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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 결원 속출, 등록금 수입 급감 대학 생태계 전반으로 번지는 재정 충격 美 대학들, 재정 타격에 대응 국면 진입

미국 대학들이 오는 가을 학기에 전년 대비 40%에 달하는 유학생 감소를 겪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는 올해 초 연구기관들이 전망했던 ‘완만한 증가 혹은 현상 유지’ 시나리오를 뒤집는 급격한 하향 조정이다. 이 같은 유학생 감소는 미국 경제에 막대한 손실을 입히는 것은 물론 수만 개 규모의 관련 일자리도 사라지게 할 전망이다. 단순한 학문적 다양성의 훼손을 넘어 대학 재정의 근간을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NAFSA, 유학생 40% 급감 전망
3일(현지시간) 국제교육자협회(NAFSA)의 ‘2025년 가을학기 유학생 전망 및 경제적 영향 보고서(Fall 2024 Outlook)’에 따르면, 2025~2026학년도 가을학기 미국 내 유학생 수는 전년도보다 최대 8만 명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유학생 총원은 100만7,956명 수준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종료 직후인 2022~2023학년도보다 5만 명 적고, 코로나 여파로 유학생 유입이 급감했던 2021~2022학년도에 비해서도 6만 명 증가한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NAFSA는 이 같은 유학생 감소로 미국 경제가 기존 예상치(461억 달러·약 63조8,000억원) 대비 70억 달러(약 9조7,000억원)의 손실을 입을 것이라 전망했다. 이는 단순한 등록금 손실에 그치지 않는다. 기숙사비, 식사 플랜, 학생 지원 서비스, 그리고 유학생들이 만들어 내는 지역경제 전반의 소비 활동까지 포함된 수치다. 특히 재정 여유가 부족한 소규모 사립대나 지역 공립대는 교직원 감축, 학과 통폐합, 심지어 폐교 가능성까지 마주할 수 있다.
미국 유학생들은 대부분 재정 지원 없이 전액 등록금을 납부한다. 이들의 기여는 내국인 학생에 대한 장학금, 교수진 급여, 연구 프로그램, 시설 투자 등 대학 재정의 핵심 축을 구성한다. 이런 상황에서 유학생의 유입이 끊기면 자금력이 풍부한 대형 대학조차 외국인 학생 유입을 전제로 구축한 재정 모델을 조정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대학이 위치한 지역사회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미 주변 서점, 식당, 아파트 임대 시장, 교통 서비스 등 학생 소비에 의존하는 자영업자들은 눈에 띄는 매출 하락을 겪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대학 캠퍼스 내 위기만큼이나 지역경제에도 유학생 감소의 충격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학들은 잇따라 비상대응 체제에 돌입했다. 일부는 기금(Endowment)을 끌어다 쓰기 시작했고, 신규 채용을 중단하거나 학비 할인정책을 재조정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다만 만약 유학생들 유입 공백이 내년까지 이어질 경우, 현재의 단기 처방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미 미 고교 졸업생 수가 구조적으로 감소하는 상황에서 유학생 이탈은 또 다른 축의 붕괴를 의미한다.

트럼프, 국제 교류에 비우호적 정책 강화
이 같은 위기는 이미 예견된 바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지속적으로 국제 교류에 비우호적인 정책 기조를 강화해 왔다. 비자 요건 강화와 외국인 영향력에 대한 경고 메시지는 사실상 분명한 신호를 보낸 셈이다. 이렇다 보니 한때 미국 유학에 적극적이던 유학생들은 이제 캐나다, 영국, 아시아 주요 대학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보다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환경 때문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입학 허가를 받은 유학생 중 등록을 연기하거나 아예 포기하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비자 발급 지연, 안전 우려, 환영받지 못한다는 인식 등이 주요 사유로 꼽힌다. 이는 학부와 대학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때 유학생 비중이 높았던 전문직이나 기술 분야 프로그램들도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한 경제적 충격은 일률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유수의 주립대나 아이비리그처럼 자산 규모가 큰 대학은 일정 부분 타격을 흡수할 여력이 있다. 그러나 인지도가 낮거나 외곽 지역에 위치한 대학들은 방어막이 부족하다. 이들은 주정부의 보조금 감소, 불확실한 기부금 등으로 발생한 재정 공백을 유학생 등록금으로 메워왔다. 그런 만큼, 학과 축소, 학생 지원 서비스 감축 혹은 타 대학과의 합병 등 중대 결정을 내려야 할 수도 있다.
갈림길에 선 미국 대학
장기적으로 더 우려되는 것은 미국 고등교육의 글로벌 위상 자체가 약화된다는 점이다. 현시점 더 이상 미국 대학에 발 딛지 않고도 세계의 수재들이 학문 경력을 쌓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 흐름은 미국의 소프트파워 약화, 교육을 매개로 한 문화적 영향력 축소로 직결된다. 유학생 감소가 재정 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대학 교육의 정체성과 사명을 정면에서 흔드는 구조적 전환이라는 얘기다.
수십 년간 미국 대학들은 국제 교류를 통해 다양성과 혁신의 토대를 다져왔다. 다국적 교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낳고, 글로벌 감각을 키우며, 학생들을 미래의 리더로 성장시키는 핵심 기반이었다. 유학생은 그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이 세계화의 기반이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 정책 변화 없이 현재의 추세가 계속 이어질 경우 미국은 더 이상 유학 목적지로서의 매력을 유지하지 못할 공산이 크다.
이 같은 우려는 대학 내부에서 정체성에 대한 회의론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국제성을 토대로 성장한 기관이 그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다양한 문화 배경을 기반으로 구성된 연구팀이 사라질 때 학문 경쟁력이 지속 가능하느냐에 대한 질문은 입학처, 연구본부, 기숙사 행정팀에 이르기까지 모든 조직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렇듯 지금의 상황은 국가 정책과 교육 사명 간 충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미 연방정부는 이를 국가 안보나 경제적 판단이라 주장하지만, 대학 측은 미국 고등교육의 글로벌 경쟁력을 훼손하는 조치로 받아들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학생 유입 감소 흐름이 일시적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고착될 경우 글로벌 동문 네트워크는 약화되고, 연구 협업은 타국으로 이동하며, 국제성을 기준으로 반영되는 대학 랭킹은 하락세를 보일 것이라 우려한다. 이와 함께 고등교육이라는 국가의 전략적 자산 역시 조용히 쇠락의 길을 걸을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