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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 개발→SMIC 생산→딥시크 활용
고성능·저비용 앞세운 AI 모델 속속 등장
‘훈련’ 대신 ‘추론’ 고도화 내세운 화웨이
전 세계적인 인공지능(AI) 열풍에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가 고도로 숙련된 AI 모델을 공개한 가운데, 이를 구동하는 AI 반도체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애초 업계에서는 딥시크의 추론 모델 R1에 엔비디아 ‘H100’이 활용된 것으로 추정했지만, 화웨이 ‘어센드910C’를 기반으로 구동 중이라는 사실이 전해지며 화제가 됐다. 현재 어센드910C의 성능은 H100의 60%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화웨이 클라우드, 딥시크 모델에 최적화
7일 업계에 따르면 딥시크 AI 모델 R1의 추론 능력을 고도화하는 데 화웨이의 어센드910C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개발 초기 데이터를 학습하는 과정에는 중국 시장을 겨냥해 제작된 엔비디아의 AI 가속기 H80이 쓰이고, 추론 역량을 높이는 데는 화웨이 어센드 시리즈가 활용된 것이다. AI 애널리스트 알렉산더 도리아는 화웨이 클라우드가 딥시크 모델에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을 근거로 이 같은 분석을 내놨다.
화웨이 어센드 시리즈는 중국 반도체 굴기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중국 정부가 대대적으로 자금을 투자해 육성 중인 AI 모델을 겨냥해 설계된 제품이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의 규제로 화웨이가 대만 TSMC의 첨단 공정을 활용하지 못하게 되면서 현재는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 SMIC에서 어센드 시리즈를 생산하고 있다.
그간 중국은 화웨이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청사진을 좇아 왔지만, 여전히 엔비디아에 대한 의존도는 상당했다. 대량의 데이터 학습에 필요한 엔비디아의 고성능 반도체를 대체할 제품을 개발하지 못한 탓이다. 딥시크 관계자 또한 “중국 반도체 업계는 20년 이상 구축된 엔비디아 생태계에 익숙해져 있다”며 “화웨이가 하드웨어와 함께 소프트웨어를 개선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한 바 있다.
화웨이 등에 업은 中 빅테크들 AI 경쟁 가세
화웨이의 어센드910C 칩이 엔비디아의 대안으로 입지를 다질 경우, AI 컴퓨팅 시장에서 중국산 하드웨어의 영향력은 대폭 확대될 전망이다. 화웨이 어센드 시리즈는 비록 훈련 측면에서는 엔비디아 H100만큼 강력하지 않지만, 응답 생성에는 충분한 성능을 발휘해 비용 절감 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딥시크가 V3 모델의 GPT-4o 성능을 구현하는 데 투입된 자금은 557만6,000달러(약 81억원)로 경쟁사 오픈AI의 GPT-4 개발비(약 1억 달러·1,450억원)과 비교해 5.5% 수준에 그친다.
이는 중국 주요 빅테크들이 잇따라 파격적인 가격으로 고성능 AI 모델을 선보일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일례로 알리바바는 올해 초 ‘큐원 2.5-맥스(Qwen 2.5-Max)’를 공개하며 AI 기술 경쟁에 가세했다. 해당 모델은 20조 토큰 규모의 데이터로 학습돼 텍스트·이미지·음성을 통합 처리하는 게 특징이다. 알리바바는 큐원 2.5-맥스가 주요 벤치마크에서 GPT-4o와 라마3.1 405B를 능가하는 성능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바이두 또한 지난해 7월 ‘어니 4.0 터보(ERNIE 4.0 Turbo)’ 모델을 공개하며 AI 시장 진출을 서둘렀다. 직전 모델 대비 추론 처리량을 48%가량 향상한 어니 4.0 터보는 복잡한 질의응답 속도를 크게 개선해 눈길을 끌었다. 올해 상반기 어니 5.0 출시를 예고한 바이두는 추론 효율성 30% 이상 향상, 10개 언어 추가 지원, 화웨이 어센드910C 칩과의 호환성 강화 등을 주요 특징으로 내세웠다.
다만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AI 기술 자립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엔비디아와 AMD, 인텔 등 AI 가속기를 생산하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모두 4㎚ 이하 공정을 활용하고 있지만, SMIC는 미국의 규제로 7㎚ 이하 공정에 필수인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수입하지 못하면서 아직 기술력이 7㎚에 머무르고 있는 탓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AI는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생태계도 구축해야 하는 만큼 아직 (중국의) 완전히 독립은 힘든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美 제재 속 ‘선택과 집중’ 주효할까
업계는 중국 기업들이 미국 정부의 강력한 제재 속에서도 AI 기술 고도화에 조금씩 성과를 보이는 만큼 기술 자립 또한 멀지 않았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2019년 트럼프 1기 행정부는 화웨이를 ‘미국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공식 지정하고, 한국과 일본, 유럽 등 동맹국들이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는 것을 막고 나섰다. 이후 바이든 행정부 역시 화웨이가 미국산 첨단 부품과 기술을 사용할 수 없게 했고,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만 TSMC 등이 화웨이에 첨단 반도체를 수출하지 못하도록 했다. 최근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서도 이 같은 기조는 이어지고 있다.
화웨이는 첨단 컴퓨팅 자원이 많이 필요한 AI 훈련 영역보다는 상대적으로 적은 컴퓨팅 자원으로도 경쟁 가능한 추론 영역에서 기술을 발전시켜 엔비디아의 아성을 무너뜨린다는 계획이다. 훈련은 AI 모델을 학습시켜 패턴을 이해하고 데이터에 대한 통찰을 얻는 작업인 반면, 추론은 이를 통해 훈련된 모델로 새로운 데이터를 처리하고 예측 또는 결론을 도출하는 작업을 말한다.
AI 모델 훈련 필요성이 적어지고 챗봇과 같은 AI 애플리케이션이 더 널리 보급되면, 추론 작업의 수요가 더 많아질 것이란 게 화웨이의 관측이다. 조지오스 자카로풀로스 화웨이 수석 AI 연구원은 “AI 모델에서 훈련은 매우 중요하지만, 필요한 시기가 제한적이다”라고 진단하며 “이 때문에 화웨이는 추론에 집중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더 많은 소비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