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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업체들, 향후 실적 가이던스 재검토 중국, 연간 30% 성장하던 시대 지났다 중국에서의 매출 회복 기대치 일제히 축소
프랑스 주류업체 페르노리카와 덴마크 맥주회사 칼스버그가 올해 실적 전망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청년 실업과 부동산 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중국의 소비 지출 부진이 중국 정부의 경제부양에도 큰 변화가 없어 올해 전망 역시 암울한 상황이다.
칼스버그·페르노리카, 中 소비자 수요 회복 조짐 없어
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칼스버그의 야콥 아루프 안데르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중국에서 수요 침체가 이어졌고 앞으로도 어려움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 경제에 뚜렷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며 “이에 대해 논의하기에 너무 이르다”고 말했다. 중국은 칼스버그의 최대 시장이다.
칼스버그는 지난해 중국 맥주 시장이 4~5% 축소한 것으로 추산했으며 중국 내 음식점 등에서의 판매가 약세를 보였다고 밝혔다. 다만 안데르센은 8일간의 중국 춘절(설) 연휴를 앞두고 도매업체와 소매업체들이 재고를 비축한 점은 고무적이라고 전했다. 그는 “소비자 판매가 어떻게 되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페르노리카는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춘절 연휴 동안의 수요와 주류 선물이 크게 감소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지난 분기에 중국에서의 매출이 25% 급감했다고 전했다. 미국 매출은 7% 감소했다. 페르노리카는 앞서 올해 매출이 “완만한 성장”을 이룰 것으로 전망했지만 이날은 낮은 한 자릿수로 하향 조정했다. 전망치 재검토의 이유로 극심한 지정학적 불확실성을 들었다.
지난해 주류 업계는 예년보다 더 씁쓸한 한 해를 보냈다. 한국과 미국을 비롯해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일본, 중국 등 주요국 증시에 상장한 주류 관련 종목 30여 개를 살펴보면 지난해 디아지오, 페르노리카, 레미 코인트로, 캄파리 같은 글로벌 대형 주류 기업 주가는 각각 상장한 주가지수보다 최대 40%포인트 이상 더 하락했다.
'中 국주' 마오타이도 휘청, 시총 1위 자리도 내줘
이들 기업은 세계적인 주류 소비시장 가운데 한 축으로 꼽히는 중국에서 술 수요가 줄어들자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중국 내수 시장도 마찬가지다. 가파른 경제 성장과 함께 몸값을 높여오던 중국의 '국주' 마오타이마저 추락을 면치 못하고 있는 형세다. 마오타이 주가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하락세를 지속했고, 외국인도 일제히 매도 행렬에 동참했다. 외국인 지분율은 계속 줄고, 마오타이를 보유한 펀드 수는 지난해 1분기 640개에서 2분기 481개로 감소했다. 시가총액 1위 타이틀도 중국공상은행에 다시 내줬다.
까다로운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마오타이는 숙성 기간만 5년에 이른다. 이에 마오타이 가격은 중국이 빠른 경제 성장기를 거치면서 계속 올랐다. 희귀한 제조법으로 경쟁사들이 모방하기 어려운 데다 희소성도 높아 명품 브랜드 샤넬처럼 꾸준히 오름세를 보였다. 또한 마오타이를 사놓으면 훗날 돈을 벌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재테크 수단으로도 활용됐다. 중국 전당포에선 마오타이를 받고 현금을 빌려주기도 했을 정도다.
하지만 중국 경제가 둔화하자 소비자들의 지갑이 얇아지기 시작했고, 이는 최고급 주류의 수요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됐다. 개인 수요가 위축된 것뿐 아니라 마오타이가 자주 소비되는 정치, 사회적 모임이 급격하게 줄면서 오히려 공급이 남아도는 현상까지 벌어졌다. 이에 대해 블룸버그통신은 “마오타이는 중국 주식 시장의 대표주라는 것 외에도 중국 경기 동향의 바로미터(척도)로 여겨져 왔다”며 “마오타이 가격이 떨어진다는 건 중국의 소비 회복이 아직 멀었다는 의미”라고 진단했다.
에스티로더·로레알 등도 시름
이는 주류 시장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중국 소비시장이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면서 글로벌 소매업체들의 시름도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6일 로레알은 지난해 4분기 110억8,000만 유로(약 16조6,3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시장조사업체 LSEG가 집계한 전문가 예상치(111억 유로)에 못미치는 금액이다. 중국 시장에서 약세를 보인 탓에 북아시아 매출은 3.6% 감소했으나 나머지 모든 지역에서는 매출이 증가했다. 니콜라 히에로니무스 로레알 CEO는 올해 초와 중국 설날 매출이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지만, 올해 중국에서의 매출 회복은 기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시장이 연간 30% 성장하던 시대는 확실히 지나갔다”며 “4~5% 성장할 수 있다면 매우 긍정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럭셔리 소매업체 에스티로더도 아시아 면세점 사업의 부진과 중국 및 한국의 소비자 심리 위축 등으로 부진한 실적에 시달리고 있다. 에스티로더는 오는 3월 31일로 끝나는 이번 분기에 매출이 10~12%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블룸버그가 조사한 애널리스트들의 평균 추정치인 6.8% 감소 전망을 넘어서는 수치다. 에스티로더는 매출 부진을 극복하기 위한 구조조정 일환으로 최대 7,000명의 직원을 감원할 계획이다.
캐나다구스 홀딩스 역시 중화권 매출이 전분기 5.7% 증가에서 4.7% 감소로 전환됐다. 캐나다구스 홀딩스는 2025년 매출도 이전과 비슷하거나 한 자릿수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럭셔리 브랜드인 베르사체와 지미추, 마이클 코스 등을 보유한 카프리홀딩스의 CEO인 존 아이돌 또한 2025회계연도에서 중국 매출이 상당히 하락할 것이라고 밝혔고, 치약 제조사 콜게이트-팔모리브의 노엘 월리스 CEO도 분기 매출이 예상치를 달성하지 못하자 “중국은 단기에서 중기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보낼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