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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열사 띄우기 끝났다, TRS부터 상법까지 ‘대기업 개편’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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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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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TRS 부당지원 단속 나서
‘주주 보호 의무’ 상법 개정안 통과
분할→상장→지분 희석 구조 막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총수익스와프(TRS)를 이용한 계열사 부당지원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여기에 정부 또한 상법 개정을 통한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명문화하면서 대기업의 ‘쪼개기 상장’ 관행에 경고장을 날렸다. 이는 대기업 구조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조치로, 그간 계열사 지원에 활용되던 편법 수단이 하나둘 차단되면서 시장 내 자금조달 전략과 지배구조 재편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더 이상 단기적 경영권 방어나 상장 차익에 기대기 어려운 환경에서 기업들은 향후 구조 개편의 명분과 실익, 그리고 시장 신뢰를 최우선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TRS·자금보충약정 등 우회지원 방식 정조준

18일 정부에 따르면 공정위는 최근 외부에 ‘채무보증 제한제도 우회 실태조사’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상호출자가 제한된 46개 대기업집단 산하의 1,900여 개 계열사를 대상으로 계열사 간 거래 구조와 자금흐름 전반을 점검하겠다는 취지다. 주요 점검 대상은 TRS, 특수목적법인(SPC), 자금보충약정 등 우회적인 방법을 통해 사실상 계열사 보증 효과를 내는 거래들이다.

이번 대대적인 조사는 CJ그룹 사례가 도화선이 됐다. CJ그룹이 표면적으로는 금융사가 투자자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량 계열사가 모든 위험을 떠안는 형태로 부실 계열사를 부당 지원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CJ는 각각 2013년과 2014년에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CJ건설과 시뮬라인의 자금 조달을 위해 우량 계열사인 CJ와 CGV를 이용한 TRS 계약을 맺은 바 있다. 이들 계열사가 발행한 영구전환사채를 금융사가 인수하고, 손실이 발생할 경우 CJ와 CGV가 이를 대신 부담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 CJ건설과 시뮬라인은 시중보다 낮은 금리로 총 650억원을 조달할 수 있었고, 실질적인 신용위험은 모두 CJ와 CGV가 감수했다. 공정위는 이처럼 ‘우량사가 부실사를 대신 지원하는 효과’가 있었음에도 외형상 금융 투자처럼 꾸며졌다는 점에서 계열사 간 부당 지원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시정명령과 함께 시정명령과 과징금 65억4,100만원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CJ그룹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던 지난해 말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적용되는 탈법행위의 유형 및 기준 지정고시’ 제정안을 마련하는 등 제도 보완에 나섰다. 탈법행위 유형을 구체화해 감독의 실효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먼저 공정위는 TRS 계약 중 사실상 채무보증과 유사한 효과가 생긴다면 이를 위법으로 간주했다. 기초자산 파생상품에 대기업집단 계열사가 발행한 채무증권(사채)이 포함된 경우와 신용연계채권, 신용부도 스와프가 이에 해당한다는 설명이다.

금융기관뿐 아니라 SPC도 거래 대상자에 포함했다. 대기업집단이 금융기관과 TRS를 거래하는 것을 넘어 금융기관이 SPC를 중간에 두고 거래하는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을 고려한 조치다. 다만 주식이나 수익증권을 기초자산으로 설계된 TRS 등 파생상품은 탈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주가 변동 등 리스크를 고려하면 이는 채무보증 효과가 미미하다는 이유에서다. 또 계약 기간 내 전환권이 행사된 전환사채(CB)도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공정위는 이 같은 내용의 제정안이 시행을 앞둔 만큼 이번 용역을 통해 TRS 등 거래의 계약 구조, 상대방, SPC 설립 여부, 공시 여부, 금액 및 거래 조건 등을 실태 조사하고 과거·현재의 우회 지원 사례까지 함께 발굴하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자금보충약정처럼 SPC에 대한 지급 책임을 명시한 경우, 그 실질이 계열사 간 보증과 다를 바 없는지 면밀히 조사할 예정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TRS뿐 아니라 CLN, CDS 등 파생상품 전반에서 규제 사각지대를 찾고, 고시·법령 개정을 검토할 계획”이라며 “실태조사 결과에 따라 추가 제재 가능성도 열어둔 상태”라고 밝혔다.

이사의 주주충실의무·총주주 이익 보호 의무 명문화

공정위의 제재 움직임과 더불어 정부는 법적 기반 강화를 위해 상법 개정안을 병행 추진 중이다. 지난 15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해당 개정안은 이사의 주주충실의무를 명시하고, 기존 ‘회사 이익’ 우선 원칙을 ‘회사와 주주의 이익’으로 확대했다. 이는 경영진이 그룹 전체 이익이라는 명목으로 개별 계열사를 편법 지원하던 관행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나아가 기업분할 및 유상증자 과정에서 일반주주 이익이 침해되는 경우, 이사의 책임을 묻는 근거가 마련됐다고도 볼 수 있다.

예컨대 상법 개정안 시행 이후 제삼자 배정 신주발행을 결의하는 이사는 회사의 이익뿐만 아니라 주주의 이익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제삼자 배정 자체가 전면적으로 금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회사는 물론 주주의 이익도 함께 고려해야 하는 만큼 제삼자 배정 시 희석화 효과에 따른 기존 주주의 불이익이 어느 정도인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종전처럼 회사의 경영상 필요를 이유만으로 만연히 제삼자 배정을 추진했다가는 충실의무 위반에 따른 각종 법적 책임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비교적 넓은 범위에서 허용됐던 이사의 재량권이 훨씬 좁아지는 셈이다.

법조계와 경제계는 상법 개정과 공정위의 움직임이 동시에 이뤄진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는 대기업 지배구조 전반에 대한 당국의 구조개선 요구가 강하게 표출된 결과란 분석이다. 특히 정부가 직접 나서 주주 보호를 명문화하는 것은 국내 자본시장에서 ESG와 거버넌스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방증으로도 해석된다. 이 같은 흐름이 단기적으로는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시장 신뢰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시각이다.

쪼개기 상장 및 계열사 지배구조 둘러싼 비판 여론

지금까지 TRS 계약을 통한 자금 지원이나 상호출자 구조를 통해 지주사 체계를 유지하던 대기업들로서는 오랜 시간 관행처럼 유지해 온 지배전략 전반의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계열사 간 사적 연대 책임을 공공연히 인정받던 시대가 끝나고, 이제는 개별 법인의 자율성과 책임이 강조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흐름이다.

핵심은 물적분할을 통한 쪼개기 상장 관행에 있다. 한국거래소에 의하면 2020년부터 지난달 24일까지 기업 분할 공시는 총 206건으로 이 중 172건(83.5%)이 물적분할이었다. 반면 인적분할은 34건에 그쳤다. 이렇게 물적분할된 자회사 중 상당수는 증시의 문을 두드렸다. 신한투자증권의 조사에서 한국 유가증권시장(코스피) 내 중복 상장 비율은 8.5%로 미국(0.5%), 일본(6.1%), 프랑스(2.2%) 등 주요국보다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이는 물적분할이 단순한 조직 개편에 그치지 않고 실제 쪼개기 상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쪼개기 상장 논란을 일으킨 사례로는 HD현대마린솔루션이 꼽힌다. HD현대마린솔루션은 2016년 HD한국조선해양(당시 현대중공업)에서 선박 사후관리(AS) 부문을 물적분할해 설립됐다. 이후 그룹 재편을 거쳐 현재는 HD현대가 지분 55.32%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지난해 5월 8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HD현대마린솔루션은 공모가(8만3,400원) 대비 약 97% 오른 16만3,900원에 마감하며 큰 상승세를 보였지만, 같은 날 모회사 HD현대의 주가는 전일 대비 2.19% 하락한 7만4,500원에 장을 마쳤다.

이는 2022년 1월 LG화학에서 배터리 사업부가 물적분할해 상장한 LG에너지솔루션의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한때 100만원이 넘었던 LG화학 주가는 핵심 사업이 빠져나간 후 줄곧 20만원대에 머물고 있다. 기업이 투자 유치와 경영권 방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물적분할을 통한 중복 상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가치 희석의 피해는 고스란히 소액주주들의 몫으로 남겨졌다.

이번 공정위 조치와 상법 개정은 이러한 행태에 경종을 울리는 동시에 법적으로 이사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 사실상 쪼개기 상장을 억제하려는 의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명문화함으로써 자회사 상장이 모회사의 지배력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거나 주주 가치 훼손으로 이어지는 경우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이는 곧 기업 입장에서 단기 자금조달이나 경영권 방어 등 목적보다 구조 개편의 명분과 실익, 그리고 시장 신뢰 확보라는 장기 전략에 보다 주력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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