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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EU 집행위에 팩트체크 도입 거부 서한 보내 이달 초 메타도 제3자 팩트체커 정책 폐지 예고 각계 팩트체크 관련 입장 차이 두드러져, 곳곳에서 '잡음'
구글이 검색 결과와 유튜브 동영상에 팩트체킹 기능을 추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럽연합(EU)에 전달했다. 앞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모기업인 메타가 '팩트체커' 정책 폐지를 선언한 이후 약 2주 만이다. 구글은 EU 측이 요구한 팩트체킹 도입이 자사 서비스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 "팩트체킹, 서비스에 부적합"
22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켄트 워커 구글 수석 부사장은 전날 EU 집행위원회에 보낸 서한에서 ‘2022 허위 정보에 대한 실행 강령’에 포함된 팩트체킹 도입이 구글 서비스에 적합하거나 효과적이지 않다며 이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U의 해당 강령은 2018년 처음 제정된 자율 규약을 강화한 것으로, 기업들에 팩트체킹 기능 탑재를 포함한 다양한 허위 정보 대응 방안을 자발적으로 약속하도록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구글은 검색 결과나 유튜브 동영상에 팩트체킹 결과를 표시하고, 알고리즘에도 이를 반영할 것을 요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결정과 관련해 켄트 워커 부사장은 구글의 기존 정책이 이미 효과적이며, 지난해 전 세계 선거 기간 동안 구글의 콘텐츠 조정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지난해 새로 추가된 동영상에 메모를 추가하는 기능이 “상당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 기능은 사용자가 콘텐츠에 자유롭게 의견을 달 수 있도록 하는 기능으로, 소셜미디어(SNS) 엑스(X, 옛 트위터)의 ‘커뮤니티 노트’와 유사한 형태로 작동한다.
메타도 '팩트체커 폐지' 선언
메타 역시 최근 구글과 유사한 입장을 밝힌 상태다. 지난 6일 메타는 미국에서 제3자가 사실 관계를 규명하는 '팩트체커' 정책을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메타의 블로그 게시물과 함께 공개된 영상을 통해 "제3자의 점검이 너무 정치적으로 편향돼 있다"며 "표현의 자유에 대한 우리의 근본으로 돌아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시장에서는 저커버그 CEO의 이 같은 결정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와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라는 평이 나왔다. 앞서 트럼프 당선인과 공화당 내 친트럼프 인사들이 메타의 팩트체킹 정책이 우파의 목소리를 검열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출해 왔기 때문이다. 실제 메타의 팩트체커 정책 폐지 발표 이후 트럼프 당선인은 기자회견에서 "저커버그 CEO의 결정에 감명을 받았다"며 "(메타가) 많은 진전을 봤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EU 및 영국의 입법부 인사들은 메타의 결정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주요 이슈와 관련된 미국발 가짜뉴스가 온라인을 타고 전 세계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유럽의회의 발레리 하이어 의원은 "유럽은 결코 조작과 허위 정보를 사회의 기준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면서 "메타는 미국에서 사실 확인을 포기함으로써 심각한 전략적, 윤리적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하원의 치 온우라 과학기술위원장도 "우려스럽고 꽤 무섭다"며 "사람들은 가짜 정보에서 오는 해로운 영향에서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팩트체크는 '검열'인가
이처럼 곳곳에서 팩트체크와 관련한 잡음이 발생하는 것은 각계의 팩트체크에 대한 '시각'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EU 등 팩트체크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진영은 허위 정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피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허위 조작 정보의 확산은 건강, 안전 등의 아젠다에서 시민을 위험에 빠뜨리고, 양극화를 촉진해 민주주의적 가치를 훼손하는 등 유해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지나친 팩트체크가 검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지난해 6월 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IFCN)는 팩트체크 검열에 대응하기 위한 '사라예보 선언'을 발표하고, "팩트체크는 최근 몇 년 동안 온라인 검열로 공격을 받아왔다"며 "많은 팩트체커가 언어폭력, 정치적 압력, 물리적 폭력 등의 대상이 됐다"고 지적했다. 해당 선언문에는 SNU(서울대) 팩트체크센터 등 80개국 130개 팩트체크 기관이 공동 서명했다.
각계의 입장 차이로 인한 팩트체크 관련 갈등 사례는 국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앞서 지난 2023년 9월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논란을 빚은 가짜뉴스 및 허위 정보 보도와 관련해 KBS, MBC, JTBC 등 지상파, 종편·보도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등의 팩트체크 검증 시스템에 대해 실태 점검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같은 해 3월 뉴스타파가 단독 보도한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의 '김만배 씨 인터뷰'를 인용 보도한 방송사들의 팩트체크 검증 구조 전반을 살펴보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당시 관련 업계에서는 이 같은 정부의 조치가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 관계자는 "무엇을 가짜 뉴스로 정의할지부터가 논란거리"라며 "언론사가 허위 정보를 보도했을 시 '고의성' 판별이 중요한데, 권력에 의해 가짜 뉴스에 대한 자의적인 판단이 이뤄질 수 있는 이상 정부 기관이 고의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진영의 이익에 반하는 뉴스를 '가짜 뉴스'로 낙인찍는 정치 풍토에서는 팩트체크가 '검열'로 이어지며 언론의 자유가 크게 훼손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