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미국, 관세로 ‘차입 비용 줄이고 금리 인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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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수입 활용 따라 통화정책 영향 단기 채권 비중 높이면 ‘장기 금리 인하’ 부채 상환 비용 줄이고 금리 인하도 가능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미국 관세를 둘러싼 논쟁의 대부분은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효과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 숫자를 보니 영향의 범위가 생각보다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가 관세 수입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국채에 대한 기간 프리미엄(term premium, 장기 국채 보유에 대해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추가 수익률)이 바뀌고, 이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eral Reserve, 이하 연준)의 통화정책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미국 관세 수입, 최대 ‘연간 693조원’
지난 7월 미국의 관세 수입은 300억 달러(약 42조원)로 전년 동기 대비 3배가 증가했다. 이런 추세라면 연간 관세 수입이 2,000~3,000억 달러(약 277~416조원)는 될 것이고, 더 낙관적인 전망에 따르면 5,000억 달러(약 693조원)에 이를 수도 있다. 물론 2조 달러(약 2,772조원)에 달하는 재정 적자를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미 재무부의 자금 조달 방식을 바꿀 가능성은 충분하다. 즉 단기 국채(short-term bills)와 장기 쿠폰 채권(long-term coupon bonds, 이자 지급 의무가 포함된 장기 채권) 중 어느 것에 더 많이 의존하느냐에 따라 장기 금리와 차입 비용은 물론 학교 및 대학의 건설 비용까지 영향을 받는다.
관세가 물가를 올리는 것은 분명히 맞다. 연준은 이미 코어 인플레이션(core inflation, 소비자물가 인플레이션에서 변동성이 심한 식품 및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것)을 0.1%P 올려잡고 있으며 공급망이 적응하면 더 높은 물가 상승이 예상된다.
관세 활용해 ‘장기 금리 축소’ 가능
하지만 관세는 연방 정부 예산을 늘려 채권 발행 수요를 줄이는 효과도 있다. 즉 자금 여유가 생기면 단기 채권 발행을 늘리고, 장기 국채를 줄여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기간 프리미엄이 내려간다. 이는 주택 담보 대출 및 지방 정부 채권 포함 경제 전반의 차입 비용을 낮춰 연준이 수요 급등을 수반하지 않고 금리를 내릴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한다.

주: 실업률, 개인소비지출 물가지수, 연방 자금 금리(보기 왼쪽부터)
하지만 관세 수입이 최근 국회를 통과한 2017년 감세법 연장에 쓰이면 계산이 달라진다. 세금 감면이 이대로 유지되면 재정 적자가 향후 10년간 2조 8,000억 달러(약 3,881조원)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쿠폰 채권 발생이 지속될 것이고, 장기 채권 수익률과 부채 상환 비용도 높게 유지돼 사실상 연준의 통화정책은 발이 묶인다.

주: 기간 - 2016년 1월~2025년 1월 / 1년 치, 5년 치, 5년 후 5년 치(보기 왼쪽부터)
‘세금 감면 조치’ 유지하면 기대효과 사라져
관세 효과를 유동성 측면에서 다시 예상해 보자. 최근 연준의 양적 긴축(quantitative tightening, 중앙은행이 자산 매각을 통해 통화 공급을 축소)이 끝나가고 있고, 한때 잉여 현금을 끌어들이던 역환매조건부 채권(reverse repo facility, 중앙은행이 환매를 약속하고 채권을 판매해 현금을 흡수)의 수익률이 단기 채권 수익률에 자리를 내줬다. 여기에 재무부 일반계정(Treasury’s General Account)에는 최대 5,000억 달러(약 693조원)의 현금이 쌓이고 일반은행의 준비금은 줄어든다. 시중에 유동성이 귀해진 상황에서 재무부가 발행하는 단기 및 장기 채권의 비율이 조금만 바뀌어도 자금 시장은 심각한 영향을 받는다.
여기서 관세 수입을 활용해 단기 국채 발행을 늘리면 머니 마켓 펀드(money market fund, 만기가 짧고 신용 위험이 적은 부채 증권에 투자하는 뮤추얼 펀드)가 수익률이 높은 단기 채권에 몰리면서 시중에 유동성이 강화되고 장기 채권 수익률은 내려간다. 당연히 연준이 금리 인하를 고려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 하지만 반대로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장기 쿠폰 채권 발행을 지속하면 준비금 부족 현상이 다시 나타나고 장기 금리도 고점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미국 재무부 선택에 달려
얼핏 보면 거리가 먼 이야기 같지만 이는 학교와 교실에도 직접 영향을 준다. 높은 장기 금리는 채권을 활용한 교내 시설 공사비와 초중등 학교 당국의 자금 조달 비용을 올리고 대학이 운영하는 기부금의 미래 가치에까지 악영향을 준다. 따라서 재무부가 단기 채권 비중을 높여 기간 프리미엄을 낮춘다면 교육기관들의 채용과 장학금, 디지털 교육 투자 등에 여유가 생긴다. 그렇지 않으면 시설 공사가 지연되고 교육 과정이 축소되는 반대 효과가 일어날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지적돼 온 대로 관세는 역진세 성격이 강하고, 변동성이 크며, 천문학적 재정 적자를 다스리기에는 규모도 작다. 하지만 관세와 저소득층에 대한 세금 감면 조치를 묶으면 역진세 효과를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고, 관세 수입을 단기 국채 발행과 연계하면 장기 금리 인하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 이를 재무부 분기 차입 계획 발표(quarterly refunding announcements)에 반영하면 효과는 더 커진다. 정부가 기간 프리미엄을 낮추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확신을 시장에 주는 것이다.
최근 연준의 추산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은 2% 근처에 수렴하고, 금리는 3% 전후에서 안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기간 프리미엄의 축소를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재무부가 관세를 장기 채권 축소가 아닌 감세 유지에 이용한다면 장기 수익률이 높은 수준을 그대로 유지해 연준이 인플레이션만을 고려한 통화정책을 펼치기 어렵게 된다.
이 모든 것이 미국 재무부의 선택에 달렸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ariffs, Taxes, and the Term-Premium Trap: Why the Fed's Next Move Hinges on Treasury's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