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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 후폭풍으로 국정 공백 발생 K-원전·방산 수출, 탄핵 리스크에 흔들 공백 장기화될 시 산업 정책 추진 악영향
우리나라 경제가 탄핵 정국에 빠지면서 현 정부가 성과로 내세웠던 원전과 방산 수출에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국가 간 대형 사업일수록 외교적 신뢰가 중요한데, 계엄 후폭풍으로 대외 신인도가 떨어진 상황에 권력 공백마저 야기되면 대응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체코 원전 협상단 방한
10일 산업통상자원부 따르면 체코 원전 협상단은 9일부터 4박 5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체코 두코바니 원전 사업의 발주사인 엘렉트라르나 두코바니 Ⅱ(EDU II)를 비롯한 현지 규제기관 등이 대표단을 꾸려 한국수력원자력의 품질보증관리 체계를 점검하기 위해 방한한 것으로 전해졌다. 체코 협상단은 지난 9월 한 차례 한국을 방문한 데 이어 수시로 방한해 우리나라 원전 기술을 점검하고 있다.
현재 한수원은 내년 3월 체코전력공사(CEZ)와 최종 수주 계약 체결을 목표로 실무 협상을 진행 중이다. 지난 7월 한수원을 주축으로 한 민관 합동 ‘팀코리아(Team Korea)’는 24조원 규모의 신규 원전 2기(두코바니 5호기·6호기) 건설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바 있다. 당시 또 다른 2기의 추가 건설 수주 가능성까지 예상되면서 이번 선정의 사업 규모가 최대 40~50조원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왔다.
24조원 규모 수출 불안
하지만 현재 원전업계에서는 체코 원전 사업에 대한 회의론이 팽배한 분위기다. 국정 혼란으로 인해 원전 수출 계획이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체코 원전은 윤석열 정부에서 이룬 대표적인 외교 성과로 꼽힌다. 윤 대통령은 지난 9월 페트르 파벨(Petr Pavel) 체코 대통령과 가진 단독 정상회담에서 “최종 계약까지 직접 챙기겠다”고 말하면서 체코 정치인들과 만나 원전 최종 계약 지원을 당부하는 등 원전 세일즈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는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 측에선 저가 수주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원전업계 관계자는 “저가 수주 의혹은 터무니없는 얘기”라며 “정치 싸움에 원전 수출이 발목 잡히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최근 미국 웨스팅하우스와의 지적재산권 분쟁에 따른 국가 간 협상이 중요한 상황에서 국정 리더십 공백에 대한 우려도 큰 상태다.
원전업계에 따르면 체코 정부도 우리나라 정치 상황이 혼란스러운 것을 인지하고, 원전 건설이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을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과거 탈원전과 탈원전 폐기를 반복했던 사례를 들어 정권 교체 시 원전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체코 정부는 예정대로 내년 3월까지 최종 계약을 체결한다는 입장이지만, 한국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며 일정 조율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산도 비상계엄 유탄
계엄 선포에 따른 후폭풍으로 정부가 목표했던 K-방산 수출 200억 달러(약 28조원) 달성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방산 거래 역시 주로 정부와 정부 거래로 이뤄지는 데다 규모도 크기 때문에 국가 간의 신뢰가 상당히 중요하다. 국가 간 방산 거래에서 국책은행을 통해 정부의 금융지원이 뒷받침되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하지만 최근 정치적 불안이 극심해지면서 국제 방산시장에서 한국기업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실제로 방산 관련 업무 전반을 총괄하는 국방부 장관이 공석인 가운데 해외 정상들은 연이어 K-방산 현장 방문을 취소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방한한 사디르 자파로프(Sadyr Zhaparov)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은 KAI(한국항공우주산업주식회사) 생산 현장을 방문해 국산 헬기 수리온(KUH-1)의 수출에 관해 논의하려 했으나 취소하고 조기 귀국했으며, K-방산에 높은 관심을 보였던 울프 크리스테르손(Ulf Kristersson) 스웨덴 총리도 방문 일정을 취소했다.
연내 계약이 유력시됐던 폴란드 정부와의 K2 전차 추가 계약도 체결이 불투명해졌다. 현대로템과 폴란드 정부는 2차 계약의 일환으로 K2 전차 820대 추가 구매 협상을 진행 중이다. 1차 계약분 180대의 4배가 훨씬 넘는 물량으로, 계약 금액은 9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최근 폴란드 정부 측에서 협상 속도를 조절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국내 기업들의 선전 속에 방산 수출 목표 200억 달러 달성을 향해 순항 중인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계엄 악재가 발생한 형국이다.
더 큰 문제는 현 상황이 장기화한 채로 트럼프 2기를 맞는 것이다. 당초 국내 방산 기업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임기가 시작되면 세계 방산시장이 재편되는 만큼 이 과정에서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이 강화될 것을 기대했다. 그런데 비상계엄 선포 이후 정부 신뢰도가 추락하자 이제는 소외될 것을 우려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게다가 트럼프 당선인이 한국의 혼란한 정치 상황을 이유로 자국 물자 우선 구매 정책인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기조를 강하게 주장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 방산 기업을 배제한 채 자국 중심의 방산 공급망 회복에 집중할 경우 국내 방산기업의 시장 점유율은 축소될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