아닌 지방 지사에 있는 제조본부를 맡게 된 것이다. 창업자 일가의 경영권 분쟁이 기습적인 최고경영진 교체 등 사태로까지 번진 것으로 풀이된다. 박 전 대표는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 측 인사로 꼽히는 인물이다.
당초 한미그룹 경영권 분쟁은 형제 측인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와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의 승리로 마무리되는 듯했다. 지난 3월 한미사이언스 주주총회에서 형제 측이 추천한 후보 5명이 이사회에 그대로 선임되면서다. 당시 사내이사 임종윤 선임의 건은 5,961만4,855주 중 3,114만7,995주가 찬성, 득표율 52.24%를 기록해 보통 결의 요건을 충족했다. 사내이사 임종훈 선임의 건도 3,087만2,384주가 찬성해 득표율 51.78%를 기록했다.
반면 장녀 임주현 한미약품 부회장의 선임 안건은 모두 부결되면서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추천 이사 6명이 모두 과반 득표에 실패했다. 당시 임주현 선임의 건은 5,961만4,855주 중 2,859만709주 찬성으로 출석 의결권 수 대비 47.95%에 그쳐 보통결의 요건을 충족하는 데 실패했다.
이에 따라 지난 5월 임종훈 이사가 먼저 한미사이언스 대표 자리에 올랐고, 곧바로 임종윤 이사도 한미약품 대표에 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경영권 분쟁이 마무리 수순이 접어든 셈이다. 그런데 지난 6월 한미약품 이사회 개최가 불발돼 임종윤 이사가 대표직에 선임되지 못하면서 형제 측의 계획도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시 이사회가 연기된 건 박 전 대표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파악됐다. 박 전 대표가 전무로 강등된 배경이다.
형제 등진 신동국, 재차 불붙은 경영권 분쟁
한미약품의 경영권 분쟁은 앞으로도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형제 측의 손을 들어주며 기꺼이 우군이 돼 준 개인최대주주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모녀 편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최근 신 회장은 모녀 측에 거듭 힘을 싣고 있다. 올해 초엔 모녀 측과 의결권 공동 행사 등 약정을 체결해 대주주 연합을 구성했고, 지난 7월엔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확대를 위한 임시 주주총회를 청구하기도 했다.
현재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는 임종윤·종훈 형제를 포함해 형제 측 인사가 5명, 예전 송 회장 경영 시기 선임된 이사가 4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주주 연합이 새 이사를 1명 더 선임해 현재 이사회 정원인 10명을 채우더라도 5:5로 이사회 의사결정이 교착될 수 있다. 결국 신 회장이 이사회 확대를 요구한 건 모녀 측이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돕겠단 취지에서다. 주총을 통해 이사회 정원을 12명으로 확대하고 모녀 측이 제안한 이사 3명을 추가 선임하면 이사회에서 7:5의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분수령은 내달 개최 예정인 임시주총이다. 임시주총 표 대결에서 승리를 거머쥐는 쪽이 향후 한미약품의 경영권을 주도할 수 있어서다. 현재로선 상대적으로 우호 지분을 더 많이 확보한 대주주 연합 측이 더 유리한 것으로 평가된다. 상법상 특별결의 사항인 정관 변경은 가결을 위해 출석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66.7%)과 발행 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 찬성이 필요한데, 한미사이언스 지분 구조는 6월 30일 기준 대주주 연합 측이 48.19%, 형제 측이 29.07% 정도다.
형제 측 임시주총 거부, 대주주 연합에서 법적 대응 나설 수도
하지만 형제 측이 임시주총 소집 거부 의사를 밝히고 나섰다. 지난 26일 모녀 측이 보낸 내용증명에 회신을 발송해 "회사가 안정을 찾아가는 상황에서 요건도 갖추지 아니한 임시주주총회 소집청구서를 보냈다고 갑자기 경영권 분쟁이 현실화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한 것이다. 대주주 연합을 향해선 "신동국 등 주주들은 경영상 필요에 의한 투자유치 방해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대주주 연합이 내놓은 임시주총 소집 청구서에 명분이 없다고도 강조했다. 형제 측은 "신동국 등 주주가 임시주주총회 소집청구서에 어떠한 명분도 없고 가결 가능성도 낮은 상황에서 '이사회 구성의 유연성 도모를 위해'라는 모호한 사유로 이사의 수를 늘리자는 정관 변경안을 포함시켰다"며 "이사 후보자 특정도 못 한 상태에서 임시주주총회 소집청구서 발송부터 한 의도를 반문할 수밖에 없다"고 일갈했다. 이들 대주주들이 경영권 분쟁 상황을 전제로 제3자배정 유상증자 시 법적 조치를 하겠다는 입장을 전한 데 대해서도 "이는 결국 제3자배정 신주발행·전환사채 발행·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 및 투자유치를 방해하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처럼 형제 측이 강경한 의사를 표출한 건, 앞서 언급했듯 우호 지분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5.53%의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공단과 2.2%의 지분을 보유한 소액주주연대의 표심이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남아 있긴 하나, 국민연금공단이 형제 측의 편을 들어 줄 확률은 거의 없다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평가다. 국민연금공단이 지난 3월 주총에서 형제 측 이사 선임 안건에 모두 반대한 바 있어서다. 소액주주연대의 경우 지난 3월 형제 측 편을 들었지만, 이번 임시주총에선 "주가 부양 의지가 높은 쪽을 지지하겠다"고 밝힌 상황이어서 형제 측을 다시 지지할지 장담할 수 없다. 형제 측이 현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선 임시주총을 거부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던 셈이다.
반면 대주주 연합 측은 여전히 임시주총 개최 의지가 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업계에선 모녀 측이 법적 대응을 이어갈 수 있단 의견이 나온다. 대주주 연합 측이 상법에 따라 법원의 허가를 얻으면 직접 주총을 소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녀 측의 대응이 가시화하면 창업자 일가의 경영권 분쟁은 재차 전면전으로 치달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